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월 24, 2011

[독서광] 어댑트

경제학 콘서트경제학 콘서트 2를 모두 읽은 분들이라면 틀림없이 팀 하포드의 신작인 어댑터에 대한 소식을 여러 경로로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하포드는 역시 이번에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작에서 일상 생활에 얽힌 여러 가지 흥미로운 내용으로 사람들 혼을 빼놓은 하포드는 기세를 몰아 이번에는 '불확실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힘'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위험, 실패,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놓았다. 물론 (조만간 소개할 예정인) 바인하커의 '부의 기원'이나 번스타인의 '리스크', 페로우의 'Normal Accident', 위크의 'Managing the Unexpected'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이런 기초 지식이 없는 분들이라도 이 책만으로 요즘과 같이 복잡한 세상을 살기 위한 지혜를 살짜쿵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성공을 위해 위험, 실패, 실험은 되도록 멀리해야 할 불경스런 요소가 아니라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필수 요소이며, 실패에 따른 피드백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개선해야 살아남는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팔친스키의 3대 원칙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1.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것(변이)
  2. 새로운 걸 시도할 때는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규모로 시도할 것
  3. 피드백을 구하면서 교훈을 얻을 것(선택)

눈치 빠른 독자(혹은 '부의 기원'을 읽은 독자)들은 상기 3대 교훈이 진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렇다. 이 책은 '불확실성', '탄력성', '변이', '선택', '규칙 변경', '독자성'이라는 핵심어를 놓고 사회가 동작하는 방식을 진화의 원리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 단, 재미없고 따분한 이론이 아니라 하포드 특유의 재치있는 사례 선별과 이야기 풀어내기가 각 장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므로 아하!하는 순간이 여러 차례 올 것이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고 본문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정리해드리겠다.

모든 대통령은 정치를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건 다음 당선이 된다. 그러다가 현실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다. 우리가 계속 리더를 잘못 뽑아서가 아니다. 단지 현대 사회에서 리더십이 달성할 수 있는 업적의 범위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자주 출연하는 유명 전문가일수록 무능한 경우가 많았다.
컴퓨터 산업은 실패로부터 시작되었다. ... 지난 40년 동안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컴퓨터 산업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다.
진화 과정은 새로운 것의 발견과 익숙한 것의 활용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지속적으로 변할 때 거기 접근하는 최상의 방법은 다양한 접근법으로 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도 일단 적군을 만나봐야 한다.
아주 상이한 관점이 부딪히는 가운데 올바른 의사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군은 레이더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기업일수록 더욱 탈집중화한다.
새로운 장비가 우수한 이유는 같은 일을 더 짧은 시간에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탄력적이기 때문이다.
혁신에서 실패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우리는 모든 복권이 당첨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당첨 기회를 원한다면 복권을 사야 한다. 통계 용어로 표현하자면 혁신의 수익 패턴은 긍정적인 쪽으로 심하게 편향되어 있다. 작은 실패들이 잦고 큰 성공의 수가 적다는 뜻이다.
어찌된 일인지 정부는 덩치만 크고 성과는 전혀 없는 기업들만 골라서 지원해주는 듯하다. 그 경우 연이은 실패는 따놓은 당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약간의 투기성 자금을 필요로 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뭔가 놀라운 일을 이루기 위해 자금을 움직이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약간의 도박적인 요소가 개입되게 마련이므로 벤처 캐피털 같은 '카지노' 활동이 없다면 경제는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힘들고 세상은 혁신성이 떨어질 것이다.
적응은 딱히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가해지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인간의 실패 중에서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치명적인 실패는 없다. 일정 한도 내에서 우리는 순차적으로든 동시다발적으로든 실험을 할 수 있다.
비즈니스의 3대 원칙: 1)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되 일부는 실패하리라고 예상할 것. 2)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거나 자잘한 단계로 일을 진행해서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규모로 실패할 것. 3) 실패했을 때 그 사실을 깨달을 것.
구글은 '맹꽁이(명석하지 못한 엔지니어)가 없는 회사'를 유지하고 싶어하고, 팀슨도 회사에서 '농땡이'들을 몰아내고자 한다.
진정으로 시장 파괴적인 혁신은 기업에서 그동안 중요시되어온 요소들을 거의 모두 비껴간다.
최고의 실패는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방 안에서 혼자 저지르는 사적 실패다. 그 다음으로 좋은 실패는 한정된 청중들 앞에서의 실패다.
부정은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과정이고, 손실 추격은 성급하게 실수를 지워버리려다가 더 큰 피해를 초래하는 과정이라면, 쾌락적 편집은 실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미묘한 과정이다.
회사일에 전념한다고 불필요하게 스스로를 구속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실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듯하다. 이 책을 규정하는 진실, 즉 복잡한 세상에서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좀더 명확하게 깨닫게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서 적응을 실천하려면 실수를 끝없는 실패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 줄 제멋대로 결론: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는 분들이 계시면 이 책을 꼬옥 읽어보시기 바란다.

뱀다리) 이 책을 선물해준 Mr. Kwon에게 감사말을 전한다. ;)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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