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2월 24, 2013

[영화광] 신세계(큰 스포일러 없음)

작년 2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고나서 한국에서도 때깔나는 느와르 장르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목격했는데, 1년이 지나면서 등장한 '신세계'를 보니 이제 한국에서도 확실하게 느와르의 '신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에 잡입한 경찰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무간도'와 비교하는데, '신세계'는 남의 영화를 기웃거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꿋꿋하게 가기 때문에 복제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 덜어도 될 것 같다. 최민식과 황정민 사이에 끼여 묻혀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던(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연기까지 해야했으니 더욱 힘들었을법한) 이정재가 선방하고 주연 같은 조연으로 나오는 박성웅이 세 사람의 남은 빈틈까지 꽉꽉 채움으로써 풍성하면서도 입체적인 인물들의 향연이 펼쳐졌다고 보면 되겠다.

극 중에서 정청 역을 맡은 황정민은 웃긴 소리 해가면서도 행동으로 돌입할 때는 전혀 빈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음 장면을 가슴 졸이면서 기다려야 하는 적당한 스트레스(응?)를 관객에게 끊임없이 퍼부으며 2시간 넘게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특히 다른 계파 조직원들과 한 판 뜨는 엘리베이터 씬은 두고 두고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강과장 역을 맡은 최민식은 (뒤에 가서는 조금 누그러들긴 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인정도 보이지 않는 악랄한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며 사실상 전체 프로젝트(!)의 설계자 노릇을 충실히 해냈다. 마지막으로 이자성 역을 맡은 이정재는 선과 악이 맞부딪히는 갈등의 중심에서 이 영화가 무너지지 않도록 중심을 아주 잘 잡아내었다. 이정재의 주도하에 빠르게 전개되는 후반부는 대부 2편에서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의 속시원한 마무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할 말은 많은데, 스포일러의 우려 때문에 이쯤 해두자. 그나저나 이 영화의 프리퀄이 나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다. 정청-강과장-이자성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는 대부 2편에 나오는 '콜레오네' 가의 크로니클 만큼이나 흥미로울 테니까.

결론: (특히 '선과 악'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의리'에 목마른 남자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한다. 숨막히는 갈등 상황을 확실하게 느끼려면 좁은 PC 화면 대신 넓은 영화관 화면을 택하기 바란다.

EOB

토요일, 2월 23, 2013

[독서광] 마우스드라이버 크로니클

오늘은 경제/경영 3번째 타자로 '마우스드라이버 크로니클'을 소개하겠다. 안철수 교수님이 추천했다고 해서 유명세를 탄 책인데, 표지에 나오는 진짜 '청년'뿐만 아니라 마음이 '청년'인 분들께도 해당하는 책인 듯이 보인다. 솔직히 처음에 책 제목만 듣고서는 '마우스드라이버'라는 물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책 표지에 나온 그림을 보고 이 책은 소프트웨어로서 마우스 드라이버가 아니라 진짜 하드웨어로서 골프 드라이브 같은 마우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드웨어를 다룬다는 사실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인데(본문에서도 신경제 하에서 사람들이 하드웨어를 몰라준다고 투덜거리는 내용이 나온다), 임베디드 쪽 - 특히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소매 판매용 제품을 개발해본 경험이 있는 - 개발자들이라면 완전 재미있을테고, 일반적인 기업 고객 대상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SI 성 작업을 하신 분들이라면 조금은 분위기를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정장 차림으로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들고 멋지게 아침을 시작하고 저녁에는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는 안정적이고 월급 많이 받는 대기업의 낭만적 환상 만큼이나 위험한 '내가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제품이 때 돈을 벌어다 줄거야'라는 스타트업의 낭만적인 장미빛 환상을 품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 책 저자들이 좌충우돌 하면서 몸으로 배운 교훈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책은 셀프 힐링하고 셀프 계발하는 여느 책과는 완전히 다른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주인공들은 마우스드라이버를 제작하고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직접 스타트업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얻지 못하는 여러 가지 경험을 쌓지만, 결국 엄청난 부와 성공, IPO, 유명세, ..., 흔히 요즘 사람들이 성공이라 판단하는 기준(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등. 하긴 뭐 마우스를 팔아서 구글이 되기는 많이 곤란하지? T_T)을 달성하지 못하고 좌초해버린다. 이 책은 '완전한 원'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끝나는데, 특히 마지막 장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자신들이 얻은 쓰디쓴 경험을 자신들의 자랑질이 아니라 비장미가 느껴지는, 정말 간만에 제대로 보는 사후 분석 보고서 느낌이 났도록 정리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자들의 고통이나 연민을 이끌어내려는 자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중간 중간 폭소가 터져나올만큼 유머 감각을 유지하며 자신들이 벌인 제품과 사업을 좋아한다는 애정을 잘 표현하기에 더욱 사람을 찡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2001년 이후 플래티넘 사의 사업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나도 궁금해 MouseDriver Chronicles 홈 페이지에 들어가봤는데, 2003년 6월 16일이 뉴스레터 마지막 발행일이었고 더 이상 새로운 제품도 새로운 소식지도 없었다. 또한 두 사람의 최근 동향이 궁금해 creepyblues 블로그의 도움을 받아 존 러스크와 카일 해리슨의 링크드인 계정을 알아내어 확인해보니 존 러스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른 작은 회사를 떠돌다 최근에는 안경 온라인 쇼핑물을 개업했고, 카일 해리슨은 구글에서 제품 관리자를 하고 있었다.

