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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3월 14, 2020

[영화광+B급 프로그래머] AlphaGo - The Movie | Full Documentary

일부 제한된 극장과 넷플릭스/왓차에 공개된 이세돌과 알파고의 승부를 그린 알파고 다큐멘터리가 유투브에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토요일 아침을 눈물과 박수로 보냈다.

알파고와 시합을 할 때 거울에 비친 발가벗겨진 자신을 보며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는 판 후이의 설명과 알파고를 무력화시킨 78수를 어떻게 두게 되었는지 묻는 질문에 여기 밖에 둘 곳이 없어서 두었다는 이세돌 9단의 답변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엔지니어와 바둑 기사들의 인간미, 열정, 도전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진짜 위대한 일을 하려면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 할지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한 줄 평: 다른 말이 필요없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포함한 엔지니어, 바둑 애호가, 예술가 모두에게 강력 추천한다.

EOB

월요일, 12월 31, 2018

[영화광] 2018년 좋았던 영화 정리

(via @phyxinon)

2018년을 회고하려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다 포기하고 즐겁게(실패한 영화는 제외) 감상한 영화 목록을 한 번 정리해보았다.

  • 강철비: 새해 본 첫 영화로 한국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를 잘 풀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
  • 다키스트 아워: 덩케르크가 전면이라면 다키스트 아워는 후면. 전투 장면이 굳이 필요없는 전쟁 영화
  • 패딩턴2: 아름다운 색감으로 귀여우면서도 꿋꿋한 주인공을 그리는 영화
  •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일상과 상상의 절묘한 조화
  • 더 포스트: 참다운 언론이란 무엇일까?
  • 팬텀 스레드: 전통을 따를 것인가? 유행을 따를 것인가? 사랑을 따를 것인가?
  • 플로리다 프로젝트: 어른들이 삶과 투쟁하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성장한다
  • 쓰리 빌보드: 기존의 틀을 벗어난 독특한 이야기 전개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사랑
  • 레디 플레이어 원: 비디오 키드들을 위한 종합 선물 세트
  • 레이디 버드: 우리 모두 성장하느라 괴로운 시절이 있었지
  • 콜럼버스: 건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 어벤저스 - 인피티니 워: 예상치 못했던 결말
  • 당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밀어붙이는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드라마.
  • 밤쉘: 엔지니어로 성장하려면 아이디어만으로는 2% 부족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낌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사람들의 일상적인 얼굴이 예술로 변신하는 마법
  • 앤트맨과 와스프: 어벤저스 다음 편에서 앤트맨이 어떤 활약을 벌일지 중요한 힌트를 제공
  • 킬링 디어: 어둡지 않은 어둠의 스산한 분위기
  • 인크레더블 2: 히어로는 고달프다. 하지만 육아는 더욱 고달프다
  • 서치: 컴퓨터 화면만으로 모든 이야기를 전개하는 독특한 형식의 미
  • 미션 임파서블-폴아웃: 에단 헌트가 아니라 탐 형이 죽을 맛. 고공낙하와 헬기 추적씬은 IMAX 포맷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줌
  • 어느 가족: 가족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 더 스퀘어: 현대 미술의 본질에 대한 뒤집기
  • 공작: 액션과 신파를 배제한 존 르 카레 느낌의 건조하면서도 세련된 스파이 영화
  • 암수살인: 고지식할 정도로 기본에 충실하게 정면 돌파하는 범죄 영화
  • 맥퀸: 패션을 전혀 몰라도 패션에 대한 느낌이 오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 런웨이 옆에 서 있는 느낌
  • 퍼스트맨: 모든 내용과 결과를 거의 다 알고 봐도 마지막 장면은 감동. 용산 IMAX 관에서 꽉 찬 화면에 펼쳐지는 달 표면은 사람들의 숨을 죽일 만큼 놀라움을 선사
  • 보헤미안 랩소디: 라이브 에이드를 그래도 옮긴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만으로도 본전을 뽑고 또 뽑는 영화. 사기 캐릭터인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와 무대 매너로 연출과 편집의 사소한 결점을 완전히 덮어버림
  • 저니스 앤드: 전투 장면 이상으로 긴박한 참호 장면. 이미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미쳐가는가?
  • 헌터 킬러: 인물 간의 팽팽한 갈등을 그린 잠수함 영화와 다른 노선을 따르지만 의외로 긴박감이 느껴지는 오락 영화. 옛날 방식으로 가려면 이렇게 가라
  • 스파이더맨-뉴 유니버스: 어떤 면에서는 실사보다 더 나은 스토리와 화면
  • 아쿠아맨: 원더우먼에 이어 DC를 살린 영화. 고뇌와 갈등에 빠진 나약한(?) 영웅에 질렸으니 전형적인 영웅에 열광할 때도 된 듯
  • 로마: 칠드런 오브 맨과 그래비티에 이은 또 하나의 걸작 탄생. 공들인 음향 효과는 올해 영화 중에 최고!
  • 인 디 아일: 각자도생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그리는 영화. 조용하다 못해 쥐죽은 듯한 연말 독일 느낌을 너무나도 잘 살림
  • 범블비: 범블비는 다 망가진 트랜스포머를 살릴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성공한 느낌
  • 더 파티: 올해 본 마지막 영화. 막장 드라마를 가장한 블랙코메디. 가장 마지막 장면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음

애독자 여러분들 모두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OB

금요일, 10월 23, 2015

[독서광][영화광] 마션 vs 마션(주의 스포일러!)

Warning: 순도 100%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영화나 책을 읽으신 분들만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오늘은 특집(?)으로 영화 마션과 책 마션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리해봤다. 영화는 시간 제약으로 인해 책 내용을 전부 옮길 수도 없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변사(?)를 동원해 어떤 작업을 할 때마다 구구절절 소개하기도 참으로 난감하기에 뭔가 줄이고 바꾸는 작업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시고 나서 이 글을 읽어보시면 궁금증이 상당히 많이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먼저 영화 내용이 책과 다른 부분부터 정리해봤다.

