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전공 책만 들이 팠더니,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머리도 띵하고 눈에도 잘 안들어오고 해서 다시 $과 관련된 책을 집어들었다. 제목부터 유치 찬란한 '스위스 은행가가 가르쳐주는 돈의 원리'!
그런데, 이 책은 정말 권두언부터 엽기발랄했다.
먼저 편견을 버리고 출발하라.
다음에 이어지는 목차 역시 깬다. 한번 볼까?
- 제1의 원리 _ 리스크에 대하여: 부자가 되려면 리스크를 걸어라
- [보조원리 1] 항상 의미 있는 승부에 나서라
- [보조원리 2] 분산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 제2의 원리 _ 과욕에 대하여: 욕심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 [보조원리 3] 당초 원했던 수익에 도달하면 욕심을 버려라
- 제3의 원리 _ 희망에 대하여: 배가 가라앉는데 기도하지 마라
- [보조원리 4] 작은 손실은 인생의 현실로 달게 받아들여라
- 제4의 원리 _ 예측에 대하여: 예측가의 오류에 휘둘리지 마라
- 제5의 원리 _ 패턴에 대하여: 돈에서 질서를 찾지 마라
- [보조원리 5] 역사가의 함정에 주의하라
- [보조원리 6] 차트분석의 환상에 주의하라
- [보조원리 7] 상관관계의 망상에 주의하라
- [보조원리 8] 도박가의 궤변에 주의하라
- 제6의 원리 _ 기동력에 대하여: 한 곳에 매달리지 마라
- [보조원리 9] 충성심과 향수로 하락시세에 사로잡히지 마라
- [보조원리 10] 더 매력적인 투자대상이 나타나면 미련 없이 옮겨라
- 제7의 원리 직관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직관은 의지해도 좋다
- [보조원리 11] 희망과 직관을 혼동하지 마라
- 제8의 원리 종교와 신비론에 대하여: 당신이 돈 버는 일에 신은 무관심하다
- [보조원리 12] 점쟁이가 맞으면 모든 점쟁이는 부자여야 한다
- [보조원리 13]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신을 즐겨라
- 제9의 원리 낙관과 비관에 대하여: 부자는 건강한 비관주의자들이다
- 제10의 원리 여론에 대하여: 큰 이익을 원하거든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라
- [보조원리 14]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 기회가 있다
목차에서 나타나지만 이 책은 요즘 언론이나 다른 책에서 부르짓는 내용과는 정 반대 내용이 여기저기에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수익을 0으로 만들어버리는 분산투자 방법 따위를 사용할 경우 월급쟁이들은 절대 $ 못 벌고,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데 종신보험과 같은 장기 투자 상품은 거들떠 볼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이 책을 요약하자면 돈이 되는 곳이 눈에 들어오면 잽싸게 옮겨가라는 $계의 에자일 방법론(?)으로 생각하면 틀림없겠다.
사람에 따라 이 책이 아주 불쾌하게(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자기 가치관과 충돌이 일어나는 불편한 상황을 참지 못한다)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B급 프로그래머는 이 책 읽고나서 남들과 달리 왜 이렇게 $을 못벌고 있는지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서 돈값을 하고도 남았다는 생각이다. 예로 장기주택 마련 저축 이야기를 들어 볼까?
B급 프로그래머는 장기주택 마련 저축을 세 곳으로 분산시켜 놓았다. 여기서 _분산_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요즘과 같은 선진적인(하하하... _선진_이라는 표현을 쓰니 낯이 가렵다. 과거 기준으로 _선진_이라는 말이다) 금융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면 절대로 저지르지 않았을 실수일 뿐이라서 웃음만 나오지만 여려분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야 이 한몸 바쳐준다. T_T 어떻게 분산시켜놓았느냐 하면... H은행(두 가지), S은행(한 가지) 펀드형이 아니라 모두 예금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완전히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싶겠지만 잠깐만 참아보자. 장기주택마련 저축을 세 가지 종류에 들었는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 H은행 장기주택마련 저축 1번 유형은 7년 만기에 3년 동안 금리 고정, 그 후부터는 금리가 장기주택마련 저축 금리 변동에 맞춰서 수시로 바뀐다.
- H은행 장기주택마련 저축 2번 유형은 50년(!) 만기에 3년 동안 금리 고정(3년간 단리, 이후 복리), 그 후부터는 매년 1번씩 금리가 자유적립식 상호부금 금리 변동에 맞춰서 바뀐다.
- S은행 장기주택마련 저축 유형은 33년 만기에 매년 1번씩 금리가 자유적립식 상호부금 금리 변동에 따라 바뀐다(1년차부터 복리식으로 전환한다는 이야기).
이렇게 분산(?)해 놓고 보면 7년 이후에도 장기주택마련 저축으로 연말 정산을 받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상품 하나를 중도해약함으로써 유동성까지 확보할 수 있으니(50년짜리라도 가입 후 5년 이후부터는 연말 정산 뱉아내지 않고 해지가 가능하며, 7년 이후부터는 비과세로 해지가 가능하다) 상당히 머리를 잘 쓴 듯이 보이지만... 장마저축 금리 가뭄… 비난 봇물과 같은 기사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금리가 낮으면 말짱 광이다. 실제로 시작할 때는 거의 6%에 이르는 금리를 지급했지만 점점 쥐꼬리로 변신하더니 요즘 금리가 상승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쥐꼬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돈의 원리'를 읽으면 은행이 이렇게 장기 상품에 대해 천대하는 이유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신문기사 글처럼 '7년 족쇄'를 악용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은행 자체도 장기 상품에 대한 전망을 불투명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래서 B급 프로그래머는 당장 은행으로 출동해서 실제 금리를 알아보기로 했다.
- H은행 1번: 2007년 12월부터 연 5.1%, 그 전까지는 4.5~4.9%(변동)
- H은행 2번: 2006년 10월부터 연 3.8%(안습), 2007년 10월부터는 연 4.1%
- S은행: 2006년 12월부터 연 3.45%(기절), 2007년 12월부터 연 4.05%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더 덧붙이자면 H은행 창구 직원조차 1번 상품과 2번 상품 금리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사실이다. 비과세 혜택이랑 복리 상품이라는 사실이 약간 위안을 주기는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삽질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과감하게 해지하고 옮겨타야 하나? 최소로 불입하고 7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엑셀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계산 중인데, 조만간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자, 이제 _장기_랑 _분산_을 어떻게 엉터리로 했는지 따끈따끈한 실제 예를 보여 들였으니... 너무 버럭(!)하지 말고 '돈의 원리'를 독자 여러분도 즐겁게 읽기 바란다. T_T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