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3월 01, 2010

[독서광] 질병 판매학



이 책은 처음 제목에서 상상한 바와는 달리 다국적 기업에 얽힌 온갖 비리와 악행을 폭로하기 보다는 질병을 세련되고 정교하게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런저런 뒷 이야기를 까발리는 재미가 떨어지므로(실제로 저자는 다국적 기업의 못마당한 마케팅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와중에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무지 노력한다.) 책 띠지에 나온 '충격 보고서'까지는 가지 못한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의 표본인 거대 제약사가 수행하는 마케팅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나면 어느 정도 감이 잡을 수 있으리라 본다.



바쁜 애독자 여러분을 위해 이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건강한 사람에게 약을 팔기 위해 없는 병도 만들어 내고, 특정 증상을 특정 질환의 특징으로 좁히고, 교묘하게 병명을 바꿈으로써 약으로 완치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은 (흔치 않은 질병을) 캠페인 형태로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식품의약국, 대학, 연구자들에게 도넛부터 시작해서 연구자금까지 막대한 $을 퍼부어 우호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고콜레스테롤, 고혈압, 골다공증, 과민성 대장 증후군, 우울증, 월경 전 _불쾌_장애, 폐경, 사회불안장애, 주의력결핍장애, 여성 성기능 장애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고 보면 된다.



책을 읽다보면 다소 따분한 느낌이 오는데, 회사와 질병만 다르지 사실상 거의 유사한 시나리오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통계 자료 조작,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언급, 부작용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길 때까지 함구, 사고 터졌을 경우 입막음, 유명인을 활용한 질병 전파, 오피니언 리더를 활용한 지역 사회 여론 조장 등 각 장마다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펼쳐지고 그 와중에서 피해는 우리 모두가 지게 된다(환자 아닌 환자의 고통, 의료비 상승으로 인해 사회 보장 제도의 여건 악화).



이 책에 나오는 양심적인 의사들은 하나같이 약으로 특정 질병이 완벽하게 치료된다는 착각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점에 대해 경고한다. 사실상 적절한 운동과 건강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약물 사용은 그 자체만으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가 극히 어려울 뿐더러 건강한 사람까지 약물을 사용함으로 인해 얻게되는 부작용도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한 약물 사용으로 진짜 환자를 고통에서 구원해준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대부분 이런 반론은 제약사 연구 자금을 얻어 연구한 쪽에서 나온다) 어디까지 환자로 규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다국적 기업과 시민단체가 벌이는 갑론을박을 보고 있으려면 진실은 저 건너 편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약을 두고 '충족되지 않은 수요'와 '충족된 불필요한 수요'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에서 제 3 국가에서 사용하는 효과적인 말라리아 치료제는 '충족되지 않은 수요'임에 틀림이 없지만 막상 다국적 기업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수요' 문제가 아니라 '돈' 문제가 아닐까? 제약사들도 자선 사업이 아니라 실패 확률이 비교적 높은 일종의 벤처(?)를 하다보니 한 몫 잡아야 한다는 사실은 납득이 가지만 소비자를 속이고 기만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괴씸한 생각이 저절로 든다. 여튼 최첨단 마케팅에 속지 말고 화끈한 약 선전일수록 한번 더 의심하는 습관을 기르자. 자기 건강은 자기가 지켜야 하기에...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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