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9월 20, 2014

[독서광] 가장 인간적인 인간

그녀라는 영화를 보고난 다음 너무 마음에 들어 맥주에 통닭을 뜯으며 대본을 읽기도 했었다(참고로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트위터에서 누군가 '그녀'와 관련해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라는 책을 추천하는 글을 읽고 나서 본능적으로 구매를 해뒀는데, 몸과 마음이 바빠 차일피일 미루다 우연이 눈에 들어와 손에 쥔 순간... 2014년도에 읽은 가장 멋진 책이 되리라 감을 잡고 말았다.

이 책은 튜링 테스트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이 있다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해 '(컴퓨터인) 내가 사람이다'를 증명하는 대신 거꾸로 '(사람인) 내가 진짜 사람이다'를 증명하려는 노력이 주제라는 점이다. 막강한 계산 능력과 지금까지 축적된 공학적, 사회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사람을 위협하는 인공지능 군단에 맞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심사위원들 앞에 납득시켜야만 하는 인간 연합군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인간 연합군 중에서도 특히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 뢰브너 프라이즈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 상을 수상한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이 책에서 '가장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이 책의 집필 목표는 1장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크리스찬의 의도를 같이 살펴볼까?

우리는 테니스 경기, 철차 맞히기 시합, 표준화된 각종 시험 등에 대비해 훈련을 한다. 나는 튜링 테스트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에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그리고 자기 자신답게 행동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능력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리고 이 '이상의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을 이룰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한 답변들은 튜링 테스트를 넘어 우리의 삶 전반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크리스찬은 문제의 핵심으로 돌진한다. 호프스태터가 G.E.B에서 '인지'에 대한 비밀을 찾기 위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무지막지하게 정공법으로 밀어붙이는 방식과는 정 반대로 조금은 유머러스하게(종종 망가진 자신의 모습도 보여주면서...) 생각이나 대화가 점차 컴퓨터처럼 변하고 있는(그래서 튜링 테스트에서 컴퓨터가 점점 더 유리해진다고 볼 수도 있다) 현대인의 '인간다움'을 다양한 각도에서 파헤친다. 상태 독립적 대화와 상태 의존적인 대화, 대화와 장소 적합성, 연애 전문가 동호회와 체스 슈퍼 컴퓨터, 반전문가와 전문가 체계, 이야기 도중 끼여들기와 점잖게 기다리기, 말이 이어지게 만들어주는 대화의 손잡이, 무손실 압축과 엔트로피에 대한 설명을 읽다보면 인간적인 인간이 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그래서 우리는 모두 고독한지도 모르겠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결론: 두 말할 필요 없이, 2014년에 읽은 최고의 책이다. 절판되기 전에 관심있는 독자분들께서는 서둘러 지금 당장 구매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EOB

댓글 2개:

  1. 안녕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꼭 읽어 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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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 읽어보시면 많은 것을 얻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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