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5월 25, 2012

[독서광] 부의 기원(3)

다른 책을 소개하느라 부의 기원을 잊어먹고 있었다. 오늘은 3부 '진화는 어떻게 부를 창출하는가'를 간략하게 정리해보겠다. 3부는 게임이론으로 많이 소개된 '죄수의 딜레마'를 다루며 시작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비제로섬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흥미롭다. 다시 말해 둘 이상의 사람들이 협력하면 모두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내가 도우려고 했지만 남이 나를 속인다면? 그냥 제로섬 게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후반 로버트 액설로드가 수학적인 계산 대신 실제 경연 대회를 열어 어떤 전략을 써야 가장 유리할지 알아내는 놀라운 실험을 했는데, 놀랍게도 결과는 '일단 처음 만난 상대에게는 무조건 협조하는 편을 선택하며,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내린 결정을 보고 그대로 반복한다'는 팃포탯 전략이 최고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내가 먼저 남을 '신뢰'해야 남도 나를 '신뢰'한다는 원칙이 그래도 적용된 사례다. 이를 컴퓨터 상으로 가져와서 인생(Life) 게임에 죄수의 딜레머 규칙을 적용한 방법으로 시물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영원히 승리하는 전략은 없었다. 물론 시간이 아주 오래 지속된다면 팃포탯과 같은 단순한 전략이 계속해서 살아남게 되긴하지만 절대 판을 독식할 수는 없다.

단순한 시물레이션이 아닌 실제 경제에서도 승리의 규칙을 찾아내려면 어떤 사고 실험을 해야할까? 대니얼 데닛이 제안한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디자인 공간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듯이 보인다. '바벨의 도서관'은 영어로 쓰일 수 있는 500페이지 분량의 모든 책들이 소장된 초대형 도서관이다. 500쪽 분량이라면 권당 문자가 약 100만개 들어 있으며, 대소문자, 숫자, 구두점을 포함하면 영문자가 총 100자가 넘으므로, 도서관에는 100의 1,000,000승 만큼 책이 소장되어 있다. 이런 책을 뒤지다보면 별의별 책이 다 나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작품과 2042년의 베스트 셀러 작품, 심지어 여러분의 자서전까지 존재한다. 여기서 만일 이 도서관에서 특정 기업의 사업 계획서를 찾는다고 가정하자. 공격적인 내용, 보수적인 내용, 수익성이 높은 내용, 수익성이 떨어지는 내용 등 온갖 종류의 사업 계획서가 존재하지만, 현재 특정 기업의 상황에 맞는 사업 계획서가 아니라면 효용이 떨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진적으로 사업 계획서의 형태는 성공을 위한 공진화를 밟아왔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엄청나게 많은 경로(책) 중에서 성공적인 사업을 위한 경로(책)는 자연계의 진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선택이 이뤄지게 된다.

다음으로 물리적인 기술을 설명한다. 구석기 시대 말에 이르러 다양한 도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인간 언어 능력의 형성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물리적 기술이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과정에서 정보 전달에 최소한의 신뢰성이 있어야 하는데, 언어의 출현이 복잡한 대규모 기술을 코드화하고 전달하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데 돌파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기술을 요소와 구조를 코드화했다고 추상화하면, 요즘 나오는 수많은 제품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자동차의 경우 엔진, 본체, 의자, 문과 같은 다양한 구성 요소와 배기량, 토크, 시트 제질, 문 개수와 같은 다양한 구조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인텔이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들 때마다 가능한 SKU(Stock Keeping Unit)이 늘어나며 물리적인 기술 공간이 늘어난다. 여기서 물리적인 기술 혁신이 일어나는 이유 역시 진화를 사용해 설명이 전개된다. 연역적인 논리적 사고, 실험으로 추론하는 방법, (연역도 아니고 귀납도 아닌) 뭔가에 열광하는 인간의 속성(임의 점프가 가능해진다)이 결합해 현존하는 디자인의 범위를 넓혀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선택 받고 살아 남는 기술은 무엇일까? 주어진 환경에서 벅찰 정도로 많은 디자인이 출현해 경쟁이 불가피한 상태가 될 경우 선택이 일어나고, 기록이 돌에 새겨지거나 책으로 인쇄되거나 웹 페이지에 올려지며 복제되며 확산되면 살아 남은 성공한 기술이 된다. 나머지 복제가 일어나지 않는 (즉 모방되지 않는) 기술은 급격히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영원히 살아남는 기술이 없는 이유를 '파괴적 기술'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존 기술로 성공할 기업일수록 기술 적합도 지형에서 새로운 기술로 갈아타기가 어렵다. 즉 정상에 있을 때는 다른 정상으로 올라가기보다 밑으로 내려가기가 훨씬 쉬울 뿐 아니라, 다른 정상으로 점프는 정말 위험하다.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벤처 입장에서 보면 산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새로운 길도 많고 도전할 수 있는 정상도 많지만, 계곡에서 산 위로 올라가 정상에 이르기 전에 깊은 계곡으로 빠져들거나 낮은 봉우리에 만족해 끝나는 경우도 많기에 그렇게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가 힘들다고 볼 수 있다.

물리적인 기술에 이어 사회적인 기술을 설명한다.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한 이유를 물리적인 기술에서 찾으려던 학자들은 생산성을 증가시킨 요인이 회사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관리하는 방식의 변화, 즉 사회적 기술의 혁신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월마트의 경우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경쟁 업체에 비해 40%나 더 생산적으로, 1990년대말까지 생산성을 22%나 더 향상시켜 경쟁 업체를 따돌렸다(B급 프로그래머: 지금은 아마존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낄낄). 그렇다면 사회적 기술이 무엇일까? "목표를 추구하면서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법과 디자인"이라는 정의가 있다. 앞서 설명한 도서관과 유사한 사회적 도서관을 구성해 비슷한 방법으로 사고 실험을 하게 되면 역시 사회적 기술에도 진화가 개입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돈이 발명되자 회계학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주식 회사가 생겼고, 주식을 팔고 사는 주식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사회적 기술 공간에서도 연역적 추론과 실험적 추론이 역시 적용된다. 하지만 물리적인 기술과는 달리 사회적 기술에서는 실험적 추론이 우세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적인 디자인은 계속 지속되고 복제 되어 더 많은 자원을 끌어 당기고 확산되면서 증폭된다. 이렇게 물리적인 기술과 사회적인 기술이 공진화하며 농업 혁명, 산업 혁명, 정보 혁명을 이끌어 내게 되었다. 사회적인 기술에서도 앞서 설명한 협력이 아주 중요하다. 상호 협력을 기초로 하는 팃포탯과 같은 전략이 성공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은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이 사기꾼을 몰아내어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성공과 계층적인 구조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분업과 규모의 경제적 장점을 이용하려면 업무를 분할하고 실행을 조정하고 상황을 다시 결합해 결과물을 할당해야 하는데, 일단 계층 구조가 만들어지자 이런 계층 구조 내에 다시 계층 구조를 충첩해 분업과 정보 처리를 촉진하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이런 계층 구조는 수렵/채집 부족부터 지역 볼링 리그와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인 구조에 스며들게 되었다.

다음 주제인 '경제적 진화' 상당히 복잡하므로 오늘은 여기까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