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왼쪽에서 동시에 두드려맞는 장하준 교수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기 심정을 토로하기로 작정하고 인터뷰에 응한 내용을 정리한 상당히 위험한 책을 여기 소개한다고 이 블로그를 색깔로 재단하려는 일부 몰지각한 무리들이 기승을 부릴까봐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나오는 내용 중 상당수가 위험(?)한 내용이지만 그 중에서도 박정희 관련 내용과 재벌 관련 내용은 위험한 만큼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구? 다음 설명을 한번 읽어보자. 로버트 L 글래스 할아버지가 쓴 소프트웨어 크리에이티비티(이 책 카운트다운 들어갔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낄낄...)를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멋진 일화가 나온다(여기서 '나'는 로버트 L. 글래스).
어릴 때는 권위자가 아이나 학생의 성장 과정을 이끈다. 이 시기는 이해와 인정이 동일하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개념을 설명하면 아이나 학생은 그대로 인정한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서서히 이해와 인정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부모나 교수가 십대나 학생에게 개념을 이해만 시켜서는 부족하다. 이해를 넘어서 인정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후자가 훨씬 힘들고 복잡하다. 왜냐고? 이해는 단순히 개념을 흡수하면 가능하지만, 인정은 기존 이해라는 틀 안에 개념을 맞춰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존 이해라는 틀이 견고할수록 인정에 이르기가 어려워진다.
(이해와 인정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권위자인 부모가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내가 부모니까! 내 말 들어!”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내게 있어 그 구분이 처음으로 중요하게 다가왔던 사건을 기억한다. 몇 십 년 전 샤이러(Shirer)가 집필한 제 3 제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을 읽고 난 직후였다. 책 내용을 되새기다가 나는 나 자신이 샤이러가 하는 이야기를, 그러니까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충격적이었다. 여느 아이나 학생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 때까지 이해와 인정을 구분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를 인정한다는 뜻일까? 절대로 결단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이유를 이해했다. 그 순간은 두 개념의 구분이 불가피했다.
이미 인정하기에는 왼쪽 오른쪽으로 확고하게 굳어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정을 하게 만드려니 장하준 교수도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을테다. 일반인들은 장하준 교수가 쓴 복잡한 논문이나 저술서를 읽지 않고 단순히 오른쪽/왼쪽 신문들이 자기 편할대로 가공한 내용만을 간추려 읽으니 인정은 고사하고 장하준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아직 내공 부족으로 인정까지는 못하더라도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실제 책 내용은 어떨까? 한마디로 이 책은 '신자유주의'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팍 끼얹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잘못을 박정희와 재벌에게 떠 넘기려는 사람들, 시장의 자유를 돈 많은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도록 만들려는 사람들, 내실있는 성장이라는 말도 도 안되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사람들, 주주 자본주의와 경제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성장을 운운하는 모순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집중 공격한다. 이 책 저자들도 이야기하듯이 현실 인식과 대안 제시가 완벽하지는 못하지만(현실은 늘 바뀌고, 현실이 바뀌면 대안도 항상 바뀌기 마련이니...), 그래도 요즘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번 정도 뭐가 문제인지 되짚어보기에 좋은 화두를 던진다는 생각이다.
내친 김에 국방부가 2008년 초강력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구매해놓았다. 장하준 교수 책과 커맨딩 하이츠와 함께라면 4월이 즐거우리라는 느낌이 든다.
EOB
나쁜 사마리아 인들은 나름 충격적으로 읽었는데, 이책은 어떨런지 궁금하군요.
답글삭제당장 알라딘 보관함에 넣어놓아야 겠습니다. 한꺼번에 주문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