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여러 가지 일로 정신이 없어서 독후감을 쓰지 못했는데, 밀린 숙제를 조금씩 해볼 예정이다. 오늘은 시간과 관련된 책을 소개하겠다. 제목부터 상당히 역설적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이다.
이 책은 크게 현대 물리학이 파악한 시간에 대한 정체를 다루는 1부 <시간 파헤치기>, 시간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를 설명하는 2부 <시간이 없는 세상>, 1부와 2부에서 전개한 내용을 다시 우리 자신으로 되돌리는 3부 <시간의 원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에 이론적인 내용이 나오지만 복잡한 수식이나 난해한 증명은 없기 때문에 그나마 안도의 안숨을 쉴 수 있지만 원래 시간의 정체가 어렵다보니 100% 이해하기는 어려운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근대 물리학과 현대 물리학이 우리의 시간 관념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알면 이 책에 나오는 이론도 어느 정도는 우리의 삶에 파고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 책의 1부는 시간의 특성에 대해 기존 이론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 평지에 사는 사람은 산 꼭대기에 사는 사람보다 시간이 더 적으며, 지구의 표면에서는 사물이 자연스럽게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쪽(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한다(중력!). 시간이 유일무이하며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공간 속의 모든 지점마다 다른 시간이 적용된다는 사실도 놀랍기만 하다. UTC(세계 협정시)가 있으니까 맞출 수 있지 않습니까? 냉정하게 말해 답은 '아니오'다. "열은 차가운 물체에서 뜨거운 물체로 이동할 수 없다."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물리학자들은 시간에 주목해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 차이가 나타날 때마다 열이 관여한다"는 사실도 파악한다. 여기서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나오고 볼츠만은 엔트로피가 존재하는 이유를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거와 미래의 차이와 구분이 없다는 놀라운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시간이 속도 때문에 늦춰진다는 아인슈타인의 파괴적인 이론이 등장하면서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우주 관점에서는 현재가 없는 시간 구조를 따르며, 공통적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의 2부는 시간이 없는 세상에 대해 논한다. 우리는 흔히 사물로 이뤄진 세상을 그리지만, 사실상 세상은 사건으로 이뤄진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다.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지만 사건은 지속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공통적인 시간도, 변화에 특별히 관여하는 방향도 없는 시간 변수가 없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중력 개념이 도입되는데, 놀랍게도 양자중력은 시간 변수 없이 변량들 간에 성립하는 가능한 관계들로 세상을 설명한다.
이 책의 3부는 다시 사람의 영역으로 시간을 가져온다. 이 세상의 기본 동역학에서 모든 변수가 동등하다면 도대체 인간이 '시간'으로 부르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시간과 평형 관계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은 시간을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면서 시간이 에너지로, 에너지가 거시적 상태를 정의하는 방법과 반대로 거시적 상태가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에너지가 시간을 생성하는 혼합으로 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즉, 하나의 거시적인 상태(볼츠만이 주장한 상세한 세부 사항을 무시하면서 세상을 희미하게 설명하는)가 하나의 시간을 결정한다고 본다. 과거와 미래의 전반적인 차이는 세상의 엔트로피가 과거에 낮았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기인하는 데 이유가 무엇일까? 엔트로피는 주관적인 양이 아니라 속도처럼 상대적인 양이며, 세상의 엔트로피는 세상에서 우리가 속한 부분과 상호 작용하는 변수들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과 상호 작용하면서 세상을 바라볼 때 거시적인 변수들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극적인 희미함이 발생하며 따라서 우주의 엔트로피가 (우리 입장에서는) 낮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에너지원이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의 근원이며, 낮은 엔트로피가 없으면 세상은 열평형 상태에서 잠들 것이다. 낮은 엔트로피가 없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다행히도 지구 근처에 있는 태양은 따뜻한 광자를 지구로 보내고, 지구는 차가운 광자들을 방출하면서 엔트로피를 낮추는 효과가 발생한다(뜨거운 광자 하나의 배열 수가 차가운 광자 열 개의 배열 수보다 작기 때문).
이 책의 3부 중반을 넘어가면서 정말 저자가 하고 싶은 시간의 본성과 관련해 자아 형성에 관련된 세 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 세상은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풍부한 상관관계를 통해 우리 모두 각각에 반영된다.
- 우리는 세상을 성찰하면서 그것들을 실제들로 조직화한다. 세상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한결같고 안정적인 연속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그룹화하고 분류한다. 세상과의 상호작용이 더 잘 이뤄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신경 체계도 감각적 자극을 받고 계속해서 정보를 정교화하면서 행위를 만들어내는데, 신경망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수정하면서 유입된 정보의 흐름을 (가능한 최대로) 예측하는 유연한 동역학계를 형성한다.
- 우리의 자아를 세우는 세 번째 요소는 기억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형성한 프로세스는 도처에 깔려 있고, 기억은 이 프로세스들은 함께 단단히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우리 자신의 이해는 시간에 대한 생각과 같다. 넓은 의미에서 뇌는 과거의 기억을 수집해 지속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 사용하는 메커니즘이다.
이 책의 3부에서 가장 정신이 들게 만드는 부분은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이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뭔가를 갖게 되고 여기 집착했다가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고통은 과거/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예측 속에 있다. 시간은 고통이다.
정리: 2019년 여름를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강력 추천!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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