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2월 15, 2011

[독서광] 마이크로스타일

요즘 경제/경영 블로그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참 동안 재미없는(?) 책만 소개했었다. 정신을 차리고 최신 경제/경영서를 읽었으니, 다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도록 하자. 오늘은 소셜미디어(!)인 나꼼수라는 곶감이 올드미디어(!)인 조중동(아니 중조동 ㅋㅋ) 호랑이를 물리치는 작금의 상황에서 다시 한번 상큼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마이크로스타일'을 한번 뜯어보기로 하자.

처음에 '마이크로스타일'을 들었을 때, 소셜미디어에서 살아남기 위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가 담긴 책으로 착각(?)을 했다(아마 이렇게 착각하고 구입한 사람들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집으로 배달된 책을 열어 본문을 슬쩍 훑어보니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며칠 동안 묵히다 머리 아픈 카산드라를 읽은 기념으로 저자 소개부터 읽는 데 '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펜티엄, 파워북, 블렉베리, 스위퍼, 페브리즈 등의 이름을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네이밍 회사 렉시콘에서 일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제 이 책의 정체를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영어권 문화에서 통하는 언어 심리학을 다룬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정도 영어 문화권을 이해하고(특히 미국 문화), 언어와 마케팅과 소셜미디어라는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국어/영어라는 단어만 봐도 두드러기가 나는 분들께서는 문법이랑 운율이랑 음운 이야기에 기절 초풍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살짝 들긴 한다. 물론 이 책은 짧은 글을 잘 쓰는 규범적인 방법을 다루지 않는다. 기존 문법과 질서를 창조적으로 파괴해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창의적인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을 전달할 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왜 어떤 브랜드 이름이나 문구는 사람들의 넋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왜 다른 브랜드 이름이나 문구는 진부하고 따분한지 가슴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항을 머리로 깨닫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나꼼수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미뤄 짐작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본문 중 다음 인용구를 한번 보자.

대단히 사소하고 구체적인 사실들을 포함할 때 이야기가 훨씬 믿음직스러워진다고 말한다.

나꼼수에서 정말 눈물나도록 꼼꼼하게 짚어주는 팩트(fact)는 신뢰도 조사 과정에서 나꼼수가 기존 올드 미디어 삼총사(?)를 완전히 밟아버리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다음 문구도 한번 볼까?

솔직하고 진실할 것, 그것이 지금까지 소셜미디어를 통한 의사소통에서 유일하게 공유되는 기대치일 것이다. 이는 소셜미디어를 구시대의 일방향적 출판 및 방송과 구분해주는 요소인 듯 하다.

_솔직_과 _진실_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기존의 말장난(예: 주어가 없다... T_T)과는 차별화된 내용을 전달하는 소셜미디어는 완전히 판세를 뒤엎고 있다. 물론 나꼼수를 저격하기 위한 아류작이 몇 개 나왔지만 솔직/진실과는 거리가 멀고(조중동에 나온 이야기를 동어 반복하는 수준이니...) 꼼꼼하지도 않고 게다가 재미도 없는 바람에 나오는 족족 망하고 있기에 소셜미디어라도 다 같은 소셜미디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새버렸는데, 이 책의 목차를 보면 크게 '의미', '소리', '구조', '사회적 맥락'이라는 네 가지 맥락에서 축소된 메시지를 요리하고 있다. 따분한 문법책이 되지 않도록 저자는 현실에서 성공한 예와 실패한 예를 많이 들고 있으며, 어려운 개념도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마법도 제법 잘 부리고 있다(물론 그렇다고 책 내용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ㅋㅋ). 회사 이름, 상품 이름, 시, 인용구, 헤드라인, 신조어, 트윗, ... 한 마디로 정신없는 짧은 메시지의 향연이 펼쳐지므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여러분들도 틀림없이 단어로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테다.

자 그렇다면 본문 중 몇 가지 재미있는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자.

인터넷에서 우리는 주목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에 시간낭비하지 않기 위해 훑어보고 건너뛰고 클릭한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읽을거리는 무제한인데 품질 관리는 거의 안 된다.
누구라도 인터넷에서 눈에 띄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텍스트를 함께 제공하는 편이 훨씬 낫다.
현재 우리의 문화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과 언어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 사이에는 이상한 불협화음이 존재한다.
개념들은 깔끔한 포장에 담겨 오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개념은 사물이 아니라 무언가가 일어나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인 후 그것이 우리가 당면한 상황 및 알거나 믿는 것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식별해낸다.
눈앞에 있는 것에 대해 말할 때조차, 명료하게 말하기란 큰 도전일 수 있다.
애플은 문학적이고 문화적인 것들, 직접적인 경험에 기반한 모든 것을 뒤섞는 마법을 부린다.
좋은 이름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감정은 생각과 그것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우리는 관념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대부분의 상황에는 기대치가 내장되어 있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최대한 밝은 모습으로 보이려 노력할 것이다.
아름다운 단어들은 추한 단어보다 더 타당하게 여겨진다.
이름과 주식 시세 표시 약어를 발음하기 쉬운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주식 상장 당시 더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는 언어 형식을 가장 명료하고 단순하게 만들고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성인이 된 후로는 그림이나 음악작품을 단 한 점도 생산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하지만 시는 다르다.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열정적인 신어 제조자였다.
단어 조합은 영어에서 매우 보편적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된 단어 중 두 번째 것이 몸통, 즉 조합된 단어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알리는 의미의 핵심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어구의 표현력 속에 생각의 씨앗이 들어있다.
정치인들은 주기적으로 굶주린 유권자들에게 핵심 어구들을 과자처럼 던져준다. 핵심을 피하며 일관성도 없는 답변을 내놓을 때 그런 어구들은 실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전락해버린다.
많은 이들이 정보의 과대 공유 혹은 과소 공유의 위험을 경고한다. 트윗의 양과 질 모두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과대 공유는 지나치게 자주, 또 너무 사적이거나 진부하기만 한 메시지를 올리는 것을 뜻한다. 과소 공유는 트윗을 너무 드문 드문 올리거나 곧바로 업데이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인터넷에서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 책은 본문 중에 나오는 실제 사례가 훨씬 더 중요하므로, 위에 소개한 내용만 읽고서 따분하다고 섣불리 판단하지 마시라. 아, 산뜻한 소개 동영상(한국어다)도 있으므로 한번 보시길...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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