기억 남는 문구 하나: 가장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카일 해리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업가들은 여러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른 경험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기업가 정신의 골자다. 어느 정도의 자금을 받은, 얼마나 인맥이 좋든, 또는 얼마나 운이 좋든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은 모험이다.

사업에 본질적인 따라나오는 모험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일반화해 당신도 일단 뛰어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옆에서 속삭이는 사슴(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바로 그 사슴!)들의 화려한 글과 말에 둘러 쌓여있다가 너무나도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아주 좋았다. 뭔가 새로운 일에 뛰어들려는 사람들에게 피랴나와 악어가 가득한 척박한 환경에서 가상적인 스타트업을 머리 속으로 굴려보도록 시물레이터를 제공한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보너스: Why developers should start choosing conscience over profit(주의: 영어)도 읽어보자. 요즘 세상이 황금만능주의라고 하지만 세상을 바꿀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돈에만 최적화된 행태를 보이는 대신 나도 필요하고 남도 필요한 뭔가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요즘과 같이 험한 세상에서 그냥 안 튀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 돈을 많이 버는 방법도 나름 유효하긴 하다. T_T

EOB

토요일, 2월 16, 2013

[독서광] Running Lean: 린 스타트업

오늘은 경제/경영 특집 2회로 2012년 졸트 상 Best Book에 최종 선정된 Running Lean: 린 스타트업(이후 'Running Lean')을 소개드리겠다. 지난번 설명드린 린 스타트업과 제목이 동일하므로 조금 혼란이 올 수도 있는데, 이번에 소개드리는 책의 원서 제목은 'Running Lean'이므로 착오 없으시기 바란다. 두 책은 린 개념을 도입해 스타트업이 시간/돈 낭비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방법을 나름 과학적으로 기술하려 노력한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번 소개드린 '린 스타트업'이 이론서라면, 오늘 소개드리는 'Running Lean'은 워크북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상승 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Running Lean'은 원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전자책으로 출판한 다음 다시 일반책으로 출판했기 때문에 호흡이 상당히 짧다. 따라서, 속도감 있게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핵심 행동에 대해 조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클라우드파이어라는 미디어 공유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부터 출시까지 전과정을 단계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서랑도 비교적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책 내용은 크게 로드맵 작성, 플랜 A를 문서화하기, 계획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을 식별하기, 계획을 체계적으로 테스트하기라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계획에서 위험한 부분을 식별하고 테스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예: 우선 순위 결정, 실험 준비, 고객 인터뷰 준비, 문제 인터뷰, 솔루션 인터뷰, MVP 구축, 측정 준비, MVP 인터뷰, 고객 생애 주기 검증, 과잉 기능, 제품/시장 적합성 평가)을 단계별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인터뷰와 관련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인터뷰 결과를 반영해 린 캔버스를 채워(그리고 수정해)나가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린캔버스 개념을 반복적이고 점진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좋은 지침을 제공한다는 생각이다.

린캔버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독자분들을 위해 본문에 나오는 예를 보여드리겠다.

위와 같은 린캔버스는 이면지에 끄적거릴 수도 있겠지만(대부분 이렇게 종이에 직접 연필로 쓰는 방식이 사고를 촉진하리라 생각한다) 온라인(이 사이트도 애시 모리아가 만든 Spark59에서 서비스하는 제품(!)이다)으로도 작성할 수 있다.

