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출판사에서 출간 기념으로 선물로 보내준 인간, 조직, 권력 그리고 어느 SW 엔지니어의 변(辯)을 지난 주에 출퇴근하며 틈틈히 읽어보았다. 읽고난 소감을 정리하자면... 이거 참... 난감하다. B급 관리자도 14년 전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가 SI성 작업을 주로하던 회사였기에 갑/을/병/정에서 주로 '정'을 도맡아 해보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바뀐 건 정말 하나도 없나보다.
이 책은 SI 업계에서 일하며 나름 깨달음을 얻은 어떤 SW 엔지니어의 자기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진흙탕에 가까운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대 비급을 기대했다면(프레드 브룩스에 따르면 은총알은 없다. ㅋㅋ) 번지수가 조금 틀리긴 하겠지만, 최소한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가 어떤 상황인지 감을 잡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솔직히 말해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도 상당히 순화되었기에 실제 상황은 이 보다 훨씬 더 나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업계가 바닥이라고? 미안하지만 바닥 아래 지하실 있고 지하실 아래에 지하 주차장이 줄을 죽 서서 기다린다고 보면 되겠다. T_T
이 책의 대상 독자가 아주 난감하다. 이미 10년 이상 이 바닥에서 굴러버린 독자라면 막장에서 볼 거 다 봤으니 이 책에서 얻을 내용은 제한되어 보이고, 처음 입문한 신참 개발자라면 이 책에서 그리는 현실의 비참함에 강력히 저항(자기가 택한 길이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분이 좋을리 만무하다)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한 번 정도 거울에 비춰보고 싶은 분이 읽어보면 되겠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알고 보면 단순하다(책에서는 복잡하게 써놓았지만 다음처럼 요약 가능하다). "강력한 생존 능력과 백데이터(이 단어 정말 간만에 써본다. ㅋㅋ 재사용 가능한 코드, 문서, 템플릿, 도메인 지식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를 갖추고, 믿을만한 팀을 구축해서 함께 일하고, 착한 사람이 되길 포기하며 힘들고 티 안나는 일은 재주껏 피하고, 적당한 정치력을 갖춰 갑이 되었든 을이 되었든 자기 상사가 되었든 자신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잘 포섭하고, 늘 정신을 바짝 차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살아남자."로 보면 되겠다.
오늘따라 암울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듯이 보여 가슴이 아픈데...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분야에 몸 담고 계신 애독자 여러분이 모두모두 성공하시길 항상 기원한다. 그래야 나중에 눈치 안 보고 맥주라도 얻어마시지...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