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천재들의 실패에서 LTCM이 완전히 망가지는 이야기를 했었다. '인간'적 요소를 잊어버린 천재들의 비극이라고... 하지만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LTCM을 필두로 현대 금융 제국(?)의 위기를 일으킨 초대형 사건을 조금 색다른 시각으로 분석한다. 요약해서 말하지면 "블랙 스완"은 플라톤적 사고관과 정규 분포/가우스 곡선으로 무장한 이들이 다이너마이트 장작 더미에 올라 불장난을 치는 광경을 다양한 각도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책 제목이자 아이디어를 일컫는 용어인 검은 백조(Black Swan, 모두 대문자로 시작함에 주목하라!)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속성이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 과거의 경험으로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는 '극단값': 대대수 사람들은 '극단값'을 배제한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함으로써 불확실성이 없다고 눈감고 있다.
- 극심한 충격을 가져오는 요인: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극단값'이 일단 등장했다하면 사람들이 전혀 무방비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이 온다.
- 일단 존재가 드러나고 나면,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대상으로 전락: 하지만 사람들은 설명의 귀재들이라, 일단 벌어진 사건은 어떤 형태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즉, 사후 설명이 불가능한 사건은 없다.
자, 그렇다면 탈레브는 '검은 백조'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할까? 책 자체가 여러 가지 개념 소개, 예제 제시, 비유, 설명으로 범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 파악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일관성있게(어떤 사람은 이를 '중언부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장하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 자가 증식이라는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신장이나 체중으로 줄을 세우는 평범한 왕국에서는 중력의 법칙에 지배를 받으며, 유토피아적인 평등이 지배하며, 하나의 관측값이 전체를 좌우하며, 집단이 지배하며, 과거 정보로 예측이 가능하며, 정규분포 곡선을 따른다. 하지만 재산이나 책 판매량으로 줄을 세우는 극단의 왕국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하고, 물리적인 제약이 없으며, 극단적인 몇 개 사건이 전체를 결정해버리며, 돌발 사건이 지배하며, 과거 정보로 예측하기가 어려운 프래탈적인 속성이 있다.
- 확인 편향의 오류의 위험성을 깨달아야 한다: "검은 백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를 "검은 백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없다는 증거가 있다"로 혼동하기 쉽다. 확증해주는 증거만 찾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 사후 합리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순화를 강요하는 조건이 세계를 실제보다 덜 무작위스럽게 여기게끔 만든다.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팔기 쉽게 만드는 '이야기 짓기'는 주변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뒷북치는 수 많은 분석 기사(과도한 원인 찾기라는 오류)가 이를 증명한다. 사후 합리화는 심지어 미래 예측에서도 고개를 내민다. 사람들은 이야기 짓기로 만들어낸 가짜 검은 백조에 열광하는 반면 머리 아프고 추상적인 진짜 검은 백조는 과소평가하기 마련이다.
- 정보는 지식의 장애물이다: 배움, 훈련, 경험이 인식론적 오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일반인들보다 예측을 훨씬 더 멍청하게 하곤 한다. 바쁜 티와 배운 티를 내어야 인정을 받는 상황에서 '부산 떨기'는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상적인 행동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변화하는 분야, 그래서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대체로 전문가가 나오기 어렵다. 극단의 왕국에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예측으로 먹고 사는 전문가는 더욱 나오기 어렵다. 극단의 왕국에서는 어떤 일(또는 프로젝트)을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앞으로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지기 때문이다.
탈레브는 검은 백조 아이디어를 사용해서 소위 말하는 (주로 금융) 전문가를 가장한 사기꾼(?)들을 마음껏 조롱하고 비웃는다. 삐딱선을 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짜릿함을 느낄테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 친구 잘난 척에 그냥 이를 갈지도 모르겠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를 읽고난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