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0월 27, 2012

[독서광] 인간없는 세상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온갖 악행(?)을 다루며 여기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책은 주기적으로 등장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곤했다. 물론 너무 오버하는 바람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경우도 있었고 문제를 인식하고 여기에 대응함으로써 파괴를 늦추거나 회복하는 실마리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인간 없는 세상'은 '만일 지구상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사람들이 지구에 내놓은 짓(?)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흥미로운 책이다.

사람이 사라짐에 따라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만든 거대한 구조물이나 인공물이 자연의 힘 앞에서 원상 복귀되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일본을 덮친 쓰나미로 인해 화학단지에 화재가 발생하고 초대형 원전 사고가 발생한 사례는 비록 인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제가 안 될 경우(사실상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과 유사하다) 발생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책에서 다루는 관련 내용(10장 텍사스 석유화학 지대, 15장 방사능 유산)은 상상이 현실화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보면 틀림 없겠다.

다음으로 인간이 만든 구조물은 일단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영원히 지속되는 대신 끊임없는 유지 보수를 요구하며 설상 가상으로 자연은 끊임없이 이를 원상태로 되돌리려고 하므로(2장 집은 허물어지고, 12장 세계 불가사의의 운명), 4대강 공사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블루레이되겠다. T_T 다음 두 사진은 봄비에 무너진 4대강, 병성천의 변화 [비교사진]에서 가져왔는데, (사람이 행하는) 공사는 어렵고 (자연이 행하는) 원상복구는 너무나 쉽다. 결국은 초기 건설에 들어간 천문학적인 비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유지 보수에 어마어마한 노력과 비용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며 이게 국가 경쟁력을 얼마나 높일지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봐도 정말 모르겠다. 경부고속도로 역시 공사 후 유지보수비가 훨씬 더 많이 들긴 했음에도 불구하고(구간 직선화등으로 고도화하게 위해 지출한 비용을 포함하면 진짜로 어마어마한 유지보수 비용이 나올거다) 사람과 물류 이동 속도를 높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지만(물론 다른 사업을 제치고 수행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이익을 가져왔는지 손해를 가져왔는지 따지는 문제는 너무나도 복잡하므로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릴 가능성이 높다), 4대강은 끊임없는 유지보수와 고도화 작업을 거친 자전거 도로로 자전거들이 씽씽 달린다고 해서 이게 과연 어떤 이익을 우리에게 가져다줄까? 경부고속도로와 4대강 정비사업은 과거에 제대로 먹히던 전략/전술이 계속 유효하다고 보고 사업을 벌일 경우 정말 곤란에 빠진다는 좋은 사례로 남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구글 데이터 센터의 내부가 최초로 공개됩니다.라는 기사를 읽고 나서 사람이 사라진다면 초대형 데이터센터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봤다. 사람이 사라지게 되면 당연히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을 이용한 트래픽이 급격하게 줄어들기에, 데이터센터로 들어오는 네트워크 트래픽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동시에 관리 목적을 제외한 나머지 데이터베이스 서버와 파일 서버에 자료가 쌓이지 않는다. CPU와 하드디스크는 하는 일 없이 no-op을 수행하게 되며, 간만에 컴퓨터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는 셈이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로 연결된 전력선이 끊어지거나 데이터센터로 들어오는 전력을 제어하는 변전 장치에 이상이 생기거나 근처 발전소가 정지해버린다면 일시적으로는 UPS가 가동하겠지만 곧 축전지가 방전되며, 데이터센터에 디젤로 동작하는 비상 발전기가 요행히 동작했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연료가 바닥나면서 데이터센터에 입주한 수 많은 컴퓨터는 일제히 침묵에 빠질 것이다. 운이 좋아 전원이 계속 공급되는 경우에도 공조 장치에 이상이 생긴다면 과열을 감지한 CPU가 스스로 셧다운 명령을 보드에 내려 컴퓨터들이 차례로 침묵에 빠져들기 시작할 것이며, 이런 지능적인 관리 기능이 없는 일부 컴퓨터의 과열에서 비롯된 화재가 데이터센터의 전선 피복을 태우며 겉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것이다. 요행히 하론 소화기가 동작해 초기에 화재를 진압한다고 하더라도 전선 합선 등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관리 기능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며 결국에는 안전을 위해 전체 전원이 모두 차단되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고철덩어리로 전락한 컴퓨터들은 시간이 흘러흘러 데이터센터가 붕괴됨에 따라 그 속에 묻히게 되며 먼 훗날 누군가 데이터센터 잔해를 발견하면 플라스틱 성분과 철 성분과 금을 비롯해 일부 희귀한 금속 성분이 뒤죽박죽된 이상한 광산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결론: 가을을 맞이해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책이므로 강력 추천한다.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