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8월 15, 2026

[독서광]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최근에 추천 받은 책을 몇 권 읽고 있는데, 내용이 좋아서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을 소개하겠다.

이 책은 중경삼림의 배경으로 유명한 홍콩의 청킹멘션을 바탕으로 양지와 음지를 드나드는 비공식 경제 시스템을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파고드는 책이다. 세상의 어떤 인간도 신뢰할 수 없다와 언제나 필요에 따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철학이 공존하는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책은 어느 누구도 배제 당하지 않고서 무엇이든 공유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해 접근하는 특이한 방법을 취한다. 보통 이런 주제의 책을 접한다면 퉁수에 퉁수를 거듭하고 반전에 반전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삶과 경제의 구분을 의식적으로 모호하게 만든 세상에서는 '겸사겸사' 서로의 일을 봐주면서 놀이에 가까운 삶을 영위하기에 가슴 아픈 사연은 있을지라도 세상에 대한 혐오감을 주는 기가 막히는 사건과 사고는 나오지 않는다.

홍콩의 청킹멘션에서 벌어지는 연결 고리는 정형화되고 상업화된 신뢰를 구축하는 일반적인 소셜 네트워크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허세를 부리면서 찍은 각종 사진과 인터넷에 올라오는 시시껄렁한 동영상을 서로 공유하고 낄낄거리는 중간 중간에 사고 팔고 싶은 물건들을 올리고 이를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활용해 절묘하게 신용을 유지하면서도 이익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터넷과 컴퓨터라는 도구를 중심으로 사람이 빠져버린 플랫폼 경제의 허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거래를 모두 점수화해서 어떻게든 여기에 맞추지 못하면 도태되는 플랫폼 중심의 세계에서는 여기 참여하는 사람들(특히 판매자/서비스 공급자)이 별점 다섯을 받기 위해 거의 필사적으로 구매자들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TRUST라고 불리는 협동형 커먼즈에서는 한 번 잘못으로 영원이 매장되는 경우도 없으며 계속해서 잘 나가기만 해서 배풀기만 하고 손해만 보는 경우도 없는 특이한 형태의 사회적인 '안전망'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모든 사람이 독립적이고 동등한 모양새를 보인다. 여러 가지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사람 관계가 먼저이고 이를 연결하는 기술은 나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TRUST에서는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 방식을 택한다. 시장 경제가 먼저이고 이를 최적화하기 위해 조직을 구성하는 대신 느슨한 조직 형태로 공동의 삶을 영위하도록 만들면서 여기에 시장 경제를 도입하기에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은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한다는 경쟁과 죄수의 딜레마/팃포탯으로 대표되는 게임 이론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내가 상대방을 잘 대해주면 상대방에서도 똑같거나 비슷하게 나를 대해줄 것이라는 상호간의 기대 내지는 신뢰"를 의미하는 호혜성이 아니라 "복잡한 조건을 걸거나 직접적인 댓가를 바라지 않고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주고 나중에 어떻게든 내가 힘들 때 도움을 받겠지"라는 호수성을 기치로 내걸기 때문에 최근 한국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내가 뭔가 당했으면 반드시 갚아줘야 한다"는 역호혜성으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삶의 불확성실성을 바라보는 태도갸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것이 잘 짜여져서 정해진대로 굴러가는 대신 하루하루가 바뀌도 도전적인 상황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인정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 돈을 많이 모으고 노후 준비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경우를 최대한 방어해야 하기 때문인데 불확실성 자체를 인정하고 여기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개인과 집단의 문화적인 토대가 갖춰져 있다면 현재와 미래 사이/또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묘한 자원 분배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줄 요약: 고용이 유동화되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이 시점에서 공동체 관점으로 삶의 형태에 대해 고민해보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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