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세상이 복잡해지다 보니 여기에 압도당한 사람들이 단순함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하드웨어 스펙이나 기능 측면에서는 경쟁사(응?) 제품보다 떨어지는 아이포드 시리즈가 MP3 시장을 압도해버리고, 연이어 아이폰이 완전히 스마트폰 시장을 평정해버린 요즘 단순함의 미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하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는 엄청나게 복잡한 소프트웨어임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 계속해서 단순함(또는 특화된 기능)으로 살을 뺀 경쟁사 제품군(웹 오피스 포함)들을 모두 물리치고 있으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왕좌를 차지하리라는 생각이다. 자 그렇다면 _성공하기_ 위한 단순한 디자인 기법은 무엇일까?
이번에 읽은 '단순한 디자인이 성공한다'(Simple and Usable)는 부제에서 잘 표현하듯 탁월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85가지 '단순함'이라는 법칙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프로젝트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과 같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 그림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의 눈도 즐겁게 하고 이해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게다가 시각적인 표현을 높이기 위해 컬러로 인쇄했으므로(덕분에 가격은 착하지 않다 T_T), 한편의 발표자료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편집 상태는 very good!
본문으로 들어가보면, 이 책은 단순함을 위한 비전을 제시한 다음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네 가지 전략(제거, 조직화, 숨기기, 이전)을 설명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단순히 '이러면 좋다'로 말만 번지르하게 끝나는 대신 이 책에서는 실제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은지를 단순함의 관점에서 풀어내므로 그래픽 디자인 전문가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단순함의 철학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입장에서 보면, 사용자의 요구 사항을 어떤 방식으로 필터링해서 쳐낼 부분은 쳐내고 튼튼히 다져야할 부분은 튼튼히 다지고 감출 부분은 감추고 옮길 부분은 옮기는지... 기존 요구사항 분석 관련 서적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비밀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화면 디자인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소프트웨어 형상이나 한 걸음 더 나가서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런 장점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테다.
이 책은 페이지별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좋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단순함은 사용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TV나 영화를 보면서 떠올리는 심상보다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심상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듯, '사용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주기 위해 단순함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그냥 고만고만한 제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만족스러운 제품이 나올 것 같다. 결론: 독서의 계절을 맞이해 디자이너, 제품 기획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모두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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