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경제/경영 블로그답게 오늘은 '경영' 관련 양서를 하나 추천하려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제목이 상당히 긴 "경제학자도 풀지 못한 조직의 비밀"이다. 부제인 "왜 우리에게 조직이 필요한가"가 이 책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에필로그에도 나오지만 솔직히 우리가 인생의 1/3을 보내는 곳이 조직인데, 사람들은 일단 '조직'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며 '정치'와 더불어 없어져야 하는 양대 악의 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책은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직'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바라본다. 조직의 존재 가치를 기업인 입장에서 합리화하려는 시도였다면 아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지는 않을테다(1/3 정도 읽다가 조용히 책을 쓰레기통에 넣거나, 아니면 강력한 서평(?)을 써서 독자 여러분들의 피같은 돈을 절약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조직이 만들어지는 이유로 시작해서,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과 문제점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부작용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전개한다.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한 부분은 1장 "애덤 스미스가 풀지 못한 문제: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며, 시장의 효율성을 넘어 조직이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하며 시장의 효율성에 대해 강조한 이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든 요인은 바로 '조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면 그야말로 온갖 역기능을 초래하는 조직이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조직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번성하고 있다(수 많은 회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비영리단체조차도 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이 책에서는 로널드 코스가 주장한 '거래 비용(transactional cost)'을 중심으로 조직의 중요성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간략히 정리하겠다. 물건 구입 비용 이외에 우리가 치뤄야할 다른 비용(가장 저렴한 상점을 찾기 위해 투자한 비용, 이 상점에서 우리가 원하는 물건이 재고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투자한 비용)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 이론에서 숨어 있으며, 개인 대 개인의 거래를 넘어서 기업 대 기업으로 사업을 전개하려면 이런 거래 비용이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 마찰과 불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즉, 회사는 되도록 복잡하고 위험하고 돈이 많이 드는 외부 거래를 줄이고 내부에서 처리하기를 원하며, 내부 거래 비용이 외부 거래 비용을 능가하는 지점에서 시장에 굴복한다는 내용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내부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하려 들 경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사업의 확장에 따른 인력 충원과 이런 인력을 관리하기 위한 관리자 충원과 이런 관리자를 지원하기 위한 스태프 충원이라는 연쇄 반응에서 비롯된다. 반면 외부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하려 들 경우 신뢰할 수 있는 협력 업체를 찾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결국 기업이 내부에서 처리하느냐 외부에서 처리하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은 조직 비용과 거래 비용에 달려있다.
우와, 뭔가 머리에 번개가 번쩍하지 않는가? 심지어 개인과 개인의 거래에서조차도 거래 비용이 무척 중요한 경우가 생긴다. 난생 처음 간 곳(예: 영국)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면, 거래 비용 관점에서 맥도널드가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나머지 다른 음식점에 용감하게 뛰어들었다면 행운을 빈다). 맥도널드와 같은 프렌차이즈 음식점은 일관된 음식 맛과 서비스 형태를 유지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최상은 아니더라도 균일한 경험을 제공하기에 서비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거래 비용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자, 그리고 나서 이 책은 열심히 조직의 여러 가지 특징을 이리저리 뒤집기 시작한다. 조직에서 평가, 정의, 실행이 왜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형편없이 수행되는 듯이(실제로는 최선이라는 이야기다) 보이는지, 매출을 높이기 위해 조직 형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혁신과 규율이 조직 내에서 얼마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지(조직은 혁신만 강조해도 망하고 규율만 강조해도 망한다), 돈만 먹는 듯이 보이는 고루한 관리자가 회사를 살리는 이유가 무엇인지,CEO와 평사원은 도대체 하는 일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탁월한 조직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독자는 '조직에 대해 불평 불만이 엄청나게 많고'(음, 아주 조금 찔리는 구석이 있다. T_T), '이상적인 비전과 열의로 가득찬'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 에필로그에 나오는 좋은 문구를 정리하면서 마무리하겠다.
조직의 경계는 조직 내에서 물건을 만드는 비용과 그것을 거래해서 얻는 이득의 맞교환을 통해 정의된다.
모든 변화에는 비용과 혜택이 동반된다. 공상적 비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비용에는 눈을 감은 것 같다. 그러나 조직 생활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결론: '조직'의 부정적인 측면에 사로잡힌 분들이라면 균형잡힌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물론 직접 조직을 한번 만들어보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넘어서 훨씬 더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되겠지만...).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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