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3월 17, 2008

[영화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스포일러 주의)



이번 출장에서 10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기에, 개인용 VOD 시스템을 활용해서 영화나 실컷 즐기자는 생각에 탑승 직후 영화 안내 책자를 펼쳐 들었다. 근간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 몇 편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조엘과 에단 코엔 형제가 동명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1980년대 황량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세 명의 주인공(도망자, 추격자, 보안관)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며 그 놈의 인생이 뭔지 큰 화두를 던져준다. 영화에 붙어있는 'No country for old men'이라는 제목부터 무척 의미 심장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친구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냉혹한 살인마인 안톤 쉬거이다. 과거 웨스턴 정통 서부극의 주인공에 어울릴만한 특성(과묵, 집념, 동물적인 감각, 신의(?), 두뇌, 결단력)을 살인마에 그대로 투영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가 보이고자 하는 모순성을 증폭시킨다. 도망자로 나오는 조쉬 브롤린이 연기한 르롤린 모스 역시 땀 내음 풀풀 풍기는 전형적인 서부 사나이 연기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문제는 바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에드 톰 벨이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강조하는 경험, 혜안, 연륜, 노인에 대한 존경심... 이런거 다 접고 현실에서 늙은이가 젊은이를 상대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항상 한발 늦어 망연 자실한 모습을 현장감 있게 잡아낸다. 그래도 이 보안관 아저씨가 뭔가 한 건 건지리라는 기대를 영화 마지막까지 해보지만... 역시 현실은 물론이고 영화에서 조차 노인을 위해 날로 먹을 수 있는 만만한 세상을 찾긴 어려운 모양이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이번 출장의 진짜 목표인 개발자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아. 착각은 금물. 여러분 생각과는 반대로 B급 프로그래머가 피면접자가 아니라 면접자이며, 면접 대상은 나이 지긋한 백인 개발자 아저씨.



면접 결과? 당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급 프로그래머가 해시 알고리즘에서 승수(MULTIPLIER) 특성을 물어보았는데, 1번 문제부터 왕 좌절.



문제? B급 프로그래머도 늙어가니 앞으로 팔팔한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먹고 살지 정말 걱정이다(충고위안 하나: 지금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에 부푼 일부 젊은 친구들이여... 미안하지만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네...). 20대가 88만원 세대라는 고민거리에 밤잠을 못 이룬다면, 늙은이들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때문에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는 모양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다.



EOB

댓글 2개:

  1. '...개발자 면접을 준비하기...'
    여기 읽을 때 애독자답게 면접관일거라고 생각하다가
    '...착각은 금물...'
    요기 읽을 때 어라 피면접관인가? 생각을 수정하다가
    '...대상은 나이 지긋한 백인 개발자..' 여기서 착각했구나 했습니다. 젊은 동양인 개발자일거라고 추측해서요.

    이 또한 고정관념. 특히 우리사회는 나이차별이 너무 심합니다. 연장자에게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의무가 기회를 박탈하고 있으니..직업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나이로 더 대우받고 싶지도 않고 어려워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답글삭제
  2. 오랜만에 집중해서 잼있게 잘 본 영화였죠. 헌데 본 후 드는 생각이 뭐야..그래서.. 였죠.
    답답해서 사건 개요랑 등장 인물 따로 정리하고 의문점 나열하고 했었는데 ㅋㅋ
    보안관 은퇴 의미랑 제목의 의미가 이렇게 엮이는 군요.
    전 보는 내내 왜 제목이 'No Country For Old Man' 일까 궁금했거든요...ㅋ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