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1월 16, 2013

[일상다반사] 독일에서 생활하면 어떨까?

"규제없는 독일로 오라"…獨, 한국게임업체 '러브콜'이라는 기사에도 나오지만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RW) 주에서 한국 게임 업체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소식이 트위터를 뜨겁게 달궜다. 게임 개발자여, 독일로 가자!라는 글에서는 일곱 가지 조언을 곁들여 독일에서 주의할 사항도 친절하게 짚어주고 있다. NRW 주에 속한 주요 도시(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 에센)를 왔다갔다한 경험을 토대로 과연 어떤 명과 암이 있을지 한번 생각해봤다.

  1. 맛있는 치맥은 꿈도 꾸지 마라. 독일에서 작은 슈퍼마켓에도 다양한 맥주가 진열장을 꽉 채우고 있다. 맥주뿐만 아니라 와인 역시 애주가들을 반기고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맥주에는 당연히 치킨이 떠오르지만, 독일에서 야식 통닭 배달은 꿈도 꾸지 않는 편이 좋다. 배달 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T_T 그리고 일반적인 식재료는 아주 저렴하지만(우유, 치즈, 계란, 빵 가격은 아주 낮게 책정되어 있다), 식당에서 뭘 먹으려면 가격표 앞에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커피도 테이크아웃이 아니라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먹을 경우 한국의 프렌차이즈 가격을 바로 넘어가버린다(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으므로 젊은 친구들이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2. 온돌은 꿈도 꾸지 마라. 독일의 겨울 장마는 악명 높다. 겨울 내내 영하를 조금 내려간 상태에서 가랑비가 오락가락하고(물론 독일 사람들은 어지간한 가랑비에는 우산을 잘 안 쓰는 듯이 보였다) 밤에는 체감 온도가 장난 아니게 떨어진다. 문제는 난방 시설인데, 한국의 온돌 문화에 익숙해있다면 바로 멘붕이 올만큼 형편없다. 뜨거운 물로 공기를 사알짝 데우는 히터가 전부이므로 바닥에 카페트를 깔며, 침대에서 자고, 실내에서도 두툼한 실내화를 신고 돌아다녀야 한다. 현지 필수 품목 중 1위 2위를 다투는 품목이 바로 전기 장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되겠다. 건강하게 지내려면 (남쪽 따뜻한 지방으로 가는) 휴가가 필수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3. 빨리 빨리는 잊어먹어라. 운전 면허증 발급부터 시작해 전화/인터넷 설치까지 그야말로 무한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게다가 담당자가 휴가라도 갔다면, 휴가에서 돌아올 때까지 모든 관련 업무는 중지된다고 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기에 맡은 자기 업무 이외 다른 업무는 해주지 않는다.
  4. 에누리를 기대하지 마라. 한국처럼 이리재고 저리재고 목소리가 크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별로 없어보인다(시장가서 잘 흥정하면 또 모를까...). 하지만 이게 단점이자 장점이다. 온/오프라인 가격이 일정하므로 어떤 물건을 살지만 결정하면 어디서 구입하나 손해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다. 물건 가격은 한국에 비해 대체로 비싸고 A/S 관련 워런티를 별도로 붙여야 하는 경우가 많고 배송/설치비도 제법 든다. 저렴한 가구 집기의 대명사 이케아가 있잖아? 하지만 배송/설치비가 물건값보다 더 든다는 사실을 알고 가기 바란다(적재함이 넉넉한 자동차가 없으면 가구도 못 산다).
  5. 영어가 100% 통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NRW 주에는 서울/부산처럼 큰 도시도 없지만...) 도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영어로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생긴다. 작은 우체국에 간 적이 있는데, 영어를 아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다행히 독일어 숫자 정도는 읽고 쓸줄 아니까 잘 넘겼다. 하지만 택시를 탔는데 터키 운전사가 독일어로 말을 거는 경우라면? 은행에 갔는데 독일어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면? 기차가 조금 연착되어(독일도 종종 기차 연착이 일어난다. ㅋㅋ) 플랫폼이 바뀌고 있는데, 안내 방송을 유창한 독일어로 한다면? 잠시 방문이 아니라 계속 살아야 한다면 독일어를 모르면 큰 낭패다(바로 뒤에 아주 좋은 예가 나온다). 그리고 영화는 기본적으로 독일어로 더빙되어 나온다. ㅋㅋㅋ
  6. 계약은 문서로 한다. 전화 한통화로 모든 것이 처리되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은 문서가 아주 중요하다. 전기/가스요금부터 자동차 보험 계약서 등 모든 계약은 명확하게 문서로 주고받아야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안 생긴다. 법정에 출두하더라도 관련 레터만 잘 보관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한국처럼 좋은게 좋을거라고 대충 넘어갔다가는 금전/시간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걸 독일어로 형식에 맞춰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7. 독일 사람들이 모두 다 법을 잘 지키고 남들에게 친절할까? 이건 복불복이라... 각자 상상에 맡긴다. 거기서도 무임승차할 사람은 무임승차하고 사기칠 사람들은 사기치고 도둑질할 사람들은 도둑질한다. 따라서 한국처럼 커피숍에 어서 가져갑쇼~ 하듯 노트북을 내려놓고 화장실가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니 독일에 가지마라는 듯이 들리는데, 독일의 절차에 익숙해지기까지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 이후부터는 정말 규칙대로 움직이므로 복잡하고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딱 좋은 나라다. 하지만 끊임없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역동적인 한국 상황에 익숙하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권태/지겨움으로 인해 버티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규칙을 좋아하는 개발자들에게는 독일이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닌 듯이 보인다.

지금까지 _잡생각_을 늘어놓아봤다.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이니 사실과 다른 부분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잘못된 부분은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란다.

EOB

댓글 2개:

  1. 다행히 최근에는 많이 미국/한국스러워진 것 같아서 한국인들이 적응하기 나아진 것 같아요. 일례로 몇 년 전에 지어진 보눙(아파트)은 온돌이 있어요. 인터넷 설치도 운이 좋으면 몇 일 내로 가능하기도 하구요. 심지어 제가 있는 프랑크푸르트 근교에는 한국식치킨집도 있습니다 ㅎㅎㅎ

    마지막 말이 딱 맞는거 같아요. 규칙을 따르는 개발자라면 독일 좋은거 같아요.

    답글삭제
    답글
    1. 우와, 프랑크푸르트 근교에 한국식 치킨집이라니! 그야말로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네요. :)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