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8월 25, 2012

[독서광] 창조자들

한 동안 경제/경영 블로그 카테고리에 거미줄이 쳐진 상태라 대단히 죄송한 마음에 오늘은 제목부터 있어 보이는 '창조자들'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책을 여러분들께 소개하려 한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 책은 역사상 아주 유명한 인물 17명을 골라내어 창조적인 작품(글, 그림, 음악, 건축, 옷, 영화, 등등)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들의 내/외적인 투쟁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인 책과는 달리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므로 어릴적 위인전을 읽고 이미지가 굳혀진 위대한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아직도 동경하는 분들이라면 독서 과정에서 대단히 곤란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람들이 누군지부터 살펴보자. 제프리 초서(영문학), 알브레히트 뒤러(인쇄술), 윌리엄 세익스피어(영문학),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음악), 조지프 밀러드 윌리엄 터너/가쓰시카 호쿠사이(풍경화), 제인오스틴(영문학), 오거스트 웰비 노스모아 퓨진/외젠 비올레르뒤크(고딕식 건축), 빅토르 위고(영문학), 마크 트웨인(영문학), 루이스 컴퍼트 티퍼니(유리 공예),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영문학),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티앙 디오르(패션), 파블로 피카소/월트 디즈니(미술). 일단 등장하는 주인공을 놓고 봐도 만화 영웅들을 왕창 모아 히트친 어벤저스는 저리 가라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읽다보면 정말로 기도 안 찰 상황이 된다.

예를 들어, 피카소 편에 나오는 일화를 볼까?

그는 자신에게 여자라는 존재는 "여신 아니면 현관 깔개"라 했고, 자신의 목적은 여신을 현관 깔개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지낸 정부 한 사람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우선 여자를 겁탈하고 ...... 일을 시작한다. 나에게든 다른 여자에게든 항상 똑같다."

빅토르 위고는 또 어떻구... T_T

"이걸 잡아 보렴, 꼬마야. 이 나이치고는 흔치 않은 물건이지. 나중에 네 손자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게다. 네 작은 손으로 시인 빅토르 위고의 물건을 만졌다고!" 그러더니 잠옷을 내리고 복도를 따라 먹이를 찾아 성큼성큼 걸어갔다.

T.S 엘리엇도 (위고나 피카소의 반대편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았다. T_T

엘리엇은 자기보다 나이가 약간 많고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소원하는 영국 숙녀 비비언 헤이 헤이우드와 결혼했다. 어떤 면에서는 개인적 불행이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생산 활동의 자극제이자 앞으로 남은 삶을 규정하는 사건이었다. 비비언은 못생긴 여자는 아니었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허약한 사람이었다. 늘 어딘가가 아프기 시작하거나 실제로 아프거나 병에서 회복 중이거나 셋 중 하나였다. 엘리엇도 건강했던 때가 한번도 없었으며, 탈장 방지대는 성생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늘 장애가 되었다. 결혼 초부터 두 사람은 경쟁하듯 우울증에 시달렸다.

뭐 이런 눈물나는 내용도 있지만, '바흐'편은 "괴델, 에셔 바흐"나 바흐 이전의 침묵에서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바흐는 실내악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하프시코드와 첼로를 독주가 가능한 악기로 승격시켰고, 살아 생전에 발표한 아홉 편 이외에 현존하는 1200 편과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400~500 편의 음악을 작곡한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오르간 전문가(연주자 뿐만 아니라 제작자)라는 장점을 살려 당대 최고 수준의 오르간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고, 오르간을 연주하기 위한 레지스터레이션 방법을 평생 연구하며 이를 토대로 학생들을 훈련시켰고, 음악적인 완성도를 추구했지만 당대에는 현학적인 작곡가로 치부되고, 그 결과 유족들에게 남겨진 재산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바흐 이전의 침묵'에도 나오지만 나중에 멘델스존이 고모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찾아낸 '마태 수난곡'이 대박을 치면서 업적이 완전히 재평가되는 계기가 마련되고 아직까지도 영원 불멸의 작곡가로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바흐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 책에 나오는 다음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한 듯 싶다.

바흐의 작품에서는 시류에 편승하는 반복이나 적당히 손쉽게 넘어간 부분, 하다못해 비속한 낌새조차도 찾을 수 없다. 공연을 할 때도 작곡을 할 때도,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심지어 고용주가 흔히 그렇듯 좋고 나쁜 것도 구별하지 못하는 이류라 할지라도 그는 최고의 음악을 선보였다.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아직도 논쟁이 분분한 세익스피어 이야기도 재미있다. 뛰어난 문학 작품은 말할 나위 없고, 영어 표현력을 몇 배로 높이고 혼자서 새로운 단어를 3000~6000개 창조한 세익스피어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 책에 나오는 다음 표현을 보면 고개가 끄덕일 테다.

우리는 세익스피어의 보석 상자에 있는 말들을 의식적으로 인용하기보다는 기억해 두었다가 본능적으로 꺼내 쓴다. 우리는 마치 숨을 쉬듯 '햄릿'을 인용한다.

bandit, rubbish, charmingly, tightly, uncomfortable, unaware, undressed, unpolished, uneducated, unpruned, untrained, affecting, anchovy, weather-bitten, well-ordered, wormhole, well-read, widen, cerements, silverly와 같은 단어가 모두 세익스피어가 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세익스피어는 16세기 사람이니, 국어 시간에 배운 고어 수준인 단어가 이리도 세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은 정도다. 단어도 단어지만 세익스피어가 쓴 희곡에 나온 세련된 표현은 더욱 놀랍다. 본문에 나오는 햄릿의 예를 잠시 살펴 볼까?

"제가 설치한 폭탄에 제가 당한다." "신은 왕의 주변에 울타리를 치는 법.", "준비가 전부지", "누더기를 걸친 왕", "시대의 추상적이고 짧은 연대기", "죽음이라는 잔인한 병사가 틈을 주지 않고 붙잡아 가다.", "냄새가 하늘을 찌르는군"

한국어로 번역한 문구만 봐도 진짜 대단한데, 영어로 그것도 16세기 공연장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을 때 마치 코카콜라 이미지 광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이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언제 세익스피어 희곡을 차분히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 주변 상황을 벗어나거나 이용하거나 극복하거나 ... 어찌되었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놓치지 마시길...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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