본문 중에 여러 가지 좋은 도표와 그림이 나오는 데, 그 중에서 다음에 소개하는 '속도, 학습, 초점의 극대화(최적화된 학습)'이라는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속도와 학습만 강조하면 '섣부른 최적화', 속도와 초점만 강조하면 '제자리 걸음 또는 자기 꼬리 물기', 학습과 초점만 강조하면 '자원 소진'이라는 함정에 빠지므로 결국 속도, 학습, 초점을 극대화해 최적의 학습 고리를 찾아내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절묘한 균형을 잡으려면 의식적이면서 적극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므로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학습을 거쳐 아이디어를 얻고, 아이디어를 개발해 실제 제품을 만들고, 제품을 측정해 데이터를 얻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시 학습하는 선순환을 어떻게 기민하게 맞물려 돌아가게 만드느냐가 사실상 스타트업의 성공 유무를 가르는 핵심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번역 상태를 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다. 바로 역자주인데.... 많이 난감하다. 예를 들어, 부트스트래핑을 설명할 때 "한국어로는 자율 향상이라고도 하며,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든 한다"는 뜻이다. 또 사물의 초기 단계에서 단순 요소로부터 복잡한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가리킬 때도 있다."라고 적어 놓았고, 브랜칭을 설명할 때 "원래 브랜칭의 의미는 2개의 블록 사이 또는 2개의 노드 사이의 연결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브랜칭이란 소스 콘트롤 트리 안에서의 상호 연결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역자주를 읽으니까 더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다. T_T 역시 기술 단어는 주변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설명이 쉬워진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가 여기서도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본문 자체는 읽을만하니까 너무 걱정 마시라.

마지막으로 애시 모리아가 만든 슬라이드인 'Running Lean' 발표자료(영어)를 올려드리니, 혹시 책을 구입하기 전에 미리 맛보기를 원하시는 독자분들께서는 간단하게 읽어보시기 바란다.

보너스 한 가지: '실리콘 벨리에 있는 성공적인 스타트업 이면에 숨겨진 공식'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은 'Startup DNA'라는 발표자료를 추천받았는데 나름 내용이 좋았기에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공유해드리겠다.

EOB

토요일, 2월 09, 2013

[독서광] 디맨드

2월에는 경제/경영 블로그답게 관련 서적들을 특집으로 올려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1번 타자로 '디맨드: 세상의 수요를 미리 알아챈 사람들'을 소개한다. 책 앞 뒤표지에는 요란스럽게 '피터 드러커, 잭 웰치와 함께 금세기 가장 위대한 경영 구루'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의 역작'이라고 나와 있는데, 솔직히 이 책 읽기 전까지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고백하겠다(여기가 도대체 경제/경영 블로그 맞아? 응?).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명성이 조금 과장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식 전개 방식을 따른다. 풍부한 자료, 흥미로운 소재,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 다양한 각도에서 사건 조망하기... (갑자기 짐 콜린스가 생각난다. ㅋㅋ) 여튼 손발이 조금 오그라들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취향에 딱 맞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실상 이 책 자체가 독자의 '디멘드'를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무척 단순하다. 하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이런 단순함을 풀어쓰려다보니 다소 지루하고 늘어지는 느낌을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받았다. 100분이면 충분할 영화를 3시간으로 만들었다고 보면 틀림없겠다(물론 독자에 따라 이런 전개방식은 호불호로 나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서문에도 정리되어 있는 이 책의 핵심을 소개해볼까?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이 따르는 프로세스는 다음의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 매력적인 제품을 만든다(Magnetic).
2. 고객의 '고충지도'를 바로 잡는다(Hassle Map).
3. 완벽한 배경스토리를 창조한다(Backstory).
4. 결정적인 방아쇠를 찾는다(Trigger).
5. 가파른 '궤도'를 구축한다(Trajectory).
6. 평균화하지 않는다(Variation).