  • 마크 와트니는 감자 재배를 위한 인분을 고를 때 신중하게 자기 것(응?)만 고른다. 병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자기 배설물만 사용해야 마땅하지? 영화에서는 요한슨 냄새 구리다는 말을 한다.
  • 영화에서는 로버 한 대가 모래 폭풍에 파손되어 태양전지만 가져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책에서는 둘 다 멀쩡하다고 나온다.
  • 영화와는 달리 책에서는 감자 재비 장소가 부족해서 책상, 비상용 텐트 등을 총동원한다.
  • 책에서는 로버의 히터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RTG가 너무 열을 많이 발생시켜서, 로버의 내장재등을 뜯었다 붙였다 하게 만든다. 영화에서는 그냥 뒷좌석에 벨트로 채워놓고 끝난다.
  • 감자 재배를 위해 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와트니는 MDV 연료인 하이드라진 독성 때문에 제대로 무장하고 시작한다. 영화에서는 그냥 마스크만 쓰고 시작해서 혼쭐인 난 다음에야 방호 장비를 입고 나온다.
  • 에어록 1번이 폭발하고 나서, 덕 테이프로 에어록의 구멍난 곳을 때운 다음에 우주복을 잘라서 헬맷을 수리한다. 영화에서는 빠른 진행을 위해서 그런지 그냥 헬맷에 덕 테이프를 붙인다.
  • 영화에서는 자기가 죽으면 부모님을 찾아봐 달라는 이야기를 와트니가 선장에게 하는데, 책에서는 마르티네스에게 한다.
  • 책에서는 와트니가 로버 개조 작업 중에 실수로 패스파인더에 과전류를 흐르게 만들어 고장내버리는 바람에 지구와 통신이 두절된다. 영화에서는 패스파인더를 로버에 실어 아레스 4 MAV가 있는 스키아파렐리로 향한다.
  • 로버 개조는 절반 정도만 NASA 도움을 받고 나머지는 와트니가 직접 머리를 써서 해결한다.
  • 영화에서는 MAV 개조를 아주 빠르고 경쾌하게 진행하지만, 책에서는 (필요없는) 1단 주 엔진 1개도 분리해서 버리는 등 상당히 고생한다.
  • 영화에서는 마지막 화성 랑데뷰 장면에서 선장이 직접 와트니를 구하러 가지만, 책에서는 닥터 베크가 구하러 간다.
  • 책은 쿨하게 마크 와트니 구조 장면에서 끝난다.

다음으로 영화에서 빠진 부분을 정리해봤다.

  • 중국 항천국에서 아레스 5 탐사대에 중국인 한 명을 추가할 수 있고, 미국인을 구조해서 중국이 미국과 등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논리로 중국 국무원을 설득한다.
  • 책에서는 MAV를 개조해 아레스 4 탐사대가 와트니를 낚아 채어 스키아파렐리로 가는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물론 보급품을 와트니에 무사히 전달했다는 가정하에서.
  • 패스파인더를 태워먹은 이후 NASA와 교신은 모르스 부호를 사용해 일방향으로 와트니가 전송한다.
  • 스키아파렐리로 가기 위해 로버를 개조할 때, 비상용 텐트도 개조해서 함께 가져간다. 휴식 등을 위해 유용하게 써 먹는다.
  • 스키아파렐리로 향한 여정에서 영양소를 강화하기 위해 남은 감자를 모두 익힌 다음에 얼려서 가져간다.
  • 스키아파렐리로 가는 도중에 모래 폭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 분화구를 통과하는 도중 로버가 옆으로 기울고 트레일러가 뒤집어져서 또 한번 죽을 고비를 넘긴다.

혹시 영화를 보면서 갸우뚱 한 부분이 있으면 책을 읽어보시라! 보너스로 책이 영화보다도 훨씬 유머러스하므로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강력 추천!

EOB

토요일, 11월 01, 2014

[영화광]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메일 주소가 없다

THE VERGE에 올라온 Christopher Nolan doesn't have an email address이라는 글을 읽다보니 이번 인터스텔라로 다시 한번 극장가를 휩쓸지도 모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몇 가지 흥미로운 비밀(?)을 소개하고 있었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간단하게 번역해보았다.

  1. 놀란은 "이메일 주소를 보유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따라서 비서가 중요한 이메일을 인쇄해서 갖다준다.
  2. 항상 정시에 나타난다.
  3. 주말에 일하지 않는다.
  4. 스티브 잡스와 마찬가지로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등장한다. 물론 날씨가 차가워지면 옷이 바뀌긴 한다.
  5. 뜨거운 차에 중독되었다. 따라서 주머니에 항상 보온병을 넣고 다니고 이빨은 밤갈색으로 얼룩졌다.
  6. 영화를 만들기 전에 아버지의 낡은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해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2주일에 걸쳐 타이핑한다.
  7. 특수 효과를 (후처리가 아니라) 카메라 촬영 과정에서 최대한 많이 사용하려 노력한다.
  8. 낡은 비행기 격납고에 거대한 모델 세트를 만들어 촬영한다.
  9. 디지털보다 35밀리 필름을 선호한다. 인터스텔라가 아날로그 영사기로 올바르게 상영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뉴욕 시의 극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번 인터스텔라도 최적의 상영 환경은 (아날로그) 70mm IMAX 영화관인데, CGV 멀티플렉스에는 디지털 IMAX 영화관 밖에 없다는... T_T

EOB

화요일, 4월 09, 2013

[영화광] 봄날은 간다(스포일러 있음)

요즘 아침마다 운전을 하는 데 라디오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얻고자 하는 정보만 (무)의식적으로 쫓아가는 대신 우연에 의해 좋은 이야기나 노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종종 월척을 낚기도 한다. 얼마 전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듣고 가사가 너무 좋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제목이 같은 영화의 OST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DVD를 주문해서 감상했는데, 2001년에 나온 영화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기에 지금까지 이런 좋은 영화를 놓치고 뭐했냐는 후회가 들고 말았다.

연애 이야기에 손발이 오그라들줄 알고 보기 시작했다가 영화의 흐름을 끊기는 커녕 오히려 분위기를 돋우도록 아기자기한 일상을 제대로 묘사하는 데다가 중간 중간 예상치못한 유머 코드까지 곁들여 가며 사랑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감독의 솜씨에 화들짝 놀랐다고나 해야할까? 한쪽은 정보를 생산하는 사운드 엔지니어(상우, 유지태)이며, 다른 한쪽은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를 소비하는 PD 겸 아나운서(은수, 이영애)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 한 곳이 뻥 뚫렸다. '건축학 개론'을 보면서 핀셋으로 상처를 뒤집는 듯한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면, '봄날은 간다'를 보면서는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라는 김윤아의 가사에 나오듯 봄이 주는 묘한 죽음/삶/사랑을 다시 한번 관조해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다들 공감하겠지만, 후반 벚꽃 신이다. 한국 영화사에 남을 멋진 이별 장면으로 손꼽을만큼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봄의 벚꽃을 배경으로 새로운 생명을 상징하는 '화분'을 선물로 주고 (되돌려) 받으며 약간의 주저함을 뒤로한 채 각자 갈 길을 가는 두 남녀의 모습을 관습적이지 않게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희망이 끝났을까? 아니다.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웃는 상우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DVD 부록으로 담겨 있는 뮤직 비디오를 찾아서 공유해본다.

