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실패와 관련한 책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고 있다. 신기술 성공의 법칙: 고객의 마음을 읽는 티핑 포인트 변화함수의 비밀과 초난감 기업의 조건이 대표적인 책인데, 문제는 (특히 한국) 사람들이 실패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므로 공론화시켜 실패에 대한 분석 시도를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남들이 뭐라하든 실패에 관심이 많은 B급 프로그래머는 이번에도 실패와 관련한 책을 들었다. 이름하여 '세상을 바꾼 혁신 vs 실패한 혁신'!
기존의 부드럽고 잘 넘어가는 사탕처럼 느껴지는 innovation 관련 서적과는 달리 이 책은 아주 까칠하게 시작해서 까칠하게 끝난다. 이 책은 새롭고 멋지고 환상적인 혁신 대신에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채택되고 영향력을 미치는 진짜 혁신이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신기술 성공의 법칙을 읽고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분들이라면 이 책을 좋아하리라. 특히 본문에 나오는 글라이처 공식은 변화 함수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쓸만하다는 생각이다.
D * V * F > R일때만 변화가 일어남. 여기서 D는 현 상태에 대한 불만, V는 상황이 바뀐다면 무엇이 가능할지에 대한 비전, F: 변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첫 단계, R: 변화에 대한 저항(돈, 불편, 시간)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혁신은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돈을 투자하도록 유인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게 만들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게 아니다라는 아이디어와 혁신을 필터링하지 않으면 향후 아이디어와 혁신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므로 사회적으로 손해라는 설명을 한다. 선수들끼리 자기 만족을 느끼기 위해 장사해봐야 별 볼일 없다는 이야기다(B급 프로그래머도 실제로 이런 부류의 집단에서 잠시 일을 했었는데, "고객은 뭘 몰라, 우리 기술이 최고야!"라는 모토를 반복적으로 듣다보면 진짜로 미친다. T_T). 본문 중 내용을 잠시 살펴볼까?
혁신가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린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가치를 따지거나 새로운 정도를 따질 때 자기들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닫혀 있다. 결국 그들은 최종 사용자들을 단순하게 아주 조금만 이해한다.
초난감 기업의 조건에서도 늘 남과 자기의 실패를 분석해서 이를 방지하는 수법이 성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패기만만하고 자신 만만한 사람 앞에서 이런 행동은 무척 어려운 듯이 보인다. 특히 혁신가라면 초난감 기업의 조건과 같은 책을 보면 바로 찢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본문 중에 6만명이 넘는 투자가들을 연구한 자료가 있는데, 개인 투자가 들이 돈을 잃는 이유도 놀랍게도 지나친 자신과 낙관이라고 한다. 버클리 경영대학교 심리학자 오딘이 말한 내용을 옮겨볼까?
개인 투자가는 마땅히 팔아야 할 주식을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후회를 피하기 위한 면이 강하다. 가지고 있으면 주가가 올라서 회복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지만, 팔고 나면 돈을 잃었다는 현실에 직면해야 할 뿐 아니라 판 뒤에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보게 될 위험이 있다.
암암 어렵고 말고. 스위스 은행가가 가르쳐주는 돈의 원리에서도 '당초 원했던 수익에 도달하면 욕심을 버려라'라는 규칙으로 판 뒤에 주가가 오를 때 느끼는 괴로움에 대해 한숨을 푹푹 쉬며 설명하고 있으니 일반 투자가야 오죽하겠는가? :)
마지막으로 영업 사원의 딜레머를 살펴보며 마무리를 하자.
제품이 혁신적일수록(그리고 제품에 기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영업사원들은 질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능을 강조해 판매하려고 한다. 강력한 신제품은 영업 사원들의 관심을 고객이 아니라 제품에 쏠리게 만든다.
이래서 수 많은 혁신적인 제품을 팔려다가 고객에게 퇴짜를 맞고 제품은 비참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늘 말하지만 제품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다!
뱀다리: 이 책에 나오는 역자주가 대략 황당하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만 달려 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 지 잘 모르겠다. T_T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