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5월 16, 2010

[독서광] 나쁜 사마리아인들



국방부에서 지정한 군내 반입 금지 품목으로 일약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굳이 서평으로 남길 필요가 있을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그냥 재미로 독후감을 한번 정리해보았다. 장하준 교수야 이미 이 블로그에서 [독서광]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바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라며, 오늘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정체를 밝혀보기로 하자.



장하준 교수가 지목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미 경제적인 성과를 거둬 소위 말하는 선진국 대열에 낀 국가와 이 국가들이 뒤에서 조정하는 각종 국제 기구(예: 호랑이 곶감에 버금가는 공포의 I/M/F)를 일컫는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온갖 나쁜 짓을 일삼은 다음에 이를 망각한 채로 후발 주자에게 자신들이 이상향이라고 여기는 관례를 따르도록 만들어 진입장벽을 쌓는 특징이 있다. 물론 선구자니까 그 만큼 시행착오도 있었고 수업료도 내었으니 후발 주자들에게 입장료를 받아 챙기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 결과 벌어지는 눈물나는 현실은 인정하지 못하겠다.



이 책은 선진국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자유 무역 주의, 평평한 운동장 이론, 중앙 경제 계획의 부정과 중앙 은행의 독립성 강화, 외국인 투자 자유화, 공기업 매각, 지적 재산권 보호, 재정 건정성 강화, 부패 척결과 같은 화려한 미사여구에 맞서 허상을 파해친다. 그러다보니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를 옹호하고, 박정희 식의 중앙 경제 개발 정책을 지지하고, 보호 무역을 주장하고, 공기업을 선호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어 오른쪽(?) 왼쪽(?)에서 동시에 두드려 맞는 기현상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름다운 과거가 아니라 추악한 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샌드위치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파악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몇 가지 기억할만한 문구를 살펴보자.



'자유' 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개발 도상국의 '자유'를 축소시킨다.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반대론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암시하는 교묘한 속임수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왔다.


초국적 기업들은 어느 정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을 빼는 방식'으로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는 나라에게 본때를 보일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당장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기업의 이동성이 높아져 국가의 규제가 무력해졌다고 하면서, 어째서 개발도상국들로 하여금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는 능력을 제한하는 국제 협정에 빠짐없이 서명하게 하려고 기를 쓰는 것인가?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보다 나쁜 딱 한가지는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는 것이다.


언론은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범죄, 파산 따위의 나쁜 사건들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국영 기업들 역시 상대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정부가 국영 기업 내의 부정부패를 통제하거나 일소할 능력이 없다면, 민영화를 한다 해서 갑자기 부정부패를 막을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물가 상승이 일반 대중에게 피해를 준다고 떠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중을 향한 수사는 낮은 물가 상승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책이 취업 전망과 임금 수준을 낮춤으로써 대다수 노동자들의 미래 소득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미국 작가 고어 비달이 미국 경제 쳬제를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 기업.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라고 묘사한 것은 매우 유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민주주의의 미덕을 칭송하면서도 '우방'인 나라가 비민주적일 경우에는 침묵을 지킨다. 이런 견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에 대해 "그는 개자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개자식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대표되는 실리주의 정책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 민주주의에 반대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는 자유 시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제 발전에 확실하게 좋거나 확실하게 나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평평하다 따위의 어설픈 책에 질린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참고로 이 책 1장 제목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다시 읽기: 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이다.



EOB

댓글 1개:

  1. 잘 읽었습니다. 책은 있는데 게으름으로 못 읽던 중에 이 글을 보니 다시 일코 싶은 욕구가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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