봄이 되어 벚꽃을 볼 때마다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할 것 같다. 죽음, 삶,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영화 중 명대사가 가슴 한 곳에 깊숙히 와닿을만큼 사랑에 웃고 울어본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한다.

EOB

토요일, 2월 02, 2013

[영화광] Paperman

올 겨울 국내 개봉해 8비트 게임 악동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주먹왕 랄프의 보너스 단편 애니메이션인 Paperman이 유튜브에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애독자 여러분을 위해 평상시 하지 않던 인라인 코드까지 삽입해보았다.

주먹왕 랄프도 무척 재미있었지만, 흥미로운 본편에 앞서 잔잔한 여운을 제공한 페이퍼맨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에 다시 한 번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절묘하게 공개되었기에 타이밍 한번 제대로라는 생각이다. 자료를 뒤적거리다 보니 주먹왕 랄프와 페이퍼맨 둘 다 각각 장편과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85회 아카데미 상 후보작으로 올랐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John Kahrs의 아카데미 후보작 감독 설문지에 따르면 존 카스는 8살부터 영화를 만들고자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픽사에서 제작에 참여한 여러 멋진 장편 애니메이션에 이어 디즈니로 와서 단편에서 감독겸 목소리 배우로 좋은 출발을 보인 존 카스의 향후 작품을 기대해본다.

EOB

일요일, 1월 06, 2013

[영화광] 라이프 오브 파이(강력한 스포일러 있음)

경고: 일단 들어가기 앞서 이 글에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들어있다는 주의 사항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께서는 지금 바로 탭을 닫으시기 바란다.

와호장룡을 보신 분이라면 다들 동감하시겠지만, 앙 리(李安) 감독의 연출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고 봐야 한다. 누가 트렌치 코트에 총이 딱 어울리는 저우룬파에게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와이어 액션 연기를 하도록 배짱 두둑하게 밀고 나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결과로 만들어진 양쯔충과 장쯔이의 화려하고 큰 동작이 가미된 대결 장면에 이어지는 저우룬파와 장쯔이의 조용한 대나무 숲 대결 장면은 숨막힐 정도로 절제된 영상미를 보여준다(와호장룡 하이라이트 참고). 자 그렇다면 앙 리 감독에게 망망대해에 보트 한 척, 소년 한 명, CG로 만든 호랑이 한 마리를 던져주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앙 리가 아니었다면 얀 마텔이 쓴 베스트셀러인 '라이프 오브 파이' 원작을 들고 가서 영화로 만들겠다고 영화사를 설득하려 했으면 미친 사람 취급 받았을테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분명 우여곡절이 많았을테다...) 20세기 폭스사가 설득에 넘어갔고, 결론적으로 3D에 끌려다니는 영화가 아니라 3D를 끌고 다니는 레퍼런스급 영화가 되어 버렸으니(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반드시 IMAX 3D로 보시기 바란다) 앙 리 감독 입장에서는 첫 메이지 영화인 헐크의 흥행 실패 정도는 충분히 극복하고 남지 않을까 싶다.

여기까지는 스포일러를 보지 못하도록 독자 여러분을 배려했다고 보면 되고, 지금부터 본 이야기에 들어가보자. 열린 결말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셉션'만큼은 아니겠지만 (아마 이 글 읽기 전까지는 그냥 마무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느낀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도 열린 가능성을 품은 결말로 끝을 맺고 있다. 바로 주인공 '파이'의 이야기가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뉘어지며, 정말 어떤 버전을 믿는지는(앞 부분에 다양한 종교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게 '믿음'의 문제라는 듯이 말이다...) 사실상 독자(또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 버전 1: 파이 혼자 여러 동물과 함께 보트에 올라탔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파이와 호랑이가 해류를 타고 표류하다 극적으로 구조된다.
  • 버전 2: 여러 사람들이 구명 보트에 올라탔지만, 생존을 위해 잔인하게 서로에게 칼질(T_T)을 한 끝에 파이가 최후로 살아남는다.

영화 속에서 작가가 지적하듯, 버전 1과 버전 2은 (동물과 사람을 1:1로 대응하면) 사실상 동일한 이야기이며 어떤 이야기가 더 맘에 드느냐는 파이의 질문에 작가는 '버전 1'이 'the better story'라 대답한다(불행하게도 한글 자막은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버전 1이 말도 안 된다고 다그치며 파이를 조사했던 일본 관리 두 사람이 쓴 보고서에서 뱅갈 호랑이에 대한 문구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 관리들도 '버전 1'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사실을 넌저시 암시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정말 버전 1일까? 버전 2일까를 고민하다보면 1:1로 대응할 경우에 버전 1에서 남는 주인공인 '파이'가 문제가 된다. 이런 모순을 해소하려면 버전 1에 등장하는 '파이'와 '호랑이'는 이성과 야성이라는 자아의 분리라고 봐야 한다(영화 초반에 파이의 아버지가 그렇게 '이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버전 1에서 멕시코 해안에 도착해서 호랑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장면은 파이의 본성에 숨어 있던 맹수의 잔인함도 함께 사라짐을 의미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이 전개되고 나서 다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 속으로 돌려보니... 중간에 무서운 호랑이가 있어 내가 정신 차리고 살 수 있다는 파이의 독백부터 시작해 중간에 여러 차례 호랑이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마음 약하게 살려주고 나중에는 쇠약해진 호랑이를 무릎에 올려 놓고 슬퍼하는 장면이 갑자기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T_T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버전 1과 버전 2가 오락가락하니 '인셉션'보다 더 많은 고민을 안겨준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듯이 보인다. 물론 여기에 딱 맞는 정답은 없지만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버전이 더 나아(better) 보이시는지?

뜬금없는 결론: '라이프 오브 파이'는 결코 방학맞이 어린이용이 아니다.

뱀다리: 실험삼아 가본 수원 CGV IMAX관은 화면도 작고 좌석 앞뒤 간격도 극악이라 추천하지 않는다. E 열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작아 보였으니 말이다. 적어도 용산 CGV IMAX관 정도는 되어야 IMAX라는 이름값을 하지 않을까 싶다.

