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간만에 문화를 다루는 책(출판사에서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미리 언급한다) 하나를 소개해드리겠다. 음악 애호가라면 레너드 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텐데, 바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번스타인이 지은 책이다. 물론 번스타인의 정치적 성향과 사생활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 당연히 금서(응?)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내용 자체가 워낙 훌륭하기에 (특히) 클래식 애호가들이라면 꼭 한 번 읽고 넘어갈 필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클래식'이라는 단어만 봐도 몰려오는 졸음을 느끼는 분들일지라도 이 책을 읽으면 여러 차례 화들짝 놀랄 정도로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으므로 음악에 대한 수준과 지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책 초판이 1959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증쇄를 거듭하고 있으며 심지어 번역서까지 나온 것을 보면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느낌이다. 실제로 다루는 내용이나 전개와 표현 방식이 1950년대 쓰여진 책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혀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1부는 '상상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번스타인과 상상의 인물 사이에 주고 받는 편지 형식으로 번스타인이 평상시 생각하던 음악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2부는 CBS에서 포드 재단의 후원으로 시작한 예술 프로그램인 옴니버스 방송 대본(총 7개)을 그대로 가져왔다. "'악보'를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고민을 평상시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후회를 하고 말았다. 악보라는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장벽 앞에서 무릎을 꿇고 텍스트만 읽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혹시 악보를 이해하는 분들이라면 감동이 배가 되리라 확신한다. 뭐 그렇다고 바로 포기하지 마시고, 유튜브에 올라온 방송 내용 발췌본을 보고 들으며 당시 분위기를 느껴보시기 바란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
재즈의 세계
지휘의 기술
미국의 뮤지컬 코메디
현대 음악으로의 초대
요한 제비스티안 바흐의 음악
그랜드 오페라의 찬란함
짧은 비디오 클립만 봐도 알겠지만, 뛰어난 지휘자이자 작곡자이자 연주가(피아노)인 번스타인이 각 주제에 대해 아주 적절하게 기존 사례와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이론과 _연주_와 자기 경험을 녹여 놓는 기술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여기에 열정까지 느껴지니 할 말 다한 셈이다.
본문 중 흥미로웠던 부분을 정리해보겠다.
모든 작곡가는 두 가지 면에서 고뇌합니다. 하나는 주제를 이루는 적확한 음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제를 이어받아 하나의 '교향곡'의 주제로 세울 수 있는 적확한 음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운명 2악장의 서두를 위해 베토벤이 공책에 써 둔 선율이 최소 열네 가지 버전에 이른다는 사실이 베토벤의 고뇌를 잘 말해줍니다.
오늘날 운명을 듣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명료하고 적확하게 베토벤에게서 쏟아져 나와 단방에 완성되었을 게 분명하다고요. 천만에요. 베토벤은 아래 수고와 비슷한 악보를 몇 장이고 썼다 버렸습니다. 그 양이 책 한 권에 달할 정도입니다.
재즈에서는 연주자가 곧 작곡자이고 창작자의 지위, 고로 더 위엄있는 지위를 차지함을 의미합니다.
즉흥 연주, 이것이 모든 재즈 음악의 진면모입니다.
지휘자의 악기는 100명의 '인간'입니다. 자기 의지를 가진 전문 연주자 100명으로 마치 하나의 의지로 하나의 악기를 연주하듯 음악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템포는 지휘자마다 다릅니다. 같은 작품을 지휘자 여섯 명의 연주로 들어 보면 서로 다른 여섯 가지의 템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휘자는 악보를 눈으로 보는 동시에 머리속으로 듣습니다.
바흐는 가로 낱말과 세로 낱말이 서로 맞물리면서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맞아떨어지는 퍼즐, 즉 '음표'로 이뤄진 최고의 가로세로 퍼즐을 고안한 것입니다.
바흐에게 음표는 단순히 음향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였습니다. 바흐는 음표를 이용해 십자가를 형상화하거나 예수의 손짓을 묘사하거나 천상으로 올라가는 영혼의 움직임을 나타나는 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클래식 음악에 대해 뭔가 기초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강력 추천!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