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 늘 좋은 글을 소개해주시는 R님(@rhea813)께서 '<괴델, 에셔, 바흐>의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생각하는 AI'라는 트윗을 올려주셨기에 (거짓말 조금 보태) 숨도 쉬지 않고 The Man Who Would Teach Machines to Think를 읽어봤다. 오늘은 여기에 대한 감상문을 정리해보겠다.
아마 이 블로그 애독자라면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라는 이름은 한번 쯤 들어봤을테다. 1979견에 출간되어 퓰리처상을 수상한 Gö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는 '생각'과 '인지'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꿔버린 명서이며, 유명한 과학저술가인 마틴 가드너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기도 했다.
Every few decades, an unknown author brings out a book of such depth, clarity, range, wit, beauty and originality that it is recognized at once as a major literary event.
퓰리처상이 언론, 문학, 음악과 관련해 수여되는 상임에도 불구하고, 호프스태터는 GEB를 수학, 미술, 음악에 대한 책이 아니라 신경과 두뇌, 사고와 인지에 대한 책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GEB에서 아주 살짝(!) 드러난 호프스태터의 문학, 수학, 예술, 언어, 철학에 대한 뛰어난 식견과 안목을 놓고 생각해보면... 인문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신나게 약파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공학도들이 인문적인 소양이 부족하다는 둥...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특성을 가미해야 한다는 둥, 공자왈 맹자왈 ... 말은 청산유수다...) 호프스태터 앞에 일렬로 무릎꿇고 반성해도 시원치 않다. 빅 마우스 10명 아니 20명이 합세해도 엄청나게 무서운(진짜 말 걸기조차 무섭다고 한다) 호프스태터 앞에서는 특급 프로 체스 선수 앞의 동네 아마추어 모양으로 떡실신하리라 확신한다(지금 이 대목에서 웃으면 GEB의 '바흐' 부분을 읽은 사람이다. ㅋㅋㅋ).
자 그러면 도대체 GEB와 같은 역작을 내고 많은 사람들을 인공지능 연구로 끌어들인 호프스태터는 그 이후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학교 학창시절 인공지능 과목을 들을 때도 호프스태터의 이름은 수업시간에 언급되지 않았고, 요즘 엄청나게 쏟아지는 각종 연구 결과와 제품에도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고 있다. 35살의 나이에 GEB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될만큼 대단했던 호프스태터는 요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상에 찌들려 호프스태터라는 이름(다행스럽게 책장에 GEB와 The Mind's I가 꽃혀 있어 앞을 지날 때마다 종종 기억을 되살려주곤 하지만...)도 흐릿해질 시점에서 더 아틀랜틱에 실린 기사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요즘 인공지능 추세를 살펴보자. 과거 '전문가 시스템'과 '기계 학습'으로 불렸던 이론을 토대로 IBM이 체스 기계를 만들고 구글이 번역 기계를 만들면서 내새운 구호는 간단하다. "더 많은 자료를!"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초창기 슈퍼 컴퓨터(응?)에 맞먹을 수준에 이르렀고, 클러스터나 초병렬 컴퓨터 개념을 넘어 클라우드/가상화에 저렴한 컴퓨팅 파워와 스토리지를 갖추게 됨으로써 방대한 정보(심지어 '빅 데이터'라는 약 파는 용어도 등장했다!)를 잘 처리하면 저절로 컴퓨터에 지능이 생길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뉴턴 시절의 낙관주의를 떠올리게 만든다). 엄청나게 긁어모은 문서를 토대로 구글 번역기 수준은 초창기에 비해 일취월장했으며(특히 과거부터 번역에 목숨을 건 일본어를 중심으로 하는 번역 품질은 기절초풍할 수준이다), 체스에서 모든 사람을 놀라게 만든 IBM의 슈퍼 컴퓨팅 기술은 일반적인 산업 분야에도 기계 학습과 인공지능(?)을 전파하고 있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애플의 시리 역시 사용자들의 질문과 대응을 누적하며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수 많은 자료를 긁어모아 처리한다고 해서 과연 컴퓨터가 '생각'을 하고 '인지'를 갖추게 될 것인가? 태풍에 휩쓸린 자동차 폐차장의 부품들이 이리저리 결합되어 신형 스포츠카가 탄생할 확률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갈길은 멀어 보인다.
일흔이 다 된 호프스태터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무지막지한 자료'를 토대로 무지막지하게(brute force) 인공지능을 달성하는 방법 대신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 그대로를 컴퓨터에게 가르치려 시도하고 있다.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인공지능 관련 프로젝트를 제안했을테지만 (상업적으로 컴퓨터를 길들이는(응?) 주제로는) 성이 안 찼을테니, 외부(특히 인공지능 학회나 관계자)와 인연을 끊고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소규모 팀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사고로 인한 행동을 직접 탐험하는 방식('현상학'이라고도 한다)으로 사실상 '컴퓨터'와는 무관하게 보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강직한 호프스태터는 잘 알면서도 실제 '지능'과 무관한 '인공지능'을 '지능'으로 포장해 파는 사기꾼 대열에 합류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호프스태터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To me, as a fledgling AI person, it was self-evident that I did not want to get involved in that trickery. It was obvious: I don't want to be involved in passing off some fancy program’s behavior for intelligence when I know that it has nothing to do with intelligence. And I don't know why more people aren't that way.”
해커스에도 나오지만 ARPA가 DARPA로 변하면서 군과 무관한 기초적인 학술 연구에 투자를 끊으면서부터 MIT에서 싹을 틔운 1세대 해커들이 사분오열되며 급격히 상업적인 영역으로 넘어갔듯이, 순수한 '인공지능' 연구도 자금줄이 말라갔다. 호프스태터가 주장한 '인간의 지능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기초 연구가 결실을 맺지 못했기에 '인간 문제를 지능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응용 연구가 주도권을 잡으며 이미지 인식(군사 목표에 대한)과 전문가 시스템(복잡한 의사 결정을 도와주는) 분야가 급격하게 부상했다. 그리고 호프스태터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급속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호프스태터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기라도 한 듯, 인공지능 분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었다. "인공지능 분야의 모든 활동은 근본적으로 컴퓨터의 경직성을 타파하기 위한 전투다." 개인적인 생각(B급 프로그래머가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기 바란다. B급인데...)을 피력해보자면, 인공지능(한 걸음 더 나가 컴퓨터 분야)에서 최근 20년 동안 부분적인 전투에서 상당한 승리를 거두었고 일부는 훌륭한 해법을 찾기도 했지만 여전히 큰 그림(즉 전쟁)을 놓고 보면 획기적이고 판도를 완전히 뒤집을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근본을 파고들 생각은 잘 하지 않기에 컴퓨터의 경직성도 문제였지만 사람들의 경직성이 풀어야할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사고라는 본질을 놓고 벌이는 호프스태터의 고군분투는 놀랍고 대단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무쪼록 호프스태터의 건투를 빈다!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