축하한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절반 정도 읽은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성공이라는 정상에 도달한 수요 창조자들이 온갖 방해를 극복해 여섯 단계를 어떻게 밟고 올라갔는지를 다루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넷플릭스, 집카, 웨그먼스, 블룸버그, 킨들, 네스프레소, 티치포아메리카, 시애틀 오페라단, 유로스타, 픽사, 클라이너 퍼킨스, 프리우스 등 이름만 들어도 흥미로운 회사와 제품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이나 제품의 성공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성공한 기업이나 제품마다 성공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며(성공한 기업이 100개라면 성공한 이유도 100가지다. 엉엉)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이 한번 써먹어 대박난 방법이 다음에 또 다시 유효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저자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영리하게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긴 하지만(복권 100장 사놓고 1등을 기대하는 불확실성에 배팅하지 마라는 말을 하는데... 세상에 정말 확실한게 뭐가 있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은총알이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최근 접했던 예를 하나 들어보자. 꿈의 항공기라고 불리는 보잉 787에 이런 저런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바람에 드림라이너라는 명성에 먹칠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베터리 발화 사건만 하더라도 배터리 제조업체 쪽의 문제라고 알려졌다가 세부 조사 끝에 배터리를 제어하는 회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다 아시다시피, 보잉 787은 고객의 디맨드(응?)를 잘 읽어 2012년까지 1000대 넘게 판매가 이뤄진 보잉 777의 후속 작품이다. 777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 여객기 개발과 다른 경로를 걸었다. 처음부터 비행기를 운영할 항공사와 밀접하게 공동 개발을 진행했고, 쌍발 엔진/광섬유등 가벼운 재료 사용으로 연료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정비가 용이하도록 최첨단 기법을 동원했다. 그 결과 장거리 여객기 시장을 효과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멋진 스토리!). 하지만 보잉 777을 벤치마크해 더욱 적극적으로 고객의 디맨드를 수용한 보잉 787은 여러 가지 문제를 노출하면서 인도 시기도 지연되고 인도된 여객기에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급기야는 777부터 공동 개발 파트너로 참여했던 ANA의 787기 17대가 조사를 위해 지상에 묶이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망했다 T_T). 물론 '디맨드'에 나오는 내용처럼 보잉이 성공적으로 난관을 극복해 고객의 디멘드를 충족한 결과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380과 350 시리즈의 개발/판매 과정에서 엄청난 삽질을 해야한다는 중요한 가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세상은 몇 가지 단순한 법칙을 따르는 대신 상호 유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며 복잡하게 돌아간다. 따라서, 성공하는 기업의 비밀은 쉽게 손에 쥐기 어렵다.

결론: 마케팅 담당자들이나 기획자들이 참고삼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조언을 따르더라도 성공할 확률은 제각각이라는 사실은 꼭 기억하자.

EOB

금요일, 2월 08, 2013

[B급 관리자] 기가옴 창립자인 옴 말릭의 발표 자료

웹 2.0을 표방하며 업계의 새로운 뉴스를 실어나르는 기가옴을 창립한 옴 말릭의 "Lessons Learned Evolution of a Founder"라는 발표 자료를 읽었는데, 좋은 부분이 눈에 띄여 자체적으로 정리할 겸(요즘 머리가 나빠서... 뭐든 잘 잊어먹는다. T_T) 독자 여러분들께도 소개하겠다. 지난번 인라인으로 올려드린 Papperman의 호응이 좋아 오늘도 발표 자료를 인라인 코드 형태로 삽입해봤다.

본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그림으로 캡쳐해서 올려놓은 "Openness is not just a word, it is a state of mind"였다. "'열린 마음'은 단순히 단어라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라는 요약은 소위 말해 잘 나가고 있는 회사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정확하게 집어낸 문구가 아닐까? 솔직히 여기저기서 남발하는 "우리 회사는 개방적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지불식간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리더들이 '행동'은 뒷전에 두고 '말'만 남발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막대한 부와 명예는 제쳐두더라도, 평평한 조직에서 '열린 마음'을 바탕으로 응집력 있는 팀을 만들어 역경을 극복해나가며 함께 웃고 일하고 배울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라는 생각이다. 영어도 어렵지 않고 분량도 짧으니 리더십에 대해 통찰력을 얻고 싶은 분들께서는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다.

특별 보너스: 자세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블로그 글인 Evolution of a Founder: Lessons I have learned를 참고하면 좋겠다.

EOB

토요일, 2월 02, 2013

[영화광] Paperman

올 겨울 국내 개봉해 8비트 게임 악동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주먹왕 랄프의 보너스 단편 애니메이션인 Paperman이 유튜브에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애독자 여러분을 위해 평상시 하지 않던 인라인 코드까지 삽입해보았다.

