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소개했던 [독서광] 슈퍼자본주의에 이어 로버트 라이시가 쓴 '부유한 노예'를 읽어보았다. 물론 두 책의 내용은 겹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다루는 각도가 조금 다르다. '슈퍼자본주의'는 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명암을 다뤘다면, '부유한 노예'는 신경제에 휩쓸려들어가는 개인과 사회의 명암을 다룬다.
요즘 KBS스페셜 - 대한민국은 행복한가...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치 한국만 행복을 놓고 물고 뜯는 엄청난 경쟁 사회라는 착각(?)이 들지 모르겠는데 '부유한 노예'를 읽다보면 엄청난 경쟁 사회의 원조는 확실히 미국이며 전 세계로 이런 사상이 전파되어 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엄청나게 불안한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공부가 되었든 일이 되었든)으로 밀어붙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가?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이거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뭔가 부족하지 않은가?
로버트 라이시는 그 어느 때보다 살기 좋은 요즘 세상에서 좀더 멋지게 살기 위해 반드시 치뤄야 할 댓가가 있다고 말한다. 필사적인 삶, 1년 365일 24시간을 떠나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엄청난 빈부격차, "강남은 왕족, 강북은 노비?"…부동산 계급표 등장과 같은 사회 분화 현상 심화는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얻기 위한 필연적인 비용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구매자이자 판매자이기 때문에 구매자로서 우리가 더 좋은 조건으로 거래처를 쉽게 바꿀 수 있다면, 판매자로서 우리는 당연히 구매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 라이시는 이른 '햇볕이 들 때 건초를 만드는 일처럼, 현재 보이는 모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부자들은 여유를 즐긴다고 했지만, 요즘 부자들조차도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더욱 굳건하게 다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해야 하는 사회로 변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신경제가 도래함에 따라 일자리가 불안해지는 이유, 교육에 목을 매다는 이유, 가정이 거의 하숙집 형태로 잠만 자는 숙소로 변하는 이유, 삶과 일의 균형이 일로 넘어간 이유, 사회 불균형이 더욱더 커지는 이유, 부자들이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는 이유, 끼리끼리 모이는 사회 분화 현상이 더욱 효과적으로 동작하는 이유, 가족이 줄어들고 남의 관심조차 돈으로 사야하는 이유를 유머를 섞으면서도 아주 적나라하게 분석한다(맘 약한 독자들은 독서 금지!). 또한 처음 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사회의 가치관과 제도 재정립하기 위해 엄청난 고통이 따랐듯이 신경제가 도래한 현 시점에서도 사회의 가치관과 제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가기 위한 변화를 주장한다.
로버트 라이시에 따르면 신경제에 접어들면서 우리 삶에 일어난 변화는 다음과 같다.
- 앞으로 수입이 어떻게 될지 과거보다 더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따라서 미래에는 수입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험이 있으므로, 지금 직업이 있을 때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다면, 과거 경제 시스템의 소득 사다리의 꼭대기에 위치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 사람들이 적당하다 생각하는 생활 수준에 상대적으로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가정의 수입을 지탱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배우자 근무시간도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잘 풀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경우에도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감수해야 하는 희생, 일이 주는 재미 이외에 추가 수입과 각종 부수입 등의 혜택은 과거 경제 때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 현재 잘 해나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상태를 늦춰서는 안 된다. 현재 멋있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그 수명은 며칠이나 몇 주가 고작이다.
- 빠른 길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고객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인맥을 개발하고, 자신의 분야의 새로운 기술에 항상 보조를 맞춰야 한다. 장기휴가나 안식년을 다녀오면 책상은 없다.
- 능력있게 일을 잘 처리한다고 해서 꾸준히 승진의 계단을 밟고 올라게게 해주는 대기업 소속이 더 이상 아니다. 특정 회사나 조직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 열심히 일하고 자신을 효과적으로 판매하고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벌어들인 수입을 자신처럼 성공적인 사람들과 함께 묶을 수도 있다.
위에서 정리한 내용을 읽다보면 정말 산 넘어 산이라는 생각이 들테다. "발바닥에 땀나게 살지 않으면 너 진짜로 큰일난다"가 이 책에 숨겨놓은 진짜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T_T 자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정리해볼까?