금요일, 12월 28, 2012

[영화광] 호빗과 HFR

영화 자체만으로도 무척 재미있었지만, 상업 영화 역사상 최초로 HFR(High Frame Rate)이라는 기술을 적용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호빗을 _두 번_ 볼 수 밖에 없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 먼저 IMAX 3D HFR로 다음으로 IMAX 3D로 봤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HFR의 압승이다. 아날로그 TV를 보다가 HDTV를 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는 크고 밝은 화면 때문에 가능한 IMAX를 택했는데, 이제 선택이 가능하다면 IMAX+HFR을 택해야겠다.

잠시 기술적인 설명을 해보자. HFR은 초당 48프레임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기법이다. 지금까지 업계 표준이 초당 24프레임인 이유는, 35mm 필름 릴에서 들을만한 오디오를 재생할 수 있는 최소 비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필름 세상에서나 합당한(24프레임이라는 기술 제약으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는 상영 시간 절반 이상을 어둠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ㅋㅋ) 이런 프레임 제약이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된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니... 역시 기술 전파는 느리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HFR을 적용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1. 자연스러운 움직임: 특히 격렬한 전투씬이나 운동 경기에서 자연스런 움직임을 재현해준다. --> 호빗 중반 이후의 역동적인 전투 장면을 보면 확실하다.
  2. 밝기: 광원은 그대로라도 더욱 밝은 화면을 보여준다. --> 호빗 분위기가 밝아졌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HFR이 한 몫했다는 생각이다.
  3. 3D에서 어두움 보정: 3D용 편광 안경을 낄 경우 아무래도 전반적인 빛의 투과율이 조금 낮아지는 데다(편광의 의미를 생각해보라) 무작정 밝게 만들 경우 화면이 떨리기 때문에(영화관에서 2D 예고편 상영 중에 3D 안경을 쓰면 흰색 계통의 밝은 부분이 떨린다. 직접 실험해보시라) 3D에서는 화면을 조금 어둡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HFR을 사용할 경우 화면이 밝은 데다 화면 떨림을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3D에 아주 유리하다.
  4. 선명함: 떨림과 번짐이 없으므로 디테일을 살리는 화면 연출이 가능하다. --> 옷, 무기, 방, 성, 동굴 등 디테일한 소품들이 즐비한 호빗에서 엄청난 장점을 제공한다.

물론 HFR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분들도 많으리라는 생각이다(부작용: i) 영화가 미드처럼 보인다(ATSC 규약에 정의된 프레임 비율은 이미 30Hz다), ii) 눈에 들어오는 정보량이 많아지므로 머리 속에서 예전 버릇을 못 버리고 다시 보간법을 적용하려다 보니 어지럽다. iii) 윤곽이 너무 날카로워서 눈이 시린다). LP에서 CD로 넘어갈 때도 그랬고, 아날로그 필름에서 디지털 필름으로 넘어갈 때도 그랬었다. 하지만 HRF을 적용했기 때문에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고... 호빗 2, 3부작까지 보고 나면 아마도 다음부터는 HFR을 적용하지 않은 판타지 영화는 비교 당할 표준이 새롭게 생겼기에 무척 힘든 시절을 겪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HFR이 주는 장점이 잘 와닿지 않는다면... HIGH FRAME RATE VIDEO PLAYBACK에 가서 샘플 비디오를 감상하며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컴퓨터가 아니라 영화 스크린일 경우 더욱 더 큰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도 기억하면 좋겠다.

오늘의 결론: HFR(그리고 용감한 피터 잭슨 감독 만세!)

EOB

월요일, 11월 08, 2010

[영화광] 소셜 네트워크



(국내 포스터와는 달리 미국 포스터에는 '하버드', '천재', '억만장자', '최연소'니 하는 자극적인 용어가 전혀 없다. 'without making a few enemies'라는 문구에 주목하자.)



요즘 한창 주가가 하늘을 찌르는 페이스북으로 유명한 마크 주커버그를 다루는 영화인 "더 소셜 네트워크"가 미국에서 개봉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국내에는 언제 개봉될지 좀이 쑤셔서 미칠 뻔했다. 파이트 클럽의 데이빗 핀처 감독이 만들었으니 이거야 말로 진짜 안 봐도 블루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 11월 18일에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공식 예고편만 보며 손가락을 빨고 있었는데, "유료 시사회"라는 아주 희한한 명목으로 야금야금 극장에서 개봉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지금 당장 CGV에 들어가서 '소셜 네트워크'를 찾아봐라. 표를 살 수 있다!)



영화 본 감상평은 어떻냐구? 역시 데이빗 핀처 감독은 B급 관리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시각적인 영상미에 꽉 짜인(핀처 감독은 법정 장면이 많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스토리를 선보이는데, 말도 빠르고 타이핑도 빠르고 성질도 급한 주커버그를 다루는 영화니 속도감까지 아주 잘 살리고 있다. 처음 영화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주커버그가 아주 난처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주 조금(?) 난처해질 정도라고 보여진다. 조만간 페이스북이 국내 상륙할 모양인데 이 영화 덕을 제대로(?) 봐서 현재 전세계 50위권 정도에서 얼마나 유행을 타서 인기 몰이를 하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ㅋㅋ



여러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지만 "wget으로 사진을 몽땅 가져와야지"나 "MySQL을 설치할 리눅스 서버가 더 필요해!" 이런 대화가 오가는가 하면 인턴을 뽑기 위해 코딩 대회를 열여 정신 못차리도록 희한한 핑계거리를 만들어 인정사정 안 봐주고 술을 먹이는 모습을 보며 므흣함을 느꼈다. 과거 도스 창에서 dir 명령만 수십번 입력해 열심히 DOS 디렉터리 파일만 열거하던 구태의연한 시각 효과(?)에서 벗어나 이제 localhost에 ping도 때리고(서버 죽었는지 보려면 원격으로 ping을 해야지! 버럭!), 아파치 모듈이 뭐가 설치되었는지도 보고(중차대한 순간에 아파치 모듈 목록은 왜 보지? 차라리 error_log를 보는 편이 훨씬 더 좋았을 뻔했다), 펄이랑 PHP 코드도 슬쩍 보여주는 등 진일보한(물론 관객들은 우와 먼가 있어 보이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을거다) 시각 효과(?)를 보여주니 역시 컴퓨터가 이제 일반화된 기술이 되었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게 되었다.



