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피고아라는 특이한 이름을 자랑하는 이 책은 지난번에 소개한 [독서광] 일개미의 반란: 우리가 몰랐던 직장인을 위한 이솝 우화를 선물한 꼬양이(역시 꼬양이는 이런 부류의 책을 즐긴다. ㅋㅋ)가 추천해서 급히 구입한 책이다. 시중에 흔하디 흔한 사내 정치 본격 입문서 중 하나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기존 싸구려 처세술(?) 책과는 뭔가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 제목인 '공피고아(攻彼顧我)'는 바둑의 기본 전략에서 빌어온 단어이며,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치 게임'을 벌여 상대방을 구워삶은 방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어떻게 되돌아볼지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책은 직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례와 이런 사례를 풀어내기 위해 삼국지에서 적절한 내용을 찾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솝 우화와 직장인의 자세를 혼합해서 설명하는 '일개미의 반란'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우화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일개미의 반란'과는 달리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가기에 또 다른 맛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아주 적절하게(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예를 들기 때문에 삼국지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꼬양이처럼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뭐 두말할 나위도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테다.
이 책의 장점은 지독한 '현실성'이다(삼국지를 토대로 설명한다고 쌍팔년도 책으로 오인하면 대단히 곤란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데자뷰를 느꼈다. 과거 B급 관리자 주변에서 일어난 황당무개한(지금 생각하면 그리 황당하지도 않다) 일과 가슴 아픈 추억들이 아련하게 되살아나는 동시에 현재 전개되고 있는 여러 가지 시츄에이션(의도적으로 외래어를 썼다. ㅋㅋ)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부하로서 상사를 바라보는 시각, 상사로서 부하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 책에는 공존하고 있으므로 양쪽에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봐야 제대로 일이 전개되는지 좀더 명확하게 머리에 그려졌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다.
지금까지 B급 관리자가 저지른 모든 실수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 몸둘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 앞으로는 정신 차리고 제대로 뭔가를 해봐야겠다. 샌드위치도 아닌데 아래 위로 치여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중간 관리자들에게 그야말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회사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신입 + 신입 티를 막 벗은 사원들에게도 역시 일독을 추천한다. 결론: 2010년 하반기 회사원의 필독서.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