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izen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소설인 '신들의 사회'를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그야말로 번개처럼 읽었다. 혹시 이 책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과연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주저하시는 분을 위해 jrogue군이 등잔에 불을 붙여보겠다.
'신들의 사회'는 '휴고상 수상작'이라는 책표지에 적힌 문구만 보고서 낚일 가능성이 높은 책이다. 미래 세계를 우울하게 다루거나 인간과 기계의 투쟁을 그리거나 아니면 물질 만능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개인의 투쟁을 담았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미안하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출발한다. 바로 힌두교/불교/기독교/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나올법한 신들의 이야기를 미래로 옮겨서 풀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SF를 기대하고 이 책을 펼쳤다면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불친절함과 난해함에 책장을 바로 닫아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겁부터 줘야겠다.
설상가상으로 이 책은 일반적인 기-승-전-결 서술구조를 따르지 않고 결부터 시작해서 다시 승-전-결로 진행하기 때문에 잠시만 딴 곳에 정신을 팔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가 풀려나가는지 마구 헷갈릴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인물 하나가 여러 인물로 분산해서 나타나기도 하고, 여러 인물이 하나로 합쳐져서 나타나기도 하므로 소설 중간 중간에 누가누군지 파악하기 위해 책 앞뒤를 왔다갔다해야 할지도 모른다. 띄엄띄엄 책을 읽는 대신 순간적인 집중력을 발휘해서 독파해버리는 스타일의 독자가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책을 읽는 과정에서 들인 노력만큼 얻는 내용도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오한 종교와 철학적인 내용을 SF에 접목시켜서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나니아연대기도 울고갈만큼 뛰어난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찻집에서 차를 홀짝거리며 선문답만 즐기는 내용이 아니다. 활자를 통한 시각적인 효과가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시종 일관 상상력에 불을 붙이면서 즐길 수 있다. 특히 최첨단 무기(열추적 미사일, 제트 추진식 비행정, 최첨단 통신 장비, ...)를 총동원한 전투 장면은 여느 SF 소설에 뒤지지 않는 짜릿함을 안겨준다.
번역 상태는 아주 좋기 때문에 한글판으로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본다. 만일 한글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원서를 읽어도 마찬가지 느낌이 올 것이다. 여러 가지 종교적인 단어와 선문답을 번역하느라 고생했을 역자에게 박수를...
스포일러 나간다: 타락한 종교와 사회적 모순에서 어떻게 무지한 민중을 구원해낼지 '1세대 중에서 등장한 촉진주의자'들이 '신권주의자'에 맞서 과학 기술 전파와 카스트 제도 붕괴를 위해 펼치는 눈물 겨운 노력을 jrogue군 독자 여러분도 맘껏 즐기면 좋겠다.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