원래는 독자 여러분을 위해 좀더 멋있게 글을 쓰려 했는데... 오늘 보니까 에이콘 출판사 블로그에 [페이스북 이펙트] '소셜네트워크'의 성공실화를 읽는다라는 멋진 글이 올라오는 바람에 완전히 김이 빠지고 말았다(그래서 대충 쓰고 말았다는 이야기). 뭐 어찌되었거나 소셜 네트워크에 푹 빠진 B급 관리자가 이 책도 예약 판매 신청해 입수하는 대로 얼른 읽고 서평을 올려드리겠다. 참고로 유사품(?)인 페이스북 이펙트절대로 햇갈리지 마시라.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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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1월 07, 2010

[영화광] 바흐 이전의 침묵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GEB)에서 더글라스 호프스태더는 1장 도입부에 바로 바흐의 이야기를 들고 나와 B급 관리자의 혼을 빼버린 전력이 있다. 그 당시 받은 충격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그 유명한 상륙 작전 장면 정도는 우스울 정도 였으니 수준이 어땠는지 상상이 가시리라. 엄정한 규칙을 추구하면서 무한 반복되는 자기 복제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바흐의 음악 세계를 회화, 수학, 인지학과 연결하는 호프스태더의 탁월한 능력을 보며(이 책 쓰느라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뻔 했다고 엄살을 떠는 서문에서 그냥 OTL) 머리 속으로 이리저리 상상만 했었는데, 이번에 개봉된(이런 영화가 국내의 멀티플랙스의 스크린에 걸리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이런 난해한(?) 예술 영화를 만든 사람이 스페인 국회의원을 지내고 좌파 단체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나? 낄낄) '바흐 이전의 침묵'을 보면서 음악과 시각을 절묘하게 연결한 페르 포타벨라 감독의 능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고요한 침묵이 흐르다 피아노 조율사의 조율부터 시작해 자동 피아노 연주 기계인 피아놀라가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바흐 이전의 침묵을 그대로 시각화하기 위해 감독은 특별한 줄거리도 영웅담도 자극적인 과장도 없이 일상 생활에 자연스래 스며든 바흐의 음악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보여준다.



GEB에 나온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를 사용한 연주, 화물 트럭 안에서 하모니카 연주,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벌인 첼로 연주, 수 많은 그랜드 피아노를 사용한 협연, 소년 합창단이 연습하는 아름다운 화성은 기존 잘 짜여진 오케스트라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정형적인 틀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바흐가 추구하는 엄정하고 규칙적인 세상과는 미묘한 갈등과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끝 부분에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며 규칙적이고 질서 정연한 피아놀라 악보를 보여주는데 바흐의 곡에 담긴 수학적인 규칙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목적을 넘칠만큼 달성했다고 본다.



GEB를 읽고 감명받은 독자거나 바흐 음악을 좋아하거나 시각과 음악적인 감수성이 있는 분들이라면 막 내리기 전에 얼른 가서 보시라. 주의) 이 영화는 극적인 사건(아 한 군데 있긴 하다... 중반 이후에 _화들짝_ 놀랄만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이나 줄거리가 없으므로 중간에 졸아도 책임 못 진다.



뱀다리: 이 영화를 보다보면 중간에 독일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애착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진짜다. 예를 들어, 성탄절이 되면 독일 라디오는 (거짓말 좀 보태어) 바흐 곡만 틀어준다. 이 영화에도 나오지만 멘델스존부터 시작해 끊임없는 노력 때문에 숨어있던 많은 곡을 발견한 결과 엄청나게 다양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데다 곡만 붙이면 다 찬송가니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선곡할 고민이 전혀 없는 셈이다. 몇 년 전 24일 밤에 독일의 한 작은 동네에서 열리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연주하는 소규모 음악회에 갔는데 역시 바흐가 대세...



보너스: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 연주를 들으며 봄날 야옹이처럼 나른한(?) 하루 되시길(불면증 환자에게 특효약이라는 전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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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0월 23, 2010

[영화광] 대부 2



지난번 대부에 이어 이번에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대부 2편이 재개봉했기에 잽싸게 보고 왔다. 형만한 아우 없고 1편만한 2편 없다고 말하지만 대부 2편은 확실히 형만한 아우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요즘이야 1, 2, 3, ..., X 편까지 줄줄이 시리즈로 영화관에서 개봉하지만 대부가 나올 1970년대만 하더라도 관객들이 햇갈린다고 시리즈로 개봉하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대부 2라고 이름 붙여 개봉한 결과 엄청한 흥행 성공은 물론이고 전편에 이어 아카데미 상을 싹쓸이(이것도 진기록이라고 한다)해버리는 기염을 토한 영화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이야 시퀄이니 프리퀄이니 이런 이름을 붙여 성공한 영화의 앞 이야기와 뒷 이야기를 별도 영화로 만드는 경우가 너무 흔해서 오히려 식상할 지경이지만, 대부 2는 전편의 교차 편집을 영화 전체로 확장하는 방법을 사용해 비토 콜레오네가 처음으로 뉴욕에 정착하는 과정과 비토 콜레오네를 이어받은 마이클 콜레오네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을 번갈아가며 풀어낸다.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은 (조직이 커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기는...) 알 파치노의 눈빛 연기와 젊은 시절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인...) 로버트 드 니로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연기가 오버랩되니 이건 극장 안에 있는 남자들이 오징어가 안 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대부 1편의 끝 부분에서 이놈저놈 가리지 않고 싹슬이를 하듯이 대부 2의 끝 부분에서도 역시 관객의 기대를 절대 저버리지 않게 가족, 부하, 이미 퇴물이 되버린 철천지 원수를 가리지 않고 피도 눈물도 없이 도륙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 고심에 가득찬 마이클 콜레오네의 모습을 끝으로 장엄한 막을 내리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대부 1편 보신 분들께서는 2편 막 내리기 전에 얼른 보러 가시라!




뱀다리: 대부 1, 2편을 통틀어 다음 대사는 영원이 기억할 것 같다.



"I'm going to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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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9월 25, 2010

[영화광] 픽사 스토리



jhanglim님께서 선물하신 월-E DVD 패키지 2번 CD에 들어있던 픽사 스토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 우연히 맥주 한 캔 마시며 보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EBS에서도 상영해 많은 관심을 끌었고, "픽사 이야기 PIXAR TOUCH: 시대를 뒤흔든 창조산업의 산실, 픽사의 끝없는 도전과 성공"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룬 책도 나왔었는데 뒤늦게 본 셈이다. 구글에 "픽사 이야기", "픽사 스토리", "존 라세터"(픽사 스토리를 이끄는 주인공으로 올려드린 사진을 보시라)를 키워드로 넣어 물어보니 동영상 클립부터 다양한 뒷 이야기가 나왔다. 따라서 여기서 특별히 더 추가할 내용이 있을까 생각하다 갑자기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 사항을 메모해보기로 했다.




