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2월 25, 2012

[독서광] 부의 기원(1)

속독법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 어지간한 책은 일주일이면 독파가 가능한데, 오늘 소개하는 '부의 기원'은 구입해놓고 완독할 때까지 몇 달이 걸리고 말았다. 책이 두꺼운(본문만 700페이지!) 관계로 집에서만 틈틈이 읽어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들고 다뎠더라도 책과 함께 아마 상당한 시간을 보냈으리라는 생각이다. 읽으면서 생각해볼만한 내용도 많았고 고민할 내용도 많았기에, 이 책은 몇 번에 걸쳐 독후감을 써볼 생각이다(지금까지 블로그를 쓰면서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경우는 드물겠지?).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다 읽고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구글을 뒤져보았지만, 완독하신 분이 드문지 아니면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지 그도 아니면 이 책의 내용에 감동 먹고 독후감 쓰기를 포기했는지 의외로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지금부터 슬슬 이야기를 풀어놓겠다.

먼저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해보자. 이 책은 복잡계 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듯,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 다시 말해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는 책'이다. 따라서 현실에 바로 적용 가능한 10단계 프로그램이 담겨 있거나 XXX가 알아야 할 100가지 규칙을 설명하는 책은 절대로 아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반적인 독자들이 이 책을 호기심에서 구입했다가(자그마치 제목이 '부의 기원'이니... 돈 버는 역사와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착각을 하기가 딱 쉽다) 바로 떡실신하고 gg치는 상황이 벌어졌으리라 예측이 가능하다(낄낄). 이 책은 복잡계, 행동 경제학, 네트워크 이론, 진화 이론을 바탕으로 시장, 정부, 기업, 사회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전개하고 있으므로 경영/경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_반드시_ 읽어봐야할 필독서라 보면 틀림없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비교적 짧은 1부에서는 '패러다임의 이동'이라는 제목으로 부가 어디서 오는지, 전통 경제학에서는 부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이런 전통 경제학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다룬다. 2부 '복잡계 경제학'에서는 슈가스케이프라는 설탕 따먹기 게임을 예로 들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일어나는 사회적 진화를 설명하고 나서 동태성, 행동 심리학, 네트워크, 창발성, 진화 이론을 토대로 기존 고전적인 경제학에서 벗어나 현상을 좀더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학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 3부 '진화는 어떻게 부를 창출하는가'에서는 디자인 공간이라는 경제의 진화 모델을 제시한 다음에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경제적 진화라는 3부분으로 경제적인 발전을 설명하고, 최종적으로 엔트로피와 불가역성을 토대로 기존의 균형잡힌 경제관에서 벗어나 부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4부 '기업과 사회에 대한 의미'에서는 진화를 위한 전략, 사고하는 사람들의 조직, 기대의 생태계인 금융, 요즘같이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시끌법적한 상황에 딱 어룰리는 마무리인 정치와 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좌우 대결의 종말을 다룬다.

자, 그러면 오늘은 1부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말을 정리해보자. 1부가 수요와 공급의 균형, 한계 효용의 법칙, 일몰일가 법칙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경제학이 주장하는 이론의 한계에 대해 설명한다는 사실을 알고 읽어보면 더욱 감이 잘 올 것이다.

이 책에서 부는, 간단하지만 매우 강력한 3단계 공식, 즉 차별화, 선택, 증식이라는 진화의 공식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경제 시스템과 생물학적 시스템 모두 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진화 시스템의 부분 시스템이라 보면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
진화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진화에 대해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을 만드는 다목적용 알고리즘이라고 말한다.
진화는 시행착오를 통해 디자인을 창조한다.
진화는 가능성이라는 건초 더미에서 좋은 디자인이라는 바늘 몇 개를 발견하는 그런 알고리즘이다.
합리성과 창의력은 경제에서 진화 알고리즘의 작동에 영양분을 주고 그 행태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에서의 예측은 매우 단기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학자들이 씨름을 해왔던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는 어떻게 창출되는가, 다른 하나는 이 부가 어떻게 배분되는가 하는 것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 두가지 문제를 다 다뤘다.
생산에서의 한계 수익 체감과 소비에서의 한계 효용 체감을 결합하게 되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가격이라는 균형 메커니즘을 갖게 된다. 가격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다.
어떤 상품과 효용 구조, 그리고 생산 과정이 모두 주어졌다고 가정할 때 가격은 정확히 얼마인가? 우리는 이 가격을 계산(또는 예측)할 수 있는가?
슘페터는 경제 성장은 단순히 이미 생산되고 있는 제품의 양을 증가시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관찰해 냈다. 즉 혁신의 역할이 있다는 얘기다.
국가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그 나라가 얼마나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본이 얼마나 생산적이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은 기술이다.
대부분의 전통 경제 모델은 실제로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경제는 하나의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며, 균형 간의 이행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고 간단히 가정해버린다. ... 그러나 시간은 현실 세계의 경제 현상에서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중요한 변수다.
대부분의 전통 경제학 모델들은 비현실적인 가정에서 출발해 수학적 불가피성에 따라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면 그 역시 비현실적인 결론이 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현실 세계는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정말 단순한 사람들'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텐데도 전통 경제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 너무나 머리 좋은 사람들'로 모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가 그 획득에 비용이 들고, 불완전하며,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우리의 뇌가 '완전환 최적'보다는 '충분히 좋은' 것을 빨리 고르는 의사 결정 쪽에 맞춰질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현실 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같아지는 상황이 결코 있지 않으며, 시장은 거의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시장들은 균형보다는 불균형이라는 가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런 시장에는 재고, 주문 잔고, 여유 생산 능력, 불균형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중개자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주식 시장에서 재고의 존재는 휘발성의 변동성이 매우 높은 주식 시장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주식 시장이 더 이상 랜덤워크가 아니라는 사실은 시장이 크게 움직일 때, 다시 말하면 시장이 균형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통계적으로 가장 분명하다. 주식 가격 데이터에는 확실히 동적인 구조와 정보가 있다.
사실상 시스템이 결국 균형에 이른다면 그 시스템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음 번에는 2부에서 주장하는 바와 느낀 바에 대해 요약하고, 여기서 나오는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정리해보겠다.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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