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메종 드 히미코'에 이어 이번에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고 말았다. 한동안 이런저런 일이 계속 터져서 거의 정신이 없는 상태였는데, 용케 짬을 내어 DVD(애지중지하는 소장품을 흔쾌히 빌려주신 김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 디지털적인 서평을 올려서 우선 1차로 빚을 갚았는데, 나중에 2차로 포도주 사드릴께요. ;))를 구해 어제 밤에 허겁지겁 쉬지 않고 본 것이다.
jrogue군은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저런 해설이나 설명을 보지 않는다. 스포일러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이고 특정 글이나 기사가 영화를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꿀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 영화를 언젠가는 봐야겠다고 생각하신 블로그 독자분이, 지금 이 글을 읽으면 안될지도 모르겠다. ;) 뭐 미리 주의를 주고 들어가니까... 나중에 jrogue군을 원망하지는 마시라. 우발적으로 기사를 보지 못하게 조금 공백을 둔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jrogue군은 이미 도입부부터 그다지 유쾌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줄거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영화 보는 내내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예정된 끝을 향한 여정을 쫓아갔다. --> 이 정도면 초강력 스포일러지? (도리도리)
jrogue군 생각에는(어디까지나 jrogue군 생각이니 버럭! 하지 마시라) 이 영화는 지고지순한 정상인과 장애인(jrogue군은 언론에 등장하는 장애우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너무나도 작위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표현만 그럴듯하게 하지 말고 실천을 해라.)에 대한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젊은 날의 방황을 아름답게 그린 한 폭의 수채화도 아니다. 오히려 넘어질줄 알면서도 언젠가는 걷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은 계속 걸음마를 연습하는 아기처럼 서로 상처받고 상처주면서 겁도 없이(!)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다루는 영화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 심연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조개의 모습과 오버랩된,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하고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있는, 조제의 모습과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결국 실패할 줄 알면서도 일단 노력해보려는 츠네오의 모습에서 기존 영화에서 그리는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랑의 날카로운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지만, 현실은 현실이니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솔직 담백한 사랑이 신파조로 눈물 펑펑 쏟으면서 온갖 난리 법썩을 다 떠는 사랑 이야기보다 훨씬 감동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에 나오는 여러 가지 소품을 통해 조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할머니가 밀어주는 유모차에서 시작해서 스케이트 보드를 장착한 유모차로 바뀐 다음에 휠체어가 필요없다고 계속해서 업어달라는 조제의 모습까지는 자신이 쌓았던 벽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외부로 나가는 상태를 그리고 있고, 더 이상 유모차를 고칠 수 없어 버린 다음에 마지막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조제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주겠지라고 기다리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자기 자신이 치열한 삶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는 능동적인 입장으로 바뀐 상태를 그린다. 처음 도입부에서 츠네오를 위해 고난이도(?) 계란 말이를 요리하는 장면과 댓구를 이루는 가장 마지막 생선 요리 장면은 조제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jrogue군 경험(?)에 따르면 삶의 의욕이 없는 상황에서 요리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행위는 대단히 긍정적인 모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갑자기 '이승환-그대는 모릅니다.'에서 가장 마지막 가사인 '나 사는 모습 안 되어 보이더라도 너무 걱정은 말아요. 내 몫이죠. '가 생각났다. 츠네오와 이별 후 조제는 다시 딱딱한 조개껍질 속으로 들어갔을지는 몰라도, 아마도 자기 삶은 자기 몫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승환-그대는 모릅니다.<6th:the war in life>
나 그 이후로 한번도 그대를 못 본 것은
언제나 고개 숙이기 때문...
나 그 이후로 그대를 듣지도 않았던 건
귀를 막고 나 알고 있는 그대만 숨겨 놓고 싶어서...
떠난 뒤 우리 지워가기를 바랬죠 그러나 세상이 우리
가만히 두지 않네요.
나 그이후로 다짐한 게 있죠.
두 번 다시 앞선 걱정으로 당신의 짐이 되지는
않아야만 한다고...
나를 보나요. 슬퍼 보이진 않나요.
당신의 자랑스러운 추억인가요. (그거면 돼요.)
얼마나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며 사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가 있을까요.
나 사는 모습 안 되어 보이더라도
너무 걱정은 말아요. 내 몫이죠. (그대만 편안하다면...)
(참고: '그대는 모릅니다.'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여기를 보시라.)
뱀다리) 츠네오는 본질적으로 착한 사람이다. 예전 자기 애인이 담배 판촉을 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애인도 잃어버리고,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한' 자기 신세를 한탄하자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가 농담 한 마디로 상황을 반전시킨다.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착하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착할 수 없다는 모순에 있다(비록 영화에서는 자신이 지쳤기 때문에 도망쳤다고 말하긴 하지만 착하다는 사실이 조제랑 해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jrogue군은 너무나도 차카기에 츠네오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 아이쿠... 여기저기 날아오는 돌을 피해서 잽싸게 도망가는 일만 남았다. ==========================3
EOB
안녕하세요..jrogue님~~여기가..어떻게 보면..훨신더..블로그..다워서..좋군요...ㅎㅎ..근대..APM안나오나요..ㅜㅜ..
답글삭제5월..말에..나온다고 했는뎅..ㅜㅜ
productionkim님, APM은 6월 18일 무렵 출간 예정입니다. 출판사 쪽 사정에 의해 조금 늦어졌습니다.
답글삭제그리고 맥북 국내 판매 개시합니다. 총알 장전 하셨는지요? ;)
- jrogue
나를 위해 요리한다는 게 삶에 대한 의욕, 긍정을 뜻한다는 게 새삼 처음 듣는 말처럼 다가오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회상해보니 생선 한 조각을 굽는 조제의 뒷모습이 덜 슬퍼보입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