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도 식힐겸 경제/경영/IT 서적 대신 소설 책을 읽어보았다. 독서광인 B급 프로그래머의 관심을 끈 책은 바로 '더 리더'! 책도 많이 팔리고(무려 초판 26쇄!) 영화로도 나왔지만 다행히 주제, 줄거리를 전혀 모른 채로 읽어보았다. 혹시라도 책이나 영화를 접하시려는 독자분이 계시면 바로 [Back] 버튼을 눌러주시라.
이 책은 처음에는 사춘기 소년과 연상의 여인 사이에 사랑 놀이를 다루며 남자와 여자 심리를 파고드는 척(!)하다가 중반에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벌어진 아픈 과거에 휩싸였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누명을 뒤집어쓰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후반에는 책이라는 매개물을 사용한 소통을 다루는 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심리 묘사가 아주 잘 되어 있기에 주인공의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며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그 와중에서도 무거운 과거 역사를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만들므로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멤돌았다.
이 책 지은이가 법대 교수이자 재판관이다 보니 법과 철학에 대한 심오한 이야기도 제대로 나온다.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내용을 정리해보았다(법대 다니는 주인공과 철학과 교수인 아버지 사이에 오간 대화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돼."
"나중에 가서 그들 스스로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경우에도 말인가요?"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어. 넌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그 차이를 잘 알았잖니. 엄마의 말이 늘 옳은 것이 내겐 별로 마음 편치 않았잖아."
이 책의 중심에는 책을 읽는 행위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다. 사랑을 나누기 전에 책을 읽으며, 편지 대신 책을 읽는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로 서로 소통한다. 그 중간에는 책을 읽지 못하며 글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눈으로 읽는 물건이라고 인식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책이 귀로도 듣는 물건으로 탈바꿈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눈으로 읽거나 귀로 듣거나 머리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갑자기 누군가 B급 프로그래머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그냥 아이포드 터치에 오디오 북이나 포드캐스트를 넣어서 듣고 다녀야겠다.
EOB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