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여, 좋은 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1번 타자는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쓴 '불평등의 대가'다. 조만간 번역서로 나올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이 사람들에게 멘붕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 책 역시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일단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절망이라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들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 주의해서 읽어야 겠다.
이 책은 상위 1%가 모든 것을 독차지해버린 미국의 불편한 현실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하지만 참으로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무대가 미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옮겨지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히 미국 정치와 경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 역시 만만치않은 싱크율를 자랑한다. 어떻게 보면 미국보다 더 미국스러운 한국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T_T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불평등이 위험한 이유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정치, 경제, 사회를 넘나들며 불평등을 일으키는 주범(?)과 이들의 논리를 분석하며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책 내용을 기계적으로 요약하는 대신 본문에 나오는 몇 가지 뜨끔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미국의 시장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행위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부를 빼앗는 행위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
불평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상위 계층에게 더 많은 돈을 몰아주면 성장이 가속화되므로 모두가 그 혜택을 받게 될 거라는 반론을 펼친다. 이것이 이른바 낙수 경제 이론이다. ... 상위 계층에게 돌아가는 부는 하위 계층을 희생시킨 데서 나온 것이다.
중하위 계층의 재산은 대부분 소유 주택의 가치에 좌우되는 것이었기에 거품이 낀 주택 가격을 토대로 한 유령 재산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확정 기여형 퇴직 연금 제도에 가입해 있다. 이 경우 사람들은 퇴직 연금 계좌를 직접 관리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또한 주식 시장 변동과 인플레이션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곤경을 그 사람들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되며, 자신들은 자력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는 상위 계층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정부가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데서 상당한 성과를 올릴 때만 그 나라 경제는 번창한다.
사업가들의 주된 관심은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키거나 시장 경쟁을 강화하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시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자신의 수익을 끌어올리는 데 있을 뿐이다.
상위 계층의 돈벌이 수단 중 하나는 자신이 장악한 시장과 정치적 권력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자신의 소득을 늘이는 방법이다.
시장에는 승패를 식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이 가진 돈의 총액이다.
'지대'라는 용어는 원래 토지로 인한 수익을 이르는 말이었다.
현대적인 경제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지대 추구가 존재한다. 첫 번째 형태는 국가 자산을 공정한 시장 가격 이하로 장악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형태의 지대 추구는 정반대로 정부에 물건을 팔면서 시장 가격 이상을 받아 챙기는 방식이다. 세 번재 형태의 지대 추구는 공식적인 정부 보조금이나 비공식적인 보조금을 받는 것이다.
민간 부문은 자력으로 능숙하게 국민들로부터 지대를 뽑아낼 수 있다. 이를테면, 독점적인 관행을 통해서 정보와 교육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서민들을 수탈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공정한 게임을 하여 이기는 사람이 열심히 뛰어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길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아예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사람은 고속철을 탄 사람이고, 심판까지 직접 고르는 사람은 제트기를 탄 사람이다.
세계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더 풍요롭게 될거라고 주장하는 걸까? 그들의 주장은 모든 사람들이 더 풍요로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승자가 패자에게 보상을 해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일 뿐, 반드시 그럴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승자는 대체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들이 부실한 거시 경제 정책으로 인해서 일자리 소멸 속도가 일자리 창출 속도를 앞서가는 곤경을 맞았다.
부자들과 갑부들은 흔히 기업을 이용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소득을 감춘다.
부유층에 대한 감세의 결과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또 다른 측면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교육, 과학 기술, 기간 시설 투자에 대한 지원을 축소해야 하는 곤경에 빠진다.
개발도상국에는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열정이 넘치는데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가 없으면, 나중에 일이 복잡해질 거라고 판단되는 사업상의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언론 분야는 상위 1퍼센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들은 비판적인 언론사를 매입하여 지배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이런 전략을 고수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상위 계층은 중위 계층에게 왜곡된 세계관을 심어 이들로 하여금 상위 계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게 만든다.
상위 1퍼센트가 여론을 형성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념의 변동성이 크다는 것을 입증한다.
문제는 물건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듯이, 관념도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을 뒷받침하는 관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파는 인식 형성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파는 각급 학교의 교육 과정 설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민영화와 시장 자유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정책들은 지대 추구를 제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며,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을 펴왔다.
금융 부문의 혁신은 모든 미국인의 후생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경영진의 후생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기업들이 타인들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체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기업들은 대개 지나친 위험을 추구한다. 물론 아무 사고 없이 여러 해가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수천 명이 피해를 입는다.
경제학의 기본 원칙에 따르면, 좋은 행위에 과세하는 것보다 나쁜 행위에 과세를 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다.
최악의 신화는 예산을 긴축하면 경제가 회복되고, 정부 지출이 늘어나면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따르면 정부의 재정 상태가 개선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자신감이 붙어서 더 많은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율을 낮게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낮은 인플레이션이 경제 전반에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큰 혜택을 보는 채권 보유자들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과 희망을 품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에 빠져 지낸다. 이들은 앞으로 힘겹게 상환해야 하고, 게다가 파산을 해도 탕감이 되지 않는 학자금 대출금이라는 무거운 짐에 짓눌린 채 침체된 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운이 좋아서 직장을 구한다 해도 이들이 받는 임금은 실망스러운 수준이고, 임금이 너무 적어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십 대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들도 걱정스럽고 자신의 미래도 걱정스럽다. 집을 잃지나 않을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조기 퇴직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저축해 둔 돈이 대침체 때문에 크게 줄어들었는데 그것으로 노후 생활을 지탱할 수 있을까? 이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자녀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보고 있으러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북트레일러를 보너스로 소개한다.
결론: 우리 사회가 불평등한 이유를 알고 싶은 모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한다.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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