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7월 27, 2008

[독서광] 닥터스 씽킹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보면 일정은 빡빡하고 요구 사항은 바뀐다고 투덜투덜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친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다보니 이런 현상이 소프트웨어 분야에만 국한되어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른 분야는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순조롭고 쉽게 다 해결되고 있을까?



환자 목숨을 놓고 의사의 판단을 다루는 책인 '닥터스 씽킹'을 읽어보면, 의사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명함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급박한 일정(물론 느릿느릿하게 결정해도 좋은 상황도 있지만 반나절도 영겁의 시간이 되어버리는 응급 상황도 많다)과 사람마다 모두 다른 요구 사항(?)을 다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친한 친구 녀석도 의사라서 이런저런 황당무개한 이야기를 들어봐서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머리 아픈지 아주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더욱더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책 목차 중에서 흥미로운 항목만 골라서 정리해보았다. 의학 서적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살펴보라.




  •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판단
  • 실수에서 깨달은 뼈아픈 교훈
  • 시간의 지배자
  • 불확실성과의 싸움
  • 자료 판독의 어려움


읽다보니 갑자기 디버깅...이 떠오르지 않는가? 뭔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작업을 일컫는 단어 말이다. 하긴 질병을 고치는 작업도 사람을 대상으로 문제 원인을 찾아 격리한 다음에 해법을 논하니 디버깅은 디버깅이다. 이렇듯 이 책을 읽다보면 컴퓨터 분야에서 고민하는 내용을 다른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바라보며 해결하는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멋진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정형화된 규칙에 따른 상황 대응 vs 직관과 창의성을 발휘한 상황 대응이다. 마치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공학 vs 에자일을 생각나게 만드는 주제인데, 정형화된 규칙과 알고리즘으로 모든 질병을 파악해서 대응하기는 아주 어렵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정형화된 규칙에 따르다보면 실제 환자와 의사 소통에 소흘하게 되며 결국에는 요구 사항(?) 분석과 피드백 실패로 인한 심각한 상황에 봉착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귀담아 들을만한다.



책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뽑아서 정리해보았다. 의사 이야기지만 소프트웨어 개발하면서도 한번씩 가슴에 새겨들을 말이다.



특히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올바른 사고를 하려면 잠시 생각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 어떤 환자를 만나든 정신없이 돌아가고 때로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주변 환경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위축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생각과 행동의 속도를 늦추면서 '신중한 여유'를 가지고 진료한다.


록 선생은 또한 많은 의사들이 모든 수치가 동일한 확실성과 타당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한다. "사람마다 두는 비중이 다르다"는 것이 록 선생의 말이다. 즉, 의사 결정을 할 때 모든 결과에 동일한 무게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수치에 무게를 두고 어떤 수치를 버려야 할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


컴퓨터 기술은 방대한 임상 정보를 정리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효율성'만 진작시키다보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틈은 점점 벌어지기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의 정신이 온통 템플릿 빈칸을 채우는 일에만 쏠려 인식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딱 이런 생각이 들죠. 저기 캄캄한 어둠 속에 답이 숨어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더 이상 저 어둠 속을 뚫고 갈 길을 모르겠다, 알고 있는 모든 길을 떠올려 보지만 이미 모두 가본 길들이다. 이제 모든 길이 막 다른 골목으로 보이고, 더 이상 새로운 길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의사들의 의사결정은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벌써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바구니에 책을 담고 계신 분들도 있으리라... 특히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독자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EOB

댓글 1개:

  1. 오호..그렇지 않아도 닥터하우스 보면서 디버깅에 배울 점이 없나 하고 있었는데 아예 이런 책이 나오네요. ^^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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