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3월 23, 2013

[독서광] 모든 것의 가격

우리가 매일 물건을 사고 팔면서 영수증을 주고 받을 때 반드시 '가격'이 찍혀 나온다. 심지어 쿠폰으로 영화를 공짜로 보더라도 가격은 (쿠폰 적용 또는 할인 결과) '0'원으로 나오니 사실상 우리의 삶은 가격에 의해 통제 받고 있다고 봐도 틀림없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단히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격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우리 삶에 있어 의사 결정을 내리기가 대단히 곤란 불가능해지므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엄청난 혼란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돈이 무한정 있는 부자가 아닌 이상 틀림없이 가격표는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포인트임이 틀림없다.

오늘 소개할 '모든 것의 가격'은 바로 '가격'을 토대로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인 현상을 시원스럽게 풀어내는 재미있는 책이다. 가격을 기준으로 우리 모든 일상 활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어항에 들어 있는 금붕어가 물의 존재를 알지 못하듯 이렇게 중요한 '가격'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바로 우리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사물, 생명, 행복, 여성, 노동, 공짜, 문화, 신앙, 미래를 '가격'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 중에 일부를 질문 형태로 바꿔보면 다음과 같다.

  • 영국 음식(특히 런던 등 대도시)은 왜 맛이 없을까?
  • 천주교보다 기독교가 더 많은 신도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 타이타닉 호에 실린 구명정의 숫자가 탑승객을 모두 태울지 못할 정도로 작았던 이유는?
  • 바닥이 흙으로 된 집에서 살면 행복도가 올라갈까? 내려갈까?
  • 여성에게 일부일처제가 유리할까? 일부다처제가 유리할까?
  • 노예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진짜 이유는?
  • 중산층이 사라지며 양극화가 빨라지는 이유는?
  • 유명한 음악가/작가들이 유명하지 못한 음악가/작가들보다 해적 시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는?
  • 국가에서 적극 지원하도록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변경하기 어려운 이유는?
  • 나이 든 사람들에게 정부가 더 많은 돈을 지출하는 이유는?

이 책은 위에서 제시한 질문을 '가격'을 토대로 멋지게 설명한다. 물론 본문에서는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경제학과 상식이 버무려진 퀴즈 책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 가격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결정을 잘 내리고 제대로 평가하도록 도와주는 지침서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니 시중에 나온 '자기 계발서'와 유사하다는 걱정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다양한 분야에 대해 지금까지 매겨진 가격들이 역사적으로 아직 드러나지 않거나 왜곡된 사실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시사점을 던져주므로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 부자되자는 '자기 계발서'의 모토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 하고 있다.

본문 자체도 무척 재미있었지만 잘 만든 영화를 감상할 때 엔딩 크레딧 역시 감상할 가치가 있듯이, 이 책의 에필로그인 '가격이 실패할 때'는 케인스부터 그린스펀까지 정계와 학계에서 가격을 바라보는 시선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고 있기에 상당한 여운을 남긴다. [일상다반사] 커맨딩 하이츠를 보신 분들이라면 불황과 버블 붕괴를 겪으며 정부 중심과 시장 중심의 치열한 이론 전쟁이 오버랩될지도 모르겠다.

자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재미있는 내용을 정리해보겠다. 스크롤 압박이 있으므로 주의하자!

