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4월 17, 2010

[독서광] 슈퍼자본주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세트로 엮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느 한 쪽을 공격하면 당연히 다른 쪽도 부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슈퍼자본주의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가 썼으며, 요즘과 같은 비즈니스 후(!)렌들리한 환경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분리(decouple)되는지에 대해 다루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미국의 황금기(1945~1975)를 설명한 다음에 바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분리되면서 자본주의가 압도적으로 성장해 '슈퍼자본주의'라는 괴물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정말로 무지막지하고 막강한 자본주의 앞에서 맥도 못추는 민주주의를 바라보면 일방적인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직도 '좌빨'이니 하는 케케묵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남탓하는 사람들을 병진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왼'쪽으로 살아가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가정: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한 세트).



이 책의 주요 논지를 정리하자면, 요즘 세상은 너무나도 변동성이 크고(버튼 하나면 주식 매수/매도가 가능하고, 뮤추얼 펀드 가입/환매가 가능한 세상),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 전파력이 막강하고(금리/환율/주식 정보가 실시간으로 휴대폰에 전송되는 세상), 대량생산보다는 개인에 맞춰진 서비스가 압도적이므로(인터넷을 사용한 유통, 훌륭한 택배 시스템을 사용한 물류를 제공하는 세상) 더 이상 계획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규모의 경제에 의존하는 독과점 기업 몇몇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변신 합체가 가능한 기업으로 주도권이 넘어갔으며, 그 결과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으로 자본을 집중시키기에(수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에 실시간으로 투자하며 1원이라도 싸고 서비스가 좋은 프렌차이즈로 고고씽!)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쥐락펴락해버린다는 내용이다.



독과점 기업에서는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하고(대량 생산 때문에 모델 개수가 적으니), 품질이 그리 좋지 않고(경쟁사가 적으니 굳이 품질 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으니), 비용이 그리 저렴하지 않은(직원 월급과 복리 후생에 신경쓰다보니) 대신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을 충분히 지고 있었다(그래야 독(과)점을 보장 받을테니). 하지만 요즘 기업들은 개인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고(안 그러면 내일 새로 생기는 기업에게 먹힐테니), 품질이 좋으며(경쟁 기업이 아주 많기에), 비용이 저렴한(직원 월급과 복리 후생은 나중 문제니) 대신 사회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다(로비를 벌여 법과 정책도 바꾼다. 낄낄). 소비자이자 투자자로서 우리는 독과점 기업보다는 요즘 기업을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그 결과 벌어지는 일은 바로 민주주의 후퇴로 나타난다(기업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좋은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은 우리 대부분의 안에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와 투자자로서 우리는 더 좋은 거래를 원한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런 거래에서 비롯되는 많은 사회적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교 쇼핑을 하고 최선의 가장 멋지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싼 물건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우리 안의 시민은 그것의 불가피한 결과인 스트레스와 불안정에 대해 걱정한다.


현대의 CEO는 때로는 무자비해야 하고 어떻게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과서와 같은 표준적인 규칙은 없으며 잘 마련된 전략지침서도 없다. 그런 것이 있다면 경쟁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도덕성도 시장의 다른 상품처럼 가격만 맞으면 살 수 있는 것이다.


회사들에 '사회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 말은 기업이 수익을 높이기 위해 뭔가를 하다가 우연히 사회를 위해서도 나름대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경우에 적용될 것이다.


대중은 금방 잊기 때문에 금방 용서한다.


주주들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자선 행위에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주주들은 높은 수익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기업은 공동선에 관심이 없다. 선행은 기업들의 의무가 아니다.


가령 미국인들은 "Microsoft is trying to......" 혹은 "Wal-Mart wants......"라는 식으로 기업을 독립적인 단수로 취급한다. 반면에 영국인들은 "Rolls-Royce are considering ......"이라는 식으로 기업을 복수인 사람들의 집합으로 다룬다.


기업은 애국적이 아니다.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 충격적인 해법이 나온다. 의료보험을 직장에서 분리해 고소득자에게 돌아가는 막대한 혜택을 줄이는 동시에 저소득층을 위한 기금을 확보한다는 방식이나 법인세를 완전히 폐지하고 주주에게 세금을 부담하게 만들어 기업의 수익을 주주들의 수익 형태로 변경해서 기업들이 사내 유보를 못하게 만들고, 소득세를 통합함으로써 주식을 소유한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세율을 자기 전체 소득에 맞춰 조정한다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 책은 내용이 중첩되기 때문에 빠르고 뭔가 화끈한 대응책과 결론을 요구하는 독자에게는 지루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충분히 읽을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세계화라는 쓰나미에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고민거리만 하나 더 안겨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뱀다리: '삼성을 생각한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다보니 '삼성'(여기서 '단수'다. 낄낄)은 아주 톡특한 사례로 보여진다. 하지만 언제까지 현 성장동력이 유효할지가 정말로 궁금하다. '위기'라고 느꼈다니 어떻게든 대응하겠지?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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