  1. 픽사가 처음부터 3D 애니메이션에 완전히 올인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토이 스토리로 일약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존 라세터는 월트 디즈니에 흠뻑 빠져 애니메이터를 지망했으니까. 나중에 라세터는 3D를 도입하려고 이리저리 노력하다 결국 디즈니 중역의 눈에 거슬려 해고당하는 불상사가 벌여졌는데, 만일 디즈니가 계속해서 라세터를 키웠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정말 궁금하다.

  2. 3D가 애니메이션의 주류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존 라세터는 빈곤한 이야기가 2D를 망쳤듯이 빈곤한 이야기는 3D도 충분히 망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존 라세터가 부재중인 상황에서 만든 토이 스토리 2는 거의 망할뻔 했는데, 뒤늦게 재앙을 예감한 사람들이 출장 다녀온 라세터를 끌고(!) 와서 전반적인 줄거리를 완전히 다시 쓰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요즘에는 월트 디즈니의 전매특허인 2D 애니메이션도 픽사에서 기획하고 제작하는 상황이니 이야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시 기본기!

  3. 픽사에서 영화 산업에서 특수 효과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랜더맨을 만들고 나서 가장 재미를 본 곳은 어이없게도 픽사가 아니라 헐리우드 영화사였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번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T_T 스티브 잡스의 너그러운(?) 수표로 버티는 동안 독자적인 컨텐츠(토이 스토리!)가 안 나왔으면 픽사도 망했을 거다.

  4. 존 라세터가 출장에서 돌아와 다시 토이 스토리 2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실은 집에서 가족들과 푹 쉬려는 상황이었다. (참고로 존 라세터는 아들만 다섯이다!) '픽사 스토리'에서 부인이 나와 그 때 그 상황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 그 당시 난감한 상황은 안 봐도 블루레이... 아마 밤낮없이 가족들과 떨어져 몇 주를 보냈을 거다.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쇠진(burn out)이 안 되는 모양이다.

  5. 스티브 잡스가 픽사에 초기 투자금 천만 달러에 이어 매년 돈만 꼬박꼬박 붙여줬다고 하는데(다들 미쳤다고 했을거다), IPO에 올라가마자 스티브 잡스의 돈은 10년만에 1억 6천만 달러로 늘었고, 나중에 디즈니 이사회에 입성... 이 힘을 이용해 다시 아이튠즈/아이폰 사업을 눈덩이처럼 굴려 시가 총액 2위까지 오르락 내리락...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

  6. 존 라세터는 손수 BSD daemon을 그렸다.

  7. 존 라세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광팬이며 절친한 사이로 미국에 개봉되는 하야요 작품의 더빙 작업에 여러 차례 관여했다고 한다. 인증 샷



창의력을 발휘해 멋진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면 꼭 이 다큐멘터리를 감상하기 바란다. 시간 없으신 분들께서는 EBS에서 방영한 일부 내용을 담은 클립을 보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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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6월 27, 2010

[영화광] 드래곤 길들이기(스포일러 없음)



올 여름 블록버스터가 줄지어 선 지금 시점에서 대단히 뒷북치는 포스팅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주 흥미롭게 본 "드래곤 길들이기" 본 소감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넘사벽인 줄만 알았던 픽사에게 끊임없이 도전장을 던져온 드림웍스가 드뎌 뭔가를 해내고 말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슈렉이 픽사에 맞짱 뜰 가능성을 열어줬다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가능성을 넘어 현실화에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디즈니의 전매특허인 고전(?)적인 소재를 골라내,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조차도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게 정교한 스토리로 만들어, 컴퓨터 그래픽과 IMAX 3D라는 매체에 실어나름으로써 상영 시간 내내 대단한 사용자 경험을 제시한다.



개성 만점의 주인공들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정말?) 공룡들, 게다가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전투기(X-wing 아니 타이 파이터 ㅋㅋ)를 떠올리게 만드는 나이트 퓨리의 아찔한 공중 기동까지 선보이니 손에 땀을 쥐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다. 야옹이처럼 귀여운 나이트 퓨리 한 마리 기르면 소원이 없겠군.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여기서 STOP. 블록버스터 공습에 못이겨 막을 내리기 전에 얼른 보러 가시라.



힌트: 3D를 제대로 즐기려면 비싸더라도 IMAX 상영관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편광 안경을 끼면 조금 어둡다는 느낌이 들텐데, IMAX 영사기는 일반 디지털/아날로그 영사기에 비해 훨씬 더 밝기 때문에 편광 안경으로 인한 밝기 저하를 어느 정도 보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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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6월 05, 2010

[영화광] 대부



AFI가 10주년 기념으로 발표한 100대 영화 목록 중에 시민 케인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할만큼 유명한 대부가 디지털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쳐(디지털 복원은 2008년 10월에 이미 작업이 끝났다고 한다) 재개봉되었다. 대부는 1972년도에 첫 개봉했으므로 구닥다리 영화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봐도 펄펄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TV 재방송할 때마다 서너번 봐서 줄거리를 다 외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좁아 터져 특수효과가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일부 내용이 가위로 싹뚝 잘린 TV랑 큰 화면과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극장이랑 같을 이유가 없기에 선거하고 나서 허겁지겁 뛰어가서 보고 왔다. 멀티플렉스 속성상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막을 조금 일찍 내릴 듯이 보이므로 혹시 보려고 마음먹은 독자분이 계시면 오늘 당장 보러 가시기 바란다.



잘 만든 영화는 초반 20분 안에 승부를 거는 특성이 있다. 대부 역시 초반에 결혼식 장면 그리고 결혼식을 빙자해 대부에게 민원을 넣고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을 교차로 배치해 사람 혼을 빼버린다. 화려한 이탈리아 음식과 와인, 춤, 노래, 흥겨운 분위기를 보고 있자니, 이탈리아 갔을 때 먹은 맛난 음식이 생각나는 바람에 거의 3시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배고파 실신할 뻔 했다. T_T 일단 이렇게 시선을 잡아둔 다음에 민원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승부사 집단(?)의 화끈한 속성(?)을 보여주고 본격적인 패밀리 사이, 그리고 패밀리 내부의 갈등을 대단히 정교하게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마피아 영화라고 해서 총질이 난무하고 피로 떡칠을 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꼭 필요할 때만 피를 보여주기에 요즘 만들어지는 치고박고 싸우는 영화와 확실하게 스스로를 차별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보여줄 때는 확실하게 보여주는데, 일례로 비토 꼴레이네 막내 딸인 코니와 남편인 카를로가 부엌과 욕실에서 부부싸움하는 장면은 총질과 칼질보다 더한 잔인한 폭력성을 사실감 있게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 장면을 제대로 찍기 위해 코플라 가족이 총출동해서 리허설하느라 난리법썩을 떨었다는 뒷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대부가 평론가, 관객 모두에게 극찬을 받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는데, 연출-각본-배우-내용-편집-음악이라는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_조화_를 이루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뭔가 부자연스럽고 이어지지 않는 어색한 구석이 있기 마련인데, 대부를 보면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배우 개개인에 의존하지도 않았고(그 당시 말론 브란도는 한물 간 퇴물 배우... 알 파치노는 새파란 풋내기... T_T) 기발한 소재에 의존하지도 않았고 편집 기교로 망가진 내용을 살리지도 않았다. 묵직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정석대로 다룬 결과 뭔가 더 추가하거나 뭔가 더 빼버릴 내용이 없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가 탄생했다는 생각이다.



