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2월 14, 2010

[영화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금,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에서 여자는 미스 스콧(Tracy Reed) 딱 한 명이며, 영화 상영 중 두 부분에 걸쳐 나온다. 폭격기 안에서 콩 소령이 보는 플레이보이 잡지 표지를 장식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시라.)



스포일러 경고: 이 영화를 보실 분은 이 글을 아예 읽지 마시기 바란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컬렉션 중에 미래 3부작(닥터 스트레인지러브(63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68년), 시계 태엽장치의 오렌지(71년)으로 추앙받는 세 작품 중 첫번째 작품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야루고 시루다 결국 설 연휴를 노려 보고 말았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50년이 다 되어가는 흑백 영화를 보는 1시간 40여분 동안 감동 물결이 쓰나미로 몰려왔다. 공군기지를 배경으로하는 사실적인 전투 장면(핸드핼드 카메라를 들고(요즘 기술 수준으로 보면 핸드핼드라고 부르기 민망할만큼 큰 카메라다!) 병사 시선에서 전투 장면을 찍었으니 한참 후에 나온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무릎 꿇어야 한다)이나 팽팽한 회의 장면(주인공들이 전부 제정신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미/소 간의 줄다리기는 아주 심각하다), 긴장감 넘치는 폭격기 내부 장면(내부 사진 한 장으로 B-52 전략 폭격기 조종석을 사실적으로 꾸민 실력은 나중에 미공군에서도 인정했다고 한다)을 다큐먼터리 형식을 빌어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듯이 보이지만 첫 도입부부터 끝 마무리까지 블랙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맹활약을 보여준 사람은 피터 셀러스(큐브릭 감독의 직전 작품인 로리타에도 나온다)다. 오스틴 파워에서 마이크 마이어스가 1인 2역으로 영웅(?)과 악당(?)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면, 피터 셀러스는 1인 3역(1인 4역이 될 뻔 했다고 한다)으로 영화를 휘어잡아버린다. B급 프로그래머는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1인 2역(스트레인지러브 박사, 맨드레이크 대령)까지는 눈치를 챘는데, 나중에 위키피디아를 보니 1인 3역(맙소사! 대통령인 머킨 머플리!)이었고 원래 큐브릭 감독은 B52 폭격기의 콩 소령까지도 맡길 계획이었다고 한다.



영화 자체가 힘, 파워, 핵, 군대, 정치, 기타 힘(not him!)과 관련한 복잡다단한 요소를 다루다보니 마초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기 위해 영화 곳곳에 성적인 뭔가를 암시하는 내용이 자리잡고 있다(로리타에 이어 이 글도 야동 좋아하는 분들께 대박치리라... 낄낄...). 첫 도입부에 급유기와 폭격기가 찰싹 붙어 날아가는 공중 급유 장면부터, 벅 터지슨의 별거 없는 호텔 씬, 잭 리퍼의 불소 때문에 여자들에게 자신(?)없어 하는 모습, 콩 소령이 카우보이 스타일로 목표물에 떨어지는 수소폭탄에 타서 로데오(?)를 즐기며 오르가즘에 빠지는 장면,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주장하는 인류 재건 프로젝트(똑똑한 남자:성적 매력이 넘치는 여자 비율 1:10) 마지막 설교 장면까지 생각할 수록 얼굴이 뜨거워지는 부분이 많다. DVD에 붙은 청색의 12세 관람가라는 스티커를 보고 대한민국 아주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낄낄낄).





독자 여러분을 위해 아주 간략하게 내용을 요약하자면 미치광이 잭 리퍼 사령관이 (대통령 허가없이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자기 휘하에 있는 폭격기 부대를 동원해 러시아를 침공하려고 시도하고, 이를 알게 된 미국 대통령 머킨 머플러가 비상 회의를 소집하고 러시아 대사까지 불러들어 술 취한 소련 수상과 핫라인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이 와중에 소련이 '운명의 날'이라는 전 인류를 멸망시킬만큼 강력하지만 동작을 취소하지 못하는 무기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전 나치 출신인 스트레인지 박사가 여기에 대해 이론적인 가능성을 확인해준다. 다행스럽게 잭 리퍼 사령관이 장악한 기지를 기동 타격대가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잭 리퍼가 자살하자 잭 리퍼 참모이자 영국에서 온 장교인 맨드레이크 대령이 암호를 알아내어 침공 작전을 취소하고, 소련 방공망에 폭격기 경로를 알려줘서 일부 폭격기는 요격에 성공한다. 하지만 미사일 요격에서 살아남은 폭격기 한 대가 기체 이상 상황에서 원래 1차 목표에서 벗어나 소련의 ICBM 기지로 향한다. 목표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무장창이 안 열리는 시츄에이션을 만들어 관객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폭탄을 떨어뜨리도록 응원하도록 만든다(큐브릭 감독 정말 나빠요). 결국 택사스 카우보이(콩 소령)가 우여곡절 끝에 성공해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풀어주게 되는데(수소폭탄 터졌다는 이야기), 스트레인지 박사가 전면 핵 전쟁 이후 묘책을 제시하고 나서 갑자기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서는 순간 소련이 보유하고 있는 '운명의 날' 무기가 터져 인류 멸망을 암시하는 핵 폭발 장면이 "우린 다시 만날거에요( "We'll Meet Again.")"라는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뭐 내용 자체도 아주 코메디지만, 대사도 진짜 웃긴다. 'AFI's 100 Years…100 Movie Quotes'에 뽑힌 명대사 64등은 다음과 같다.




머플리 대통령: 싸움을 멈추시오! 여긴 전쟁상황실이오!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


터지슨과 소련 대사끼리 육탄전을 벌이는 광경도 황당한데, 그 광경을 본 대통령 입에서 나온 전쟁 상황실에서 싸움을 멈추라는 말은 얼마나 더 황당한가?



하지만 이 영화는 웃고 즐기는 가운데 게임 이론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점을 톡 쏘고 나온다. 스트레인지 러브 박사가 폰 노이만을 모델로 삼았다는 말이 나올만하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심판의 날 장치는 존재를 알리지 않는 한 무용지물인데,
왜 말하지 않았소?
소련 대사: 월요일에 인민 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이었소.
아시다시피, 서기장께선 깜짝 쇼를 좋아하시거든요.


핵 공격이 임박했음에도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물론 영화 상영 중에는 술취한 목소리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머리 속으로 상대편이 뭐라고 말했는지 본능적으로 끼워맞추도록 만든 큐브릭의 의도가 돋보인다) 소련 수상이 게임 이론에 나오는 완벽한 기계는 커녕 주색잡기에 능한 일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핵을 사용한 전쟁 억지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등골이 오싹해질테다.



큐브릭 감독 팬이라면, 큐브릭 감독의 완벽주의, 장인정신, 시대를 앞서는 선견지명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반드시 보기 바란다. 블로그로 요약한 내용을 읽는 거랑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거랑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틀림없겠다.



EOB

0 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