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과 10월 사이에 가을 특집(?)으로 애자일 관련 서적들을 소개했었다. 여세를 몰아 오늘은 애자일을 경영과 창업 관점에서 풀어쓴 아주 유익한 책인 '린 스타트업: 지속적 혁신을 실현하는 창업의 과학'을 소개하겠다. 제목에 '창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에 새로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으로 보기 쉬운데, 여기서 '창업'은 광의의 창업이므로 대기업이나 정부조직에서 뭔가 새롭고 독창적인 일을 시작하는 경우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겠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스타트업'의 정의에 대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저자는 2장에서 스타트업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스타트업이란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려고 나온 조직이다.
이 정의를 읽다 보면 데자뷰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애자일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논할 때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는 데, 이 책 역시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니라 '창업'!)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방법을 다룬다. 여기서 '기민'하게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데, '기민함'은 무작정 뛰어들어 일단 서비스를 만들고 시작하는 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말 중요하다. 스타트업은 대기업과는 달리 시간/돈/사람이라는 자원도 부족할 뿐더러 거대 자본력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를 잽싸게 노려야하기 때문에 일단 시작한 다음 실패할 경우 경험을, 성공할 경우 부와 명성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덤비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작정 'just do it' 정신으로 무장하고 뛰어들 경우 실제 사용자가 전혀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밤새 만드느라 피 같은 돈과 시간과 인력을 _낭비_하고 결국 좌절과 절망으로 끝맺는 시나리오로 끝나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스타트업의 성공율이 지극히 낮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타트업이 대기업처럼 철두철미한 계획과 장기간에 걸친 서비스 개발을 할 수도 없고 그렇게 개발한다고 해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이야 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 책은 요구사항이 불확실한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애자일 기법을 창업 과정에 투영시켜 어떻게 하면 너무 빠르지도 않게 너무 느리지도 않게 창업 과정에서 _고객이 원하는_ 서비스나 제품을 _제 때_ 출시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좋은 책이다. 막연하게 가입자 숫자만 주물럭거리는 허무 지표(원인과 결과를 파악해 행동으로 옮기기 곤란한 각종 통계 자료) 대신 (과학적인 사고 방식으로 실험을 하고 결과를 분석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혁신 회계 기법을 동원해 회사의 성장 엔진이 제대로 돌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어떤 기능이나 디자인을 변경하고 나서 실제 고객 만족도나 고객 유지/가입율이 높아지는지 낮아지는지 변화가 없는지를 점검하는 방법, 제품 개발 과정에서 포기해야 할지 지속해야 할지 아예 다른 측면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방법,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회사 내부에서 진행해야 하는 각종 활동을 (비록 미국 사례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사례와 통계 자료로 제시하고 있기에 읽을 때만 기분 좋은 자기 계발서 따위와 완전한 차별 포인트를 제공한다.
한 때 창업을 하려고 무모하게 시도했다가 이륙도 못하고 주저앉은 실패를 맛보고, 다시 한번 창업을 염두에 두고 허무 지표를 주물럭거리며 막연히 기획만 계속하며 부푼 꿈만 키웠다가 여러 가지 문제로 다시 한번 주저앉고, 굳게 마음먹고 스타트업을 시작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 현 시점에서 이 책은 충격 그 자체로 내게 다가왔다. 결론:스타트업을 시작하려거나 현재 다니는 회사/조직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께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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