대부 1에 이어 7월이나 8월에 개봉하는 대부 2(역시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다)도 감동의 도가니탕일텐데 무척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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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5월 01, 2010

[영화광] 허트 로커(스포일러 주의)



머리도 아프고 일도 하기 싫어서 어떤 영화를 보러 갈까 잠깐 고민하다 아바타를 제쳤다는(?) '허트 로커'를 보러 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단한 만족! 물론 편집의 문제인지 자금의 문제인지 중간에 조금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뭐 이 정도는 충분히 용서가 가능하리라 본다. 큰 화면에 빵빵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봐야 제맛인데, 유감스럽게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마구 푸대접을 받고 있으므로 볼 사람은 얼른 봐야 할 것같다.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마크 보울이 플레이보이에 연재한 내용을 영화로 만든 '엘라의 계곡'도 비행기 안에서 이미 보았기에 나름 의미심장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완전히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이 영화를 놓고 반전 영화니 미국 중심 영화니 하는 논의는 솔직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소재는 전쟁이되, 사실상 주제는 전쟁이 아니니까. B급 프로그래머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은 사실성도 아니고 긴장감도 아니고 액션도 아니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산파도 아니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강조도 아니다. 그러면 뭐냐고? 바로 '몰입'을 대단히 잘 묘사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진짜 주인공이 등장할 때까지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로봇을 사용해 수색하고 폭발물을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팀장이 전사한 다음에 새로 등장한 월리엄 하사(제레미 네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폭발물 처리 임무를 수행한다. 게다가 거추장스럽다고 두터운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팀원 조언이 시끄럽다고 통신용 헤드셋 까지 집어던진 다음에 오직 뇌관 해체에만 집중하는 장면은 상황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가장 위험할 때 가장 평온함을 느끼도록 만드는 담백한 시각적인 연출은 긴장감을 배가하는 효과를 준다.



작전 지역에 출동해서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월리엄 하사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버린다. 사방에 숨어 있는 저격병, 탱크라도 잡으려고 만들었는지 한 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함께 연결된 급조 폭탄,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구경꾼들, 촉박한 시간에서 순간적으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폭발물 제거 작업은 절대로 불가능한 듯이 보인다. 대의 명분 때문에 군인 정신으로 작업하는 대신 아무 생각없이 집중과 몰입에 빠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이 영화에서는 성조기 휘날리는 배경에서 높으신 분이 애국심을 호소하기 위해 일장 연설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격려차 온 높으신 양반은 폭탄 몇 개 제거했으며, 많은 폭탄을 제거하는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 이에 윌리엄 하사는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우문현답을 한다. ㅎㅎㅎ)



임무를 완수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월리엄은 슈퍼마켓에서 시리얼을 못 골라서 당황해한다. 전쟁의 아픔 때문에 망가지고 사회에 부적응한 나머지 사고를 치는 대신 월리엄은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전장으로 폭발물을 제거하러 돌아간다. 자신에게 능숙하고 몰입에 빠질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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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5월 17, 2009

[영화광] 스타트렉: 더 비기닝



어릴 때 AFKN에서 스타트렉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언어 장벽도 문제였지만 내용 자체도 무척 지루했다는 기억만 난다. 그 이후 TV 시리즈로 나온 우주전함 갤럭티카(요즘 나오는 신형 미드가 아니다)를 보면서 감동 물결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스타트렉을 갤럭티카 처럼 만들지 않았을까? 그 이후 스타트렉에 완전히 관심을 끊고 있다가 갑자기 프리퀄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호기심에 영화를 보고 말았다(메가박스 디지털 상영관에서 봤는데, 스타워즈에 버금가는 우주 전투 장면이 펼쳐지므로 IMAX 상영관이라면 더욱더 훌륭하지 않을까 싶다.). J.J. 에이브럼스가 감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1/2은 기대, 1/2은 염려가 들었지만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짝짝...



소프트웨어 개발자 관점(여기서 jrogue군이 B급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에서 스타트렉의 미덕은 바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아주 현실감있게 다룬다는 점이다. 논리를 믿으면서도 감정에 휩싸이는 스포크와 자신의 직관을 믿으면서도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커크를 절묘하게 배치함으로써 현실에서 거의 매일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놓은 전략이 유효했다는 생각이다(낄낄...). 스타트렉에서 커크 선장을 보고 있으려니, 'Adrenaline Junkies and Template Zombies'(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도 조금만 기다려라.)에서 44번 수필에 나오는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다.



주기적으로 권한을 무시하는 팀원이 최소한 한 명 정도는 팀에 있어야 한다.

윈스톤을 보자. 윈스톤은 개발 프로젝트에서 종종 목격이 가능한 개발자 성격을 예시하는 인물이다. 윈스톤은 전형적인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지만 자신에게만 보고하는 듯이 보인다. 어떤 명령이 내려졌거나 프로젝트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과업을 직접 수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궤도에서 이탈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권한을 확장해서 관리자가 참을만한 한계점 근처까지만 갈 뿐이다. 윈스톤은 푸른색 영역에서 과업을 수행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커크 선장은 명시적으로 맡은 임무(초록색 영역)와 명시적으로 제외한 임무(붉은색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나머지 임무(푸른색 영역)를 기가 막히게 처리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지구를 구한 셈이 되었다. 실제 프로젝트를 이끌어 본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유효적절한 반칙을 할만한 배짱은 아무에게나 있는 속성은 아니다.



프로젝트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관리자나 개발자라면 (바쁜 거 알지만) 이 영화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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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04, 2009

[영화광] 슬럼독 밀리어네어(주의: 스포일러 있을지도...)