우리가 각각의 대안이 갖고 있는 가격을 이해하게 될 경우, 우리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개신교는 신도들에게 훨신 더 큰 두자를 요구함으로써 충성심을 자극한다.
현대의 삶은 주로 재화를 구입하는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은 인간의 심리적 변덕, 그들의 두려움, 무의식 중에 작용하는 제약에 대한 일종의 지도를 제공한다.
특정 사물의 가격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결정되는 주관적인 성질인 것이다. 교환되는 물건들의 상대적 가격이 바로 그들 사이의 상대적 가치인 것이다.
우리는 (잉크젯 프린터의) 잉크 카트리지를 1985년산 명품 크뤼그 샴페인으로 채우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경쟁이 소비자의 최대 우군이라면, 기업이 즐겨 쓰는 전략은 어디에서 가장 좋은 조건의 거래를 할 수 있는지를 고객에게 숨기는 것이다.
세일과 가격 인상을 반복하는 것도 어디서 팔리는 시리얼이 가장 저렴한지를 소비자가 계산하기 어렵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이다.
온라인 컴퓨터 칩 소매상들은 일부러 제품을 혼란스럽게 설명하고, 서로 다른 십여 가지 버전의 모델을 제시해 가격 비교를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경매가 반드시 구매자에게 불리한 거래는 아니다. 하지만 매물로 나온 재화의 가치가 알려지지 않았을 경우 경매를 통한 구매는 실패를 부르기 쉽다.
사실 기업들은 소비 성향에 따라 고객들을 분리한 뒤 자기 회사의 품목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기 위한 예리하고도 우아한 수단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천차만별의 가격으로 비행기 좌석을 파는 데 도사이다. 그들은 거의 30년 동안 자신의 기법을 갈고닦아 비행기의 좌석을 다 채웠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똑같은 비용으로 운항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만약 기업이 모든 제품을 하나 더 생산하는 데 필요한 최저 비용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기업은 고정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여 결국 도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남의 것보다 자기 것에 더 높은 가격을 매긴다.
젊은이를 먼저 구할 경우 평균 여명의 관점에서는 노인을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
"돈은 추상적인 형태의 행복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은 돈을 모으는 데에만 전념한다."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물질적 부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제약을 극복하게 해 주고 삶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만든다.
우리는 평생 지속되는 만족감과 순간적인 만족감을 구별할 줄 안다고 느끼지만, 사실 순간적인 즐거움이 현재의 우리 존재를 제압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 정치인들이 진보 정치인보다 행복도가 높은 경향이 있다.
보수 정치인들은 불평등을 인간 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고, 따라서 그런 현실과 관련된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덜 느낀다.
심지어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중국의 가정들은 점점 더 격렬해지는 결혼 시장의 경쟁에서 아들이 유리해질 수 있도록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저축 경쟁에 돌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리는 노예 제도를 혐오하라고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근로 조건에 대한 사회의 선택은 가치관이나 도덕보다는 노동의 조직 방식에 따른 수익성과 관련된다.
오늘날의 근로자는 1890년의 근로자가 한 시간에 걸쳐 수행한 일을 10분 안에 해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임금이 오른 이유다.
미모와도 아무 상관이 없는 직업의 경우에도 못생긴 사람들은 잘생긴 사람에 비해 소득 수준이 낮다.
무언가를 공짜로 얻게 되면 우리는 은혜를 입거나 부채를 진 듯한 기분에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해줘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만일 정보가 진정 공짜가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정보를 생산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정보 혁명은 정보를 공짜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돈의 흐름을 정보 공급자들로부터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술 보유자들에게로 옮겨줄 뿐이다.
"존과 나는 앉아서 '자, 그럼 이제 수영장이나 하나 사게 노래를 써볼까.'라고 말하곤 했다." - 폴 매카트니
최근에 인터넷 반군들이 내세우는 수많은 논거들은 실상 이미 수세기 전에 해적들이 기반을 다져놓은 것들이다.
정치에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 번째는 돈이고, 두 번째는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 마크 한나
문화는 우리의 개인적 비용 편익 분석을 사회의 집단적 가격 체계 범위 내로 제한한다.
문화는 내부에서 구성원들 상호 간에 이뤄지는 거래와 외부 환경을 상대로 전개되는 상호 작용에 의해 형태를 갖추게 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국민 보건 실태가 엉망이고 성교에 의해 전염되는 치명적 질병의 발생률이 높기 때문에 성행위에 따르는 비용이 엄청나게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나라에서 사람들이 성행위를 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영국 요리가 끔찍한 이유는 산업 혁명 초기 영국인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런던 사람들이 남부럽지 않게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술이 나올 무렵에도 그들은 이미 빅토리아 시대의 식습관에 익숙해져 버린 상태였다. 따라서 형편없는 음식이 영국 문화의 필수적 요소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가난이 바로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땅이 제공하는 정직한 보상을 받지 못할 정도로 게으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비용 편익 분석을 통해 자신의 종교를 선택한다. 세속적 세계에서 많은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 즉 높은 임금을 받아서 시간에 대한 손실이 큰 사람이 엄격한 도덕적 규율을 지키다 보면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요구 사항이 어렵지 않은 신앙을 선택할 것이다.
신앙에 대한 혜택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보험을 위해서는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 단체의 혜택은 구성원들이 들이는 시간과 돈, 노력에 달려있다. 기부자에게 상당한 도덕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교회는 회비를 걷는 데 대단히 능숙하다.
하지만 종교적인 과세에서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비용은 그것이 신자들에게 부과하는 희생, 그리고 신자들의 삶에 족쇄를 채우는 여러 제약이다.
우리는 늘 후손의 욕구를 무시한다. 중장년층은 대부분 정책 투표에 참여하지만 청년층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중장년층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 정부 지출도 나이든 사람들의 취향에 크게 치우쳐 있다.
가격은 특정 경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호를 제공한다. 즉 최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어디에 자원을 투자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결정에 도움을 준다.
케인스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에서 주식을 고르는 것과 미인 대회를 비교한다. 다만 이 대회에서 투자자들은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뽑아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얼굴을 뽑아야 한다.
1970년과 2002년 사이 경제 쇼크가 정치에 미쳤던 영향을 연구한 결과 경제 성장이 1퍼센트 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유권자들의 표의 1펴센트 포인트가 우파 정당과 국가주의 정당에게 추가적으로 몰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케인스에 의하면 투자에 관한 결정은 "동물적 감각의 결과였다. 즉 가만이 있기보다는 행동을 취하려는 즉흥적 행동이며, 정량적 이익 곱하기 정량적 확률의 평균값이 아니다."

결론: 세상 만사 모두 돈으로 재단하는 물질 만능주의를 다룰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가격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EOB

댓글 2개:

  1. 엄청 읽고 싶어졌습니다. ^^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사를 해석할 수 있다는건 정말 멋진 일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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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현석님, 읽어보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

    - jr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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