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1월 03, 2012

[독서광] 두뇌를 팝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테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미국 현대사를 절묘하게 가져와 포레스트 검프라는 주인공의 삶에 절묘하게 엮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코메디(응? 이 영화가 1995년 미국 코메디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 분명히 있다) 영화다. 이 영화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사건이 나오는데, 베트남전, 핑퐁 외교, 워터게이트 사건, 반전 운동 등 굵직한 사건마다 검프가 등장해 중심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 그렇다면, 검프가 좌충우돌 미국 현대사의 격류에 휩쓸리는 동안 뒤에서 이런 변화를 주도한 사람 또는 단체 또는 집단은 누구일까? '미제국을 만든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라는 부제가 붙은 '두뇌를 팝니다'는 바로 현대 미국의 싱크탱크로서 랜드연구소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차근차근 제대로 풀어쓰는 멋진 책이다. 지난번에 소개드린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나 로버트 맥나라마 장관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스크린으로 옮긴 전쟁의 안개를 즐겁게 감상하신 독자분들께서는 이 책까지 읽을 경우 이론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랜드연구소는 태생이 미공군을 위한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연구소에서 시작했다. 따라서 비행기 무기 제작, 핵무기 제작, 전쟁에 필요한 각종 계산 등을 하는 곳으로 착각(?)하기 딱 좋은데, 처음부터 산업 자본과 연결되어 있었고(첫 사무실이 더글라스 항공사의 공장 한 켠을 빌어 시작했으니... 할 말 없다) 나중에는 두뇌들이 일거 국방부와 정계로 진출함으로서 군-정부-산업계의 융복합 시스템을 완벽하게 만들어내고 미국의 보수적인 각종 정책들에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가상이긴 하지만...) 포레스트 검프가 겉으로 보이는 역사를 엮었다면 랜드연구소는 쿠바 사태, 베트남전, (핑퐁 외교는 아니지만 지속적인 군비 경쟁을 활용한) 소련의 붕괴, 워터게이트 사건, 911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며 겉으로 절대 보이지 않는 역사를 뒤에서 주도적으로 엮었다고 보면 틀림없다.

이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랜드 연구소와 이미지가 겹쳐지는 어딘가가 떠올랐다. 바로 구글! 랜드 연구소는 철저하게 정량적인이고 분석적인 연구(체계 분석, 게임 이론, 공산주의 사상의 필연적인 붕괴를 형식언어로 예언한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 들었고 사람은 부차적인 요소(효율적인 폭격 연구를 할 때 조종사가 '인간'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아 공군에서 기절초풍한 일화도 나온다)로 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스포크 선장과 같은 합리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며 숫자, 논리가 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시종 일관 변하지 않는 이론적인 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구글 역시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갑자기 사람을 최대한 활용하는 네*버가 생각난다. ㅋㅋ)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철학을 토대로 성장한 회사이므로 어떻게 보면 랜드 연구소의 현대판 IT 버전이 구글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므로 쉽게 읽기는 어렵지만, 발톱 까칠한 독자분들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결론: (미국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정치/군사 오덕들에게)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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