오늘 운전면허 갱신하려고 바깥에 나온 김에 용산 CGV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고 말았다. 비록 IMAX나 IMAX DMR 2D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인기를 끌었는지 사람 많이 들어가는 IMAX 상영관(5관)에서 상영하고 있었다. 2시간 조금 넘는 상연시간이 번개처럼 지나간 걸로 봐서는 시종 일관 화면에서 눈을 때지 못하도록 하는 뭔가가 있었나 보다.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인도 영화긴 하지만... 감독은 트레인 스포팅을 만든 대니 보일이다. 역시 연출력 하나는 뛰어나다고 인정해줘야겠다.



혹시나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하지 않기 위해 우회적으로 이 영화 특성을 설명하자면... 포레스트 검프에 나온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힌 운 + 어거스트 러쉬에 나오는 뭔가(?)를 위해 성공하려는 집념 + 헌신적이면서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이게 초강력 스포일러가 될지도. 낄낄... 물론 띨띨한 B급 프로그래머조차도 영화 1/4정도를 보고 막바지 결론을 추측한 걸로 봐서는 그리 이야기 전개가 복잡하지는 않다.).



오늘 B급 프로그래머가 앞좌석 옆좌석 모두 쌍으로 포위당한 모양새를 봐서는 연인들끼리 함께 보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4월에 볼만한 영화로 추천.



EOB

화요일, 8월 26, 2008

[영화광] 월. E.(스포일러 주의)



영화 대마왕(?) 뽐뿌에 말려서 '스타워즈'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제대로 잘 합쳐놓은 월. E를 보고 말았다. 감상평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거 정말 끝내주는데?"



월트 디즈니표 가족 영화답게 꼬맹이 청소부 로봇인 월. E와 이브의 가슴 뭉클한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엔딩 크레딧.



영화를 보다보니 몇 가지 떠오른 잡 생각: 뭐 당연히 스포일러지? ㅋㅋ




  • 월. E: 딱 보자마자 스타워즈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R2D2를 연상. 에피소드 IV에서 황량한 사막에 외톨이가 된 R2D2랑 폐허가 된 쓰레기 더미에서 홀로 외롭게 임무를 수행하는 월. E. 모습이 겹쳐서 가슴이 '찡'했다(멀리서 광각으로 잡아낸 첫 도입부는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최고의 장면!). 여기서 분위기 깨는 소리 하나 하자면... 태양열 전지 충전 후 리부팅 시 울리는 차임은 매킨토시 시동음이다. 중간에 아이포드도 보이고 하던데... 관객들 안(아니 못) 웃음. ㅋㅋ


  • 이브: 아이포드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의 작품답게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처자 로봇. 손 한번 잡으려다 잘못하면 레이저 블레스터로 통구이될지도... 결론: 여자는 너무 무서워.
  • 오토 파일럿: 스페이스 오디세이 HAL.
  • 중간에 나오는 음악 중 '푸른 도나우 강'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모두 스페이스 오디세이 우주 도킹 씬과 깨달음(자각) 씬에 나오는 메인 테마.
  • 쓰레기 폐허 더미에 갇히는 장면은 에피소드 IV에서 패러디. 이후 도킹 독에서 가까스로 우주 공간으로 안 빨려들어가고 살아남는 장면은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
  • 선장이 오토 파일럿과 싸우는 장면은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HAL과 최후로 한 판 붙는 장면을 연상. 하지만 오토 파일럿이 데이지(!)는 안 부르네?
  • 월. E.와 이브를 돕는 청소 로봇과 고장난 로봇들, 그리고 귀뚜라미(?)는 B급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조연으로 쏠쏠한 재미를 부여하는데 밉지 않고 귀여웠다.
  • 중간에 월. E.와 이브의 우주 유영 장면은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너무나 사실적인 정적 이미지와 대비해서 역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영화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음.
  • 승객들 모두 약하고 뚱뚱하니 지구에 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나온 대답이 걸작. "운동하면 됩니다" -->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운동하기 위해 트랙 도는 장면이 갑자기 떠 올랐는데, 실제로 우주선 액시엄 내에 있는 트랙을 안 보여줘서 왕 섭섭.
  • 마지막에 월. E.가 기억을 잃어버리고 그냥 평범한 청소부 로봇이 되었다면 너무나 좋을뻔 했는데, 역시 월트 디즈니 가족 영화라는 한계. 가슴 ___찌이잉___한 사랑 영화를 원한단 말야!


월. E.는 특수 효과나 편집 기술이 아니라 상상력의 승리다.



EOB

월요일, 3월 17, 2008

[영화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스포일러 주의)



이번 출장에서 10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기에, 개인용 VOD 시스템을 활용해서 영화나 실컷 즐기자는 생각에 탑승 직후 영화 안내 책자를 펼쳐 들었다. 근간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 몇 편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조엘과 에단 코엔 형제가 동명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1980년대 황량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세 명의 주인공(도망자, 추격자, 보안관)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며 그 놈의 인생이 뭔지 큰 화두를 던져준다. 영화에 붙어있는 'No country for old men'이라는 제목부터 무척 의미 심장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친구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냉혹한 살인마인 안톤 쉬거이다. 과거 웨스턴 정통 서부극의 주인공에 어울릴만한 특성(과묵, 집념, 동물적인 감각, 신의(?), 두뇌, 결단력)을 살인마에 그대로 투영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가 보이고자 하는 모순성을 증폭시킨다. 도망자로 나오는 조쉬 브롤린이 연기한 르롤린 모스 역시 땀 내음 풀풀 풍기는 전형적인 서부 사나이 연기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문제는 바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에드 톰 벨이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강조하는 경험, 혜안, 연륜, 노인에 대한 존경심... 이런거 다 접고 현실에서 늙은이가 젊은이를 상대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항상 한발 늦어 망연 자실한 모습을 현장감 있게 잡아낸다. 그래도 이 보안관 아저씨가 뭔가 한 건 건지리라는 기대를 영화 마지막까지 해보지만... 역시 현실은 물론이고 영화에서 조차 노인을 위해 날로 먹을 수 있는 만만한 세상을 찾긴 어려운 모양이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이번 출장의 진짜 목표인 개발자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아. 착각은 금물. 여러분 생각과는 반대로 B급 프로그래머가 피면접자가 아니라 면접자이며, 면접 대상은 나이 지긋한 백인 개발자 아저씨.



면접 결과? 당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급 프로그래머가 해시 알고리즘에서 승수(MULTIPLIER) 특성을 물어보았는데, 1번 문제부터 왕 좌절.



문제? B급 프로그래머도 늙어가니 앞으로 팔팔한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먹고 살지 정말 걱정이다(충고위안 하나: 지금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에 부푼 일부 젊은 친구들이여... 미안하지만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네...). 20대가 88만원 세대라는 고민거리에 밤잠을 못 이룬다면, 늙은이들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때문에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는 모양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다.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