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2월 24, 2013

[영화광] 신세계(큰 스포일러 없음)

작년 2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고나서 한국에서도 때깔나는 느와르 장르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목격했는데, 1년이 지나면서 등장한 '신세계'를 보니 이제 한국에서도 확실하게 느와르의 '신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에 잡입한 경찰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무간도'와 비교하는데, '신세계'는 남의 영화를 기웃거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꿋꿋하게 가기 때문에 복제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 덜어도 될 것 같다. 최민식과 황정민 사이에 끼여 묻혀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던(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연기까지 