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경제/경영 블로그답게 흥미로운 책을 하나 소개하겠다. 번역서 제목을 다소 자극적인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고 바꾼 이 책은 원서 제목인 'Knowing-Doing Gap'(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지행격차'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말보다 실천이 어렵다'는 명제를 기업의 흥망성쇠와 연결해 소개하는 책 중에서는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조직 성과와 성과를 내는 방법을 잘 아는 경영자들이 나름 일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가지는 이유를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경영/경제/자기 계발서가 쏟아져 나왔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비롯한 각종 논문과 연구 결과들이 속속들이 출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가지는 회사들은 어김없이 망가지고 있다(심지어 유명한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아 회생하려 노력하다 더 망가진 회사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실패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 경영진이 무능해서, 직원들이 복지부동해서, 부정부패가 만연해서, ... 이렇게 설명을 하면 명쾌하고 단순하긴 하지만 문제를 풀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만다. 희생양을 하나 잡은 다음 죽도록 비판하고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테니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른 각도로 접근한다. 망가지는 회사들의 특징 중 하나로 지행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파해치면서 어떻게 하면 지와 행을 가까이 붙일 수 있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지행격차라는 제목부터 센스 작열인데, 이 책의 각 장 제목을 보면 손발이 더욱 오그라 든다. 간단하게 핵심 목차를 살펴볼까?
- 지식의 부족이 아닌 실행의 부족이 문제
- 말이 행동을 대신할 때
- 기억이 생각을 대신할 때
- 두려움이 지식 실행을 가로막을 때
- 숫자가 판단을 가로막을 때
- 내부 경쟁이 친구를 적으로 만들 때
우리들은 지금까지 묵묵히 일하는 사람보다는 말만 번지르한 빅마우스(!)를 대접하고,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소!'라며 과거 관행을 집착하며, '내 말 안 들으면 모가지야' 공포감을 조성해 직원들을 복지 부동 모드로 만들고,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새워 이리 꼬고 저리 꼬은 BSC나 KPI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 내부 인력들을 동지가 아니라 적으로 만들고, 철저하게 내부 경쟁을 붙여 조직내 정보 교류를 막고 타인을 방해해야만 성과급을 받도록 만드는 회사를 얼마나 많이 목격해왔는가! 이 책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도록 이리 막고 저리 막는 기업의 나쁜 관행을 시원하게 까발린다. 물론 사례 연구에 BP를 넣은 심각한 오류를 범했지만(참고로 이 책이 나온지 10년 넘었을거다), 이 정도는 용서하고 봐주자. 평생 승리하는 회사는 없으며 모든 회사는 실수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니까 말이다.
자, 그러면 책에서 나온 재미있는 내용을 함께 살펴보자.
실행되는 지식은 독서/경청/생각을 통해 학습한 지식일 가능성이 낮다. 그보다는 행동을 통해 학습한 지식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위대한 기업들은 보통 사람으로부터 위대한 성과를 뽑아낸다. 위대하지 않은 기업들은 재능있는 사람을 뽑아 그 인재의 재능과 통찰과 의욕이 줄 수 있는 혜택을 어떻게든 무력화한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하면 알게 된다'라는 철학이 일을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직업에서 가장 일관성 있게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기업에서 사람들은 똑똑하고 생산적인 것들을 '실행'하면서가 아니라, 똑똑하게 '말함'으로써 남을 앞서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견을 공공연히 표현하지 않고 공적으로는 결정을 수용하지만, 실행을 위해서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용기를 내어 실질적인 뭔가를 제안한 사람들이 밀려난다면, 조직은 영리한 반박꾼들로 넘치고 행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발언 내용의 질과는 무관하게 더 길게 더 많은 논평을 한 사람들이 덜 수다스러운 집단 구성원들보다 새로운 집단에서 리더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경영 컨설팅은 말을 파는 직업이다.
모두와 정보를 공유하려면 남이 모르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힘과 특권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SAS에는 모든 간부가 '일하는 간부'다. 이는 심지어 공동창립자이자 CEO인 제임스 굿나이트에게도 적용된다.
루소는 사람은 언제나 뭔가를 하지 않을 구실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고 필요한 뭔가가 왜 되지 않는지에 대해 늘어 놓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말로 바꿔놓아야 한다.
기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만큼 용기를 내고 기존 관행이 폐기되고 새로운 관행을 세워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하는 사람들은 무시되거나 혼나기 쉽상이다.
두려움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과거의 문제를 재발시킨다. 더 좋은 일처리 방식을 알 때조차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과거를 반복하곤 한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라는 생각은 정당성이 없다.
기업들이 전략, 문화, 인센티브 제도 등에서는 엄청나게 다르면서, 관리적 측정과 보고 시스템에서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이 이치에 맞아 보이는가?
사람들을 다양한 유닛에서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도 팀 중심 문화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느 사회나 회사에서든 경쟁은 대체로 선택 사항이지 인간 본성의 어떤 성질 때문에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결과는 아니다.
회사(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인지하는 대로 개인의 전문성에 따라 연봉과 보너스가 결정되기 때문에 자신의 결점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커진다.
불안 속에서 생존을 다퉈야 하는 경쟁적 환경에서는 기존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배우려는 노력이 아닌 그들을 깔보고 헐뜯음으로써 새로운 사람들의 능력을 폄하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일단 어느 개인, 집단 또는 부문이 성과 경쟁에 져서 '패배자'라는 꼬리표가 붙고 나면, 그 후 성과는 더 나빠진다.
되풀이되는 일상적 과업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것과 새로운 지적 과업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이 두 가지를 사람들은 헷갈리곤 한다.
과업이 매우 어렵거나 복잡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고 정보 공유가 요구될 때 내부 경쟁은 특히 더 파괴적이다.
보통 조직 내 여러 구성원들 간의 상호의존성이 높을수록 개별 기여의 측정이 어려워진다.
대체로 우리 회사의 리더들이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리더십 능력뿐만 아니라 경쟁 능력도 뛰어난 덕분이었다. 따라서 리더들 대부분이 업무 환경에 경쟁을 도입하면 성과가 높아질 거라고 믿는 것은 당연하다.
지행격차에 대해 아는 것과 지행격차에 대해 어떤 읽을 '하는 것'은 다르다. 원인을 이해하면 그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의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은 된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행동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오늘은 보너스로 지식 실천을 위한 8가지 지침을 정리하며 마무리하겠다. 여러분이 지금 다니는 회사는 얼마나 '실천'에 강한지 다시 한번 점검해보시기(그리고 지금 회사의 실천 능력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까운 인생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마시고 얼른 다른 길을 찾아보시기) 바란다.
- '어떻게'보다 '왜'가 먼저이다: 철학이 중요하다
- 실행하고 가르치면서 지식을 얻는다
- 계획과 개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 실수 없는 실행 없다. 회사의 반응은?
- 두려움은 지행격차를 벌린다. 두려움을 몰아내라
- 끼리끼리 싸우지 말고 경쟁사와 싸우라
- 지식 실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측정하라
- 리더가 어떻게 시간과 자원을 쓰는지 중요하다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추천해 주신 책, 꼭 읽어 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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