주먹왕 랄프도 무척 재미있었지만, 흥미로운 본편에 앞서 잔잔한 여운을 제공한 페이퍼맨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에 다시 한 번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절묘하게 공개되었기에 타이밍 한번 제대로라는 생각이다. 자료를 뒤적거리다 보니 주먹왕 랄프와 페이퍼맨 둘 다 각각 장편과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85회 아카데미 상 후보작으로 올랐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John Kahrs의 아카데미 후보작 감독 설문지에 따르면 존 카스는 8살부터 영화를 만들고자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픽사에서 제작에 참여한 여러 멋진 장편 애니메이션에 이어 디즈니로 와서 단편에서 감독겸 목소리 배우로 좋은 출발을 보인 존 카스의 향후 작품을 기대해본다.

EOB

[독서광] 움직이는 사물의 비밀: DIY를 위한 기계와 메커니즘의 기초

이 책을 읽으며 과거 다녔던 회사 중에서 안광학 진단 장비를 만들던 H사(요즘 코스닥에서 잘나가고 있는 회사인데... 아마도 아는 분은 다들 아시리라...)에서 여러 가지 삶에 유용한 지식을 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고 말았다. 솔직히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기계/기구/전자 쪽 분야의 공학자들과 제품 개발부터 출시까지 적극적으로 협업을 하는 상황은 경력이 풍부한 임베디드 시스템 개발자라도 경험하기가 그다지 수월치 않다. 전자 쪽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기계나 기구 쪽까지 망라하려면 운이 있어야 한다. 덕분에 기초적인 전자제품 분해/조립, 록타이트와 WD-40의 활용법, 나사산이 나갔을 경우 기초적인 대처 방안, 금형에 대한 기본 원리, 톱니에 대한 기본 원리, 모터 유형, ... 등등 여러 가지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움직이는 사물의 비밀'을 읽으니 어렵사리 몸으로 배운 내용을 너무나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기에 이런 책이 왜 진작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의구심이 증폭되었다. 뒤 늦게라도 출간되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

한국어판 제목과 원서 제목("Making Things Move DIY Mechanisms for Inventors, Hobbyists, and Artists")을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기존에 많이 나왔던 전자/개발 보드 중심의 하드웨어 설명서와는 달리 기계/기구 쪽에서 전자 쪽을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해 물체를 움직이고 동작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목차를 보면 지레, 도르래, 바퀴/축, 경사판/쐐기, 나사, 기어라는 여섯 가지 단순 기계를 소개하는 도입부터 시작해, 재료의 종류, 부품 고정과 결합을 위한 방법, 물체를 움직이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인 힘/마찰력/토크에 이은 기계/전기적 힘과 에너지, 각종 모터 제어, 기구물의 내장인 베어링/커플링/기어/나사/스프링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응용 방안과 실제 프로젝트 사례가 이어진다. 초보자 눈높이에서 물리/기계적인 특성을 알기 쉽게 풀어 쓰고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아직 감이 잘 안 오시는 독자분을 위해 몇 가지 추가 정보를 드리겠다. 이 책에서 다루는 움직이는 사물(?)의 실제 형상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한빛미디어 블로그과 함께 유튜브의 Making Things Move 플레이리스트를 살펴보기 바란다. 또한 공식 블로그의 Resource 섹션을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특히 6장에 대해 단계별 조립 방법을 동영상 자료로 제공하므로 꼼꼼하게 감상하기 바란다).

하지만 본문을 읽다보니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는데, i) 손으로 그린 삽화가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며, ii) 흑백으로 된 사진 때문에 색상 구분이 어려우며(전선 색깔이 뒤바뀌면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iii) DIY가 활발한 미국(또는 유럽) 환경에 맞춰져 있기에 국내에서 이 모든 부품을 제대로 수급해 가공까지 마치기가 초보자 입장에서 용이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런 불편한 부분이 여러분의 하드웨어 해킹을 방해하지는 않으므로 이 정도는 눈감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애호가들이라면 책 말미에도 나오지만 온라인으로 정리된 『움직이는 사물의 비밀』(Making Things Move): 국내외 부품 구입처 및 유용한 DIY 자료 웹사이트 정리 페이지도 꼭 방문해보기 바란다. 디바이스마트, 마우저를 비롯한 각종 국내/외 DIY 사이트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상당한 뽐뿌질을 받을 것이다(ㅋㅋ).

결론: 뭔가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애호가 여러분들께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드린다.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