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0월 20, 2007

[독서광] 공부의 비결



치열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공부'에 대해 심한 컴플렉스를 느끼고 있으리라 본다(아, 공부 걱정 한 번도 안하고 교과서만으로 12년 내내 1등에 대학교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한 몇몇 천재형 인간은 제외다). 결국 공부를 잘하기 위해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공부를 더욱 등한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형국인데, 여기에서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 많은 직장인들이 어학 공부를 비롯하여 각종 공부를 시작했다가 몇 달 못 버티고 백기를 드는 모습은 아주 일반적이라 이상하지도 않다.



세비스티안 라이트너 할아버지(아직 살아계시다면 올해 86세일거다)가 지은 '공부의 비결'은 교육심리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도대체 빌어먹을 공부가 뭔지를 설명하기 위해 지은 책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술하다보니 나름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교육 심리학 전공자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부족하고 문제점이 많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육 심리학과 관련해서 전문적인 논문과 교과서를 읽지 않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암기없는 이해없고, 경험없는 창조없다'로 요약이 가능하다. 요즘 들어와서 부쩍 유행인 창조적이고 통합적인 사고 방식에 정면으로 태클을 거는 내용이라서 독자에 따라서는 상당한 반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제시하는 기법은 학습카드이다. 단순히 단어장이나 색인 카드에 외워야 할 내용을 두툼하게 적어서 뒤죽박죽으로 뒤주에 갇혀버린 쥐가 여기저기 나무를 갉아먹는식으로 암기하는 대신에 잘 외워지는 내용과 잘 외워지지 않는 내용을 구분해서 잘 외워지지 않는 내용만 집중 공격하는 동시에 잘 외워지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종의 보상(?)을 통해 학습 능력을 강화한다는 방법이 큰 줄기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블로그 주인장은 요약을 잘한다. ㅎㅎㅎ 여기까지 읽었으면 이 책의 절반 정도 진도가 나간거다)



뭐 여기까지 전개하고 책이 끝났으면 환불 소동이 벌어졌을텐데(실제로 온라인 서평을 보면 일부 사범대학 출신 교사분들께서 '버럭!'하는 내용이 나온다.), 정말 재미있는 내용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 '지능의 문제', '창조적인 영감', '용기와 희망'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이 책에 나오는 퀴즈를 몇 개 내겠다(퀴즈라고 하니 모두 눈이 반짝반짝하지?).



1. 길죽한 나무판자, 길죽한 나무 판자 아래를 받칠 수 있는 삼각 기둥 모양의 쐐기, 나무로 된 작은 원기둥 하나, 초 한 자루, 나무로 된 작은 육면체 두 개, 성냥 한 갑이 있을 때, 여기 있는 준비물만을 사용해서 (사람 개입 없이) 쐐기 위에 놓인 나무 판자가 처음에는 중심을 잡다가 몇 분 후에는 이 판자의 한쪽 끝이 올라가고 다른 쪽 끝은 내려가도록 만들어라.


2. 피험자는 천장에서 끈 두 가닥이 내려오는 방에 있다. 그는 이 끈 두 가닥을 아래에서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는 아무리 손을 뻗쳐도 두 가닥을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가위다.


3. 견딜 수 없이 더운 사막에, 콘크리트로 지은 창고가 있다. 창고는 비어있고, 벽은 안쪽이나 바깥쪽이나 아주 매끄럽다. 천장의 대들보에서 내려온 밧줄에는 어떤 남자의 시체가 매달려 있다. 그 남자가 이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고 보기에는 밧줄이 너무 짧다. 그럼에도 그의 다리는 바닥에서 2m나 떨어져 있다. 그 창고로 들어가거나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인 철문은 안에서 잠겨 있다. 그 빗장을 바깥에서 풀기는 불가능하다. 창고에는 창문도 없다. 문 앞에는 빈 화물차가 하나 있으며, 그 이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라이트너 할아버지는 상기 문제를 놓고 '지능'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의 학습 능력이 전제 조건이 되므로, 결국 가장 뛰어나고 지능이 높은(즉 머리가 좋은) 문제 해결자는 아는 것이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못을 쾅쾅 박아버린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지능' 대부분은 지식이나 정보로 되어 있으며, 이런 지식이 없다면 문제를 풀 수 없으므로 컴퓨터 프로그램이 되었건 음악 작곡이 되었건 우리가 선택하는 문제, 우리의 직업, 우리의 삶과 관련된 정보를 더 많이 공부하고 여기에 플러스 알파로 문제 해결자가 놓치기 쉬운 정보의 구성 요소와 관계를 파악해서 '지능(?)이 덜 높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정보 요소를 알아보고 이용하는 능력까지 겸비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수 많은 시도와 오류를 통해 올바른 해결책을 구하는 연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워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정된 시간 내에 수 많은 시도와 오류를 간접으로 체험할 수 있는 독서의 중요성이 한결 더 높아졌음을 깨닫고 있다. 책 여러 권 읽은 사람보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은 사람을 두려워 하라는 말이 있는데, 책 한 권에 빠져서 시야가 좁아진 사람보다 여러 권을 읽어서 마음 속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물론 다 잊어먹지 않고 중요한 내용은 확실히 체화하고 있는) 사람 역시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OB

댓글 4개:

  1. "암기는 이해의 기본이다"고 강조하시던 고등학교때 국어 선생님이 생각하는군요. 그 당시에는 이해를 못하다가 대학에 들어가서야 그걸 이해했었는데... 이해가 안가는 것도 계속 외우고 사용하고 응용하면 마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이게 정말 이해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답글삭제
  2. '세상을 뒤바꾼 IT 기업 흥망성쇠의 비밀: IBM부터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까지, 좌충우돌 25년사' 언제 나오나요?

    답글삭제
  3. 익명님, '세상을 뒤바꾼...'은 가제가 '초난감 기업의 비밀'로 변경되었으며, 출판사에서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10월 말, 늦으면 11월 초순 경에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성원 감사드립니다.

    - 박재호 올림

    답글삭제
  4.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퀴즈 문제가 나왔지만 OTL......
    답을 알고 있는 걸로 봐서 읽었던 책입니다. 퀴즈를 푸는 척하면 반칙이라서 넘어갑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