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챌린저 호 폭파 사고가 기억나는가? 원인은? 챌린저호의 폭발 원인이 O링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근본을 추적하다 보면 표준 철도 규격이 나온다. 유타 주에 있는 고체 로켓 제작사인 모턴 티오콜 사에서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까지 마련된 운송 수단이 철로인데, 보조 추진 로켓이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칸에 담기기 위해 분리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최초의 디자인 선택이 연쇄적인 실패를 불러일으킨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자세로 디자인을 해야 하나? 페트로스키는 바로 이런 어려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여정에 나섰다. 오늘 소개할 한국어판 "종이 한 장의 차이"의 원서 제목은 "Success through Failure"이며 단순히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종이 한 장의 차이를 강조하기 보다는('종이 한 장의 차이'는 본문 중에 챌린저 호의 폭발을 일으킨 O 링을 다루는 절의 제목이다) 실패를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공학적인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과 실패라는 기묘한 단짝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촛불에 비친 그림자를 거쳐 OHP(이 물건이 뭔지 안다면 옛날 사람이다. ㅋㅋ)와 프로젝트로 파워포인트를 스크린에 투영하는 가장 최근에 이르기까지 실패가 진화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1장부터 사람 혼을 빼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톱 나오는 여행 가방, 펜티엄 프로세서(!), 약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실패 사례에 대해 다룬 다음에 본격적으로 거대한 구조물(마천루, 다리)에 얽힌 여러 가지 실패담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나사(?) 빠진 NASA 이야기와 911 무역 센터 건물 붕괴 사고 등에 대한 교훈을 제시한다.
이 책의 강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도 걸끄러워 하는 실패를 아주 쉽고 재미있게 다루는 데 있다. 기운을 북돋아 준다는 미명하에 읽을 때만 기분 좋은(읽고 나서 뒤돌아서면 아무런 기억도 안남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 대신 고양이 혓바닥처럼 까칠하게 개선점이나 실패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공학도의 자세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기 때문에 토목/건축/기계 공학도는 물론이고 (특히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컴퓨터 공학도가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번역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일례로 다음 문장을 한번 볼까?
하드웨어 버그는 가장 드문데, 왜냐하면 마이크로 프로세서 칩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이 칩에 대한 테스트를 단순화하기 위해 회로를 정기적으로 덧붙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게 추가해서 칩의 크기가 커지고, 공장에서 출고된 그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사용되지 않는 한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위의 내용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는가? 본문을 읽다 보면 원서를 참고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나도록 만든다. T_T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이 기다리는 본문 중 하이라이트를 구경해보자.
디자인된 물건은 모두 의도한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특정 형태로 계획적으로 조합하거나 조립한 것이다. 하지만 우연에 의한 디자인도 있다.
기술적인 진보는 보통은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결코 완벽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실패는 물건의 디자인에 관해 성공보다 항상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실패는 기대한 성능과 실제로 관찰한 성능 사이의 받아들일 수 없는 차이다.'
엔지니어들이 일반적으로 쉬운 작업을 자동화하고,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진다.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실패는 없다. 오로지 피드백만 있을 뿐'
성공적인 디자인이란 실패에 대한 최선의, 가장 완성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디자인은 실패에서 성공으로 가는 불굴의 인내력을 통해 진전된다.
엔지니어링이나 디자인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성공에 기초한 것과 실패에 기초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은 언제나 후자이다.
한 우주 공학자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커다란 프로젝트의 디자인에 숨은 함정을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가장 초기 단계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프로그램에 끝까지 남겨둬야 한다. 문서로 된 보고서나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로는 옮겨질 수 없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기술은 일반적으로 실수나 실패에서 크게 자유로워질 수도 있겠지만,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에서 완전무결함이란 있을 수 없다.
좋은 디자인은 언제나 실패를 고려 대상에 집어넣고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투한다.
자 독자 여러분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한 보너스로 다음 문장의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를 생각해보자.
똑같은 작은 연장을 수백만 개 혹은 그 이상으로 찍어내는 공장의 제조 부문과 달리, (_____)의 저주와 기쁨은 사실상 모든 프로젝트마다 고유하다. 고객의 필요에 맞추고 지엽적인 상황에 일치시키는 그 과정 말이다. 일부 고객들은 되도록이면 빨리 일을 마치도록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 업계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그 어떤 것이라도 디자인하고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과 돈만 있으면 말이다. 그 두 요소가 없으면 프로젝트는 쓰라린 과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잽싸게 손들고 '프로그램'이라 말하고 싶겠지만... 답은 건축이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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