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2월 31, 2012

[독서광] 부분과 전체

(이 귀한 사진은 Silphion System: 최강보스 한자리에 모여라에서 가져왔습니다.)

'부분과 전체'를 오래 전에 구입해놓고서 책장만 차지하고 있었던 터라 중고 시장에 팔 심산으로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뭐 역시 어려운 이야기만 잔뜩 나오는 느낌이라 그냥 팔려고 하는 순간, 아주 우연히 '혁명과 대학생활 II'에 눈이 가게 되었고 다음과 같은 문장이 돋보기로 확대한 듯이 엄청나게 크게 망막에 맺혔다.

"노인들이 항상 그렇듯이 선생님(하이젠베르크) 또한 청년들의 활동을 반대하는 그러한 경험만을 인용하고 게십니다. 거기에 대하여 우리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역시 고독할 뿐입니다.

위 내용을 읽고 나면 '청년들의 활동'이 무척 궁금해지지 않는가? 후후후. 이미 눈치채신 독자분들도 계시겠지만... 여기서 이 청년들의 지도자는... 다름 아닌 '아돌프 히틀러'라는 점이 문제다. 계속해서 하이젠베르크는 전쟁의 위험한 상황을 피해 안전한 다른 나라(특히 미국)로 피난하라는 주변의 충고를 받고서도(미국으로 망명하려 했으면 0 순위로 가능했을테지만...) 전후 독일의 재건을 돕고 히틀러의 핵무장 속도를 늦추고자는 일념하에 끝까지 독일에 남는 용기를 발휘하는데, 이는 절대로 쉽지 않은 결정으로 보인다. 바로 이 부분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정독을 했는데, 감동 물결을 넘어서(번역 상태가 눈물이 앞을 가릴 수준이지만, 원문이 워낙 좋으니 그냥 읽을만하다) 201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해 보았다.

이 책은 처음에 등장하는 1920년대의 흔한 물리학자 모임 사진에도 나오듯 기라성 같은 인물 현대 물리학을 개척한 선구자들이 한치의 양보 없이 팽팽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생성하게 전달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보어, 시뢰딩거, 아인슈타인 급이 되지 않으면 조연에도 끼지 못한다. 실제로 아인슈타인까지 참여한 물리학 이론의 토론 장면에서 사고 실험에서 아인슈타인이 며칠 연속으로 혼쭐 나는 내용이 나오는데 무협지를 능가하는 이렇게 통쾌한 내용을 혼자 읽기가 아까울 지경이다. 다음은 아인슈타인의 친구인 파울 에렌페스트가 보다 못해 아인슈타인에게 권고한 내용이다.

"아인슈타인! 나는 자네에 대하여 부끄러운 생각이 드네. 자네는 마치 자네의 상대성 이론에 반대했던 사람들처럼 이 새로운 양자이론에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번 소개한 현대 수학의 아버지 힐베르트를 읽으면서도 느낀 바지만, 역시 (심지어 아인슈타인 급 천재를 포함해) 사람들은 사고의 근거가 되어왔고 과학 연구의 기반이 되어왔던 '표상'들을 포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이 쯤에서 우리는 힐베르트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하이젠베르크도 책 곳곳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기조차 힘든 양자역학을 하이젠베르크는 주변 학자들의 무지막지한 반론과 공격 속에서도 놀랄 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우직한 물리학자의 뱃심을 보여준다다. 본문 중에 물리학, 철학, 논리학, 기타 다른 자연 과학을 총망라해 토론이 유달리 많이 나오는데, 다들 정교한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하고 자기 생각을 차근차근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테다.

결론: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가 보고 듣고 느낀 점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을 총정리하고 있으므로 상당히 깊이가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온다는 장점을 제공한다. 물리학, 철학, 논리학, 정치(응?), 형이상학과 종교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하고 또 추천한다.

댓글 3개:

  1. 혹시 '기라성'을 다른 말로 바꿔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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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후후 책을 드뎌보셨군요 제가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ㅜ.ㅜ 이분덕에 그나마 세상이 다행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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