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짤방: MSCI 신흥시장 인덱스의 지난 10년간 산업별 비중 변화가 흥미롭다. 2008-2019년 기간동안 에너지 관련 산업주의 비중은 2008년의 3분의 1도 안되는 수준으로 감소한 반면, 미디어와 리테일에 대한 비중은 같은 기간동안 각각 7배와 9배로 확대되었음. via @EconFacttree)
오늘은 간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을 하나 소개하겠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장한 파괴적 혁신 이론과 대비되는 이론을 정리한 테이세이라 교수의 '디커플링'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뉴턴의 고전역학을 이해해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듯이 이 책을 이해하려면 파괴적 혁신을 이해해야 한다. 파괴적 혁신은 큰 기업이 기술적인 변화를 읽지 못하는 바람에 작은 혁신적인 기업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 결과 스스로 붕괴된다는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개념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기업에서 혁신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수식어로 '파괴적'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이 책은 파괴의 출발점을 '기술'이 아니라 '고객'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명확하다. 즉, 팔고 싶은 물건을 파는 시장 관점이 아니라 사고 싶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고객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고객 관점이 왜 중요할까? 그리고 고객의 선택을 원한다면 기업이 어떻게 해야할까? 이게 이 책에서 다루는 핵심적인 주제다.
바쁜 독자 여러분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기존의 강력한 전통 기업들은 소비자가 제품과 서비스를 얻기 위해 거치는 모든 절차를 하나의 큰 덩어리로 묶어 사슬처럼 만들어두었다. 신생 기업은 이런 사슬 중에서 약한 연결 고리를 파악해 고객에게 하나 또는 일부 활동만을 충족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나머지는 기존 기업에 묻어가는 영리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런 과정을 '디커플링'이라고 부르는 데, 디커플링이 무서운 이유는, 시장에서 기반을 구축하고, 고객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점점 넓혀가는 커플링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즉 기존 기업이 고객을 위한 기반 구조를 모두 닦아 놓으면 후발주자가 영리하게 이를 이용하고 어느 순간 기반 구조를 반동강 내어버리는 방법으로 기존 기업의 힘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고 구매해서 소비하기 위해 따르는 개별 단계를 모으면 CVC(고객 가치 사슬)이 되는데, 기존에는 고객이 이런 CVC를 회사 하나에서 완료했다. 하지만 파괴자들은 CVC 전체를 장악하려 시도하는 대신 CVC의 단계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의 일부를 깨트린 후 하나 또는 몇 단계를 훔쳐가는 방식으로 기존 회사에 큰 위협을 가한다. 끊어진 연결 고리에서 고객이 이탈해버리기 때문에 기존 회사 입장에서는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고객이 과연 디커플링을 원할까? 대기업이 안정적으로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에서 굳이 분리된 하나의 단계만 별도 회사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각 단계마다 부여되는 가치의 크기를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고객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부분을 소비할 기회를 발견하면 기꺼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부분과 가치를 부여하는 부분을 분리할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설명하고 끝냈으면 무척 심심했을 텐데, 이 책은 공격과 수비 양쪽을 소개하는 방법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은 기업이 디커플링으로 기존 시장을 교란한다면 큰 기업은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디커플링 업체를 제거하거나 인수하는 방법은 아무 쓸모도 없다. 한 두 번은 통하겠지만 계속해서 다른 회사가 생겨 다른 사슬을 공략하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커플링 업체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끊어진 고리를 단순하게 재결합시키거나, 고객이 원하는 대로 분리해서 리밸런싱을 하는 방안을 소개한다.
그러고 나서 3부에서 실제로 파괴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시작 - 성장 - 쇠퇴라는 비즈니스 생명 주기 상에서 출발(즉 초기 고객 확보)을 어떻게 하며, 초기 고객을 모았다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어떻게 CVC를 장악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렇게 되면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데, 안정은 쇠퇴를 의미하므로 매너리즘에 빠진 기업을 고객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지 설명한다.
거의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살짝 내용이 중복된다는 느낌도 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분하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 사업의 어려움과 기회에 대해 뭔가 깨달음이 올지도 모르겠다.
한 줄 요약: 기술이 아니라 고객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설명하는 책은 드물다. 평상시 이런 의문이 드신 분들이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보너스:
Shot on iPhone by Academy Award® Winner Damien Chazelle – Vertical Cinema(스마트폰에서 그대로 감상하면 최고!)
Making Vertical Cinema — Shot on iPhone by Academy Award® Winner Damien Chazelle (메이킹 필름)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