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8월 06, 2013

[일상다반사] Schemer: 소셜 TO-DO 리스트

작년 초인가 회사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완전 엉뚱한 서비스를 하나 제안한 적이 있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일정표에 내가 뭔가를 기록하면 이에 따라 영감을 주는 다른 활동들이나 제안을 해주는 서비스였다. 예를 들어, '생일'이라 입력하면 선물 목록을 제시한다거나 '휴가'라 입력하면 가볼만한 곳을 알려주는 등 나름 인공 지능적인 특성으로 사용자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비서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 너무나도 막연한 아이디어라 현실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바쁜 일상에 파묻혀 아이디어를 완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스키머라는 서비스를 보고 나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내용을 이미 다른 사람이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는데, 이번에도 이 법칙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영어 사전에서 scheme을 찾아보면 '계획, 제도'라는 뜻이 있다.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스키머는 소셜 할 일 목록 정리기라고 보면 되는데, 기존의 다른 할 일 목록 서비스와 차별화하기 위해 구글 플러스와 연계해 남들이 하는 작업을 공유(응?)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소셜'과 '할 일 목록'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보며 사생활 침해와 관련해 걱정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우리는 포스퀘어로 동선을 인터넷에 남기고 페북에 사진을 남기고 태깅을 하고 트위터로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올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T_T

요렇게 설명하고 보니 도대체 무슨 서비스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 예를 드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스킴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자의 할 일을 넛지해준다. 하나는 미리 정의된 태그로 식당, 영화, 책, 패션, TV, 요리, 휴가 등의 활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훔쳐(!)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검색어를 입력해 다른 사람들이 많이 계획한 활동을 훔쳐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기 위해 'movie'라고 입력한 순간 다른 사람들이 입력한 내용이 목록으로 나온다. 여기서 선택하면 몇 명이 이 계획을 시작했는지, 몇 명이 성공리에 이 계획을 마무리했는지 숫자로 된 통계를 볼 수 있다. 해당 목록을 선택하면 시작한 무리에 속하게 되며, 계획을 마무리하고 나서 'done' 버튼을 콕 찍어주면 완료한 무리에 속하게 된다. 해당 계획이 얼마나 난이도가 높은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할 일 정하기와 검색 이외 나머지 다른 기능은 딱히 없다(아직까지는 나의 계획을 확인하고 남들이 성취한 업적을 보는 정도가 끝이다). 기능만 놓고 보면 별 거 아닌 서비스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잠재력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특히 사업 모델로 확장 가능한 플랫폼 형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스키머에 처음 가입할 때 지역을 입력하라고 나오는데, 지역 기반 서비스와 연계하기 위한 기초 자료 수집으로 보인다. 이 정보를 이용해 'Pizza'라 입력했을 때 서비스 제휴를 맺은 가맹점의 전화나 위치가 할 일 목록에 나오거나 'Movie'라 입력했을 때 서비스 제휴를 맺은 근처 영화관 상영 시간표와 남은 좌석 수가 나오면 대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직 한국어 서비스는 지원하지 않으므로(지금은 한글로 계획을 입력할 경우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머나먼 미래지만 미국에서는 현실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장애물도 존재한다. 매번 상업 광고만 나올 경우 쉽게 식상해지므로 꾸준히 우연을 맛볼 수 있는 사용자의 집단 지성 풀이 구축되어야 하는데, 사용자가 많아야 광고(?)주가 붙으며, 광고주가 붙어야 체리피커들도 많아질테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에 바로 부딪힐 것 같다.

스키머가 그저 그런 또 하나의 할 일 목록 서비스로 조용히 묻힐지 아니면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등에 업고 무럭무럭 커나갈지는 사용자의 참여 수준에 달린 것 같다. 하지만 기존 구글의 지나온 발자취를 보면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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