목요일, 9월 14, 2006

[독서광] 롬멜



흔히 사람들이 말하길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다음에 결과론적으로 보면 별 어려움 없이 이해가 가는 행동이라도 그 당시에 앞날을 모르는 상황에서 결단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롬멜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기로 하자.



우선 이 책은 로마인 이야기를 다룬 시오노 나나미식의 신나는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터무니없이 미화되거나 폄하된 롬멜이라는 개인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목적으로 집필했기 때문에 읽다 보면 지루하거나 당황할 가능성도 높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롬멜이라는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서술 방식이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롬멜은 열심히 일기를 쓰고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이런 자료를 충분히 활용하면 롬멜이 당시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밝혀낼 수 있으며, 이 책도 롬멜의 개인적인 기록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상당히 많이 의존한다.



역시 유명한 인물 이면에는 숨겨진 내용도 많아서, jrogue군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롬멜이 아프리카 전장에서 활약한 군사 전문가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당연히 책 내용도 아프리카에서 날렸던 유명세를 확인시켜주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이는 정말 큰 오산이었다. 롬멜의 이미지는 괴벨스가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으며, 히틀러의 명을 어겨가면서까지 독일군의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아프리카 전선에서 퇴각한 이후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역사에서 만일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만일 롬멜이 연합군 비행기에 피격을 받지 않아서 연합군과의 강화를 위한 비밀작전을 펼쳤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 정말 궁금하다. 자살하는 마지막 날까지 히틀러에 충성을 다하면서도 히틀러의 비이성적인 결단과 태도에는 끊임없이 실망하고 의심하고 반대하는 롬멜이야말로 정말 자기 부하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노력하는 현실주의적인 군인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아, 책 중간 중간 현장감 넘치는 사진이 책 두께와 가격을 높여놓긴 했지만 값어치를 했다는 생각이다. 롬멜 주변 인물에 대한 인터뷰 내용도 무척 흥미롭다. 자신이 뜻한 바(놀랍게도 연합군과 강화를 통한 전쟁의 _조기_ 종결이다)를 위해 성공보다 더 값진 실패를 감내한 롬멜의 인간적인 면이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읽기 바란다.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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