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5월 07, 2011

[독서광] 빅 스위치



예전에 니콜라스 카라는 경영 컨설턴트가 발표한 "IT doesn't matter"라는 발칙한 제목의 기고문이 IT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었다. IT 업계 종사자들의 반응이 얼마나 화끈했는지는 카가 쓴 동명의 블로그 글을 보면 감이 올 것이다. 그런데 카가 빅 스위치라는 훌륭한 책을 썼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우연히 책을 추천받아 잽싸게 읽었는데 클라우드 기술이 일상화되기 시작한 요즘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에디슨의 전구와 발전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초창기 발전기는 대규모 지역을 목표로 만든 중앙 집중식 유틸리티가 아니라 소규모 공장이나 좁은 지역을 목표로 만든 개별 기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력을 생산하는 기계 대신 전력을 팔기 위한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시장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전압, 소켓 등에 대한 표준화 작업을 거치면서 결국에는 전기는 품질이 규격화된 일용품으로 변해버린다. 카에 따르면 수십 년이 지나 컴퓨터 업계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등장한 메인 프레임을 시작으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PC 시절을 거쳐 클라이언트/서버 모델로 갔다가 드디어 ASP, SaaS가 시장에 급속도로 전파되었고, 요즘에는 클라우딩 컴퓨터가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다. 결국 컴퓨터도 전기와 마찬가지로 유틸리티화되는 형국이다.



갑자기 10년 전 회사 내부에서 email 서버와 웹 서버를 설치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당시 email 서비스를 받거나 웹 호스팅을 하려면 비용도 많이 들었으며, 무엇보다 서비스 자체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개별 PC에 대한 ADSL을 포기하고(그 당시 네트워크 관리자가 없었던 소규모 회사는 세상에나 ADSL로 분리된(!) 사내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T_T) 전용선을 끌어오는 김에 리눅스를 좀 안다는 B급 관리자가 설치 업무를 맡게 된 셈이었다. 서버 구매하랴, 방화벽 구매하랴, DNS 설정 하랴, sendmail 설정하랴, 오픈 소스 웹 메일을 가져와 수정하랴, 웹 서버 설정하랴 며칠 동안 거의 떡 실신할 뻔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며칠 전 소규모 단체를 위한 email과 calendar 서버를 설정할 일이 있었는데, 도메인 하나 뚝딱 신청한 다음에 구글이 제공하는 훌륭한 앱 서비스(ASP)에 가입해 무료로 email 시스템을 구축했다. 솔직히 여기 걸린 시간은 딱 2시간(그나마 실제 설정 시간은 30분이고, DNS MX 레코드 전파/인식이 오래 걸렸다)이며, 여느 상용/자체 제작 프로그램보다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단순히 힘만 전달하는 전기와는 달리 IT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구성 요소를 조합해 유틸리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위력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앞서 구글 앱 서비스를 예로 들었지만, 구글 앱 서비스는 email 이외에도 일정표, 대화, 주소록, 그룹 관리, 문서 공유까지 다양한 효용성을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이렇게 일상적인 작업에 맞춰 미리 정해져 놓은 어플리케이션 서비스 이외에 도메인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SaaS를 도입할 경우에는 회계나 물류와 같이 회사의 비즈니스 로직까지도 다룰 수 있게 되며, 궁극적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도입할 경우에는 가상 컴퓨터와 분산 파일/데이터베이스 서비스를 활용해 자기 사업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구현하는 토대까지 쉽게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기술이 없어 시작못하겠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며, 오로지 상상력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의 S3, EC2나 구글의 GAE(Google App Engine) 등은 스타트업 회사에 있어서는 구세주와 같다. 게다가 구글이나 야후! 등이 제공하는 공개 API를 사용해 기존 서비스와 결합하는 매시업 기법까지 활용할 경우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규모가 더 커지면 직접 클라우드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여러 가지 훌륭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까지 늘어나고 있으므로 체급에 따라 유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셈이다. 영화 페이스북에서 주인공이 "MySQL이 설치된 리눅스 서버가 더 필요해!"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옛날이라면 주인공이 자체 DB를 만들다 영화가 끝났겠군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동전에 앞뒤가 있든 밝은 측면 뒤에는 어두운 측면도 있다. 지난 4월 하순에 미국 동부 지역에서 EC2가 다운되며 여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많은 회사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아마존 자체의 신뢰도도 떨어졌다. 물론 아마존 웹 서비스 팀은 시의 적절하게 Summary of the Amazon EC2 and Amazon RDS Service Disruption in the US East Region이라는 보고서를 올렸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며, 아마존 서비스를 이용하다 문제가 생기고 이를 해결한 회사들도 자신들의 경험담과 가용성 높은 아키텍처에 대해 수준 높은 토론을 벌여 클라우드 컴퓨터 후발 주자들에게 조언을 주기도 했다. 정전이 일어난다고 해서 유틸리티 모두 걷어내고 집집마다 발전기를 둘 수 없듯이, IT 분야에서도 이제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면 틀림 없겠다.



니콜라스 카는 천부적인 이야기꾼 답게 앞서 설명한 기술적인 내용을 문화/경제/사회 관점에서 신나게 풀어낸다. B급 관리자도 SaaS나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기에 정신차리고 신기술을 제대로 파악하려 한다. 애독자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두 눈 _똑바로 크게 뜨고_ 지켜보면 좋겠다.



뱀다리: 오늘은 어쩌다 보니 서평이 아니라 기술 설명 형태가 되어버렸다. 일종의 매시업(!) 서평인가? ㅋㅋ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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