현대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탄압 정치를 일삼는 정권의 과도한 통제가 아니라, 구매자가 자신을 더 만족시키는 상품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시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장인 셈이다.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먼저 지면이나 지면 가까이 있는 물체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런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는 것이다. - 버트란드 러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6년 동안은 전체의 60%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일하지만, 20년이 지나면 단지 19%만 남는다는 통계 조사도 있다. 이 사실은 재학생들을 끌어오기 위해 높은 초봉과 후한 계약금을 제시하지만, 왜 만족을 못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가 얼마 안 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용의 개념이 없어진 시대에는 실직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더 많이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는 자신의 서비스에 대해 너무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생계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19세기 위대한 작가이자 철학가인 헨리 소로는 돈이 필요해서 측량 일을 했으며, T.S. 엘리엇은 은행에서 일했다. 나사니엘 호손은 '주홍글씨'에 나왔던 세일럼 세관에서 근무했다. 월리엄 포크너는 하루에 열 두시간 막노동을 할 때 남는 시간을 이용해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를 썼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특허사무소의 직원이었던 26세 때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논문을 썼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이것이다 - 대부분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공식 통계에 나오는 정식 근무시간뿐만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과거보다 우리 삶의 나머지 부분을 더 많이 침범하고 있다.
시장은 열려 있고, 여러 기기를 통해 언제라도 접촉이 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무언가 다른 것을 하기로 분명하게 결정한 시간 외에는 일을 하지 않는 데에 대한 변명거리는 아예 없다. 그러나 일을 하는 공간적 제약이 점점 없어지면서 뭔가 다른 것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
더 싸고 좋은 제품을 더 빨리 소비자 손에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항상 개발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번 마감 시한은 맞추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번 마감 시한은 더욱더 어렵다. 비용을 줄이고 지난 프로젝트 때보다(당시에도 어려웠는데)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또 찾아야 한다. 밤늦게 퇴근하고 다시 아침 일찍 나오는 생활이 반복되고, 마감 시한이 다가올수록 하루는 더 길어진다.
시장과 기술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만일 느린 길을 택했다면, 갈수록 더 뒤로 처지며 빠른 길로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휴가를 더 오래 가거나 작업 시간을 줄이고, 가족 휴가를 가거나 심지어 '안식년'을 보내겠다는 선택을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거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금만 밖으로 나가려는 선택은 영원히 나가겠다는 선택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득 사다리의 길이가 과거보다 훨씬 더 길어졌기 때문에, 한 단 상승은 과거보다 훨씬 더 큰 이익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적인 풍요로움' 대신 '의미 있는 인생 철학 계발'을 선택하는 데 따르는 경제적 손실 역시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쉽게 진입할 수 있으므로 이름을 알릴 필요성이 줄어든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상품이나 서비스가 뛰어나면 고객을 자동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당신의 작품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여러 소음과 구호 속에 파묻혀 그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더 많이 벌수록 더 열심히 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돈을 더 벌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함으로써 벌 수 있는 것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빈곤층 자녀들은 부모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더 쉽다고 느끼는 반면, 부유층 자녀들은 열심히 하지 않으면 후퇴할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경고가 들어간 부모의 '성공담'을 듣는다.
현재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경제와 사회라는 더 큰 틀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고 접근한다면, 이는 진실의 많은 부분을 놓치는 것이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를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벨트에 소형 디지털 타이머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다음 행동으로 넘어갈 시각에 그 타이머가 진동해 알려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시간 관리가 더 효율적이 됐으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전보다 신경과민 정도가 더 증가했음은 분명할 것이다.
맡고 있는 책임이 많을수록, 다시 말해 시끌벅적한 상황에 더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일과 관련된 시간이 요구하는 사항을 통제하기는 더 어려운 법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일에 소요되는 실제 시간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쏟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발적 단순함을 강조하는 접근 방법에서는 '필요로 하는 것'은 '원하는 것'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마치 '필수품'과 '사치품'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품 단계를 넘어서면 '필요로 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판단에 들어간다.
슬슬 이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을테다. ㅋㅋㅋ 이 글을 계기로 스스로가 이 험한 경쟁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좋겠다.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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