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3월 20, 2011

[독서광]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



컴퓨터 공학이나 전산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앨런 튜링이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테다. 그를 기리는 아주 권위 있는 튜링 상부터 시작해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기 위한 튜링 테스트, 알고리즘 시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가상의 튜링 기계, 그리고 메모리를 탑재한 현대적인 컴퓨터 아키텍처, 컴퓨터가 아니라 수학에 가까운 오토마타 이론에 이르기까지 튜링은 컴퓨터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실상 튜링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제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독일군의 암호를 푸느라 상당 수가 기밀로 분류되어 있었고 설상 가상으로 그 당시 금기시 되던 동성애자라는 딱지까지 붙는 바람에 진짜 업적을 재평가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재평가 자체도 대부분 컴퓨터에 국한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튜링을 뒤쫓아간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튜링의 개인적인 성격이 어떻게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지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정말 감동적이다(물론 기술적인 측면을 다루기도 하지만 소위 말하는 컴퓨터 전문가들조차도 튜링의 논문을 읽기란 절대로 쉽지 않기에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용상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역사에서 '만일'을 논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튜링이 조금만 자신을 더 내세우고(선거 때만 등장하는 폴리페서들의 능력(?)을 튜링이 1/100만 갖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동성애 등에 관대하고(튜링의 논문을 읽다보면 동성애에 대한 세상의 몰지각함에 대항해 감춰진 발톱이 팍팍 나오는 경우가 있다), 정부나 회사의 지원을 받을만한 운이 있었다면 아마도 차원 높은 컴퓨터가 좀더 일찍 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지금 튜링이 (한국은 당연히 제외하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을지도 모르겠다. 튜링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을 해킹하는 천재였고, 위대한 해커의 운명이 늘 그렇듯 세상은 튜링을 박해하고 말았다.



튜링은 논문을 쓰면서 남이 무엇을 했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자신이 실제로 궁금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데서 만족을 구할 뿐이었다. 그래서 젋었을 때부터 이미 남이 끝낸 작업을 처음부터(!) 그대로 다시 진행해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심지어 (아직까지도) 가장 영향력이 큰 논문인 '계산 가능수와 결정문제에 대한 응용'조차도 프린스턴의 수학자 알론조 처치가 발표한 '기초수론의 해결불능문제'에 영광을 빼앗기게 된다). 게다가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한 태도로 논문을 쓰는데다 회의나 강연 등에서 장점이 아니라 단점을 말함으로써 안 그래도 좁은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만다. 하지만 이런 반사회적인 특성은 튜링이 쓴 논문의 서술 방식에 영향을 미쳐, 미적이고 철학적이면서도 독특한(그리고 함부로 반박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복잡한 문제를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수학, 논리학, 철학, 컴퓨터, 그리고 백설공주를 사랑한 튜링이라는 인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EOB

댓글 1개:

  1. 국내에도 앨런 튜링에 대한 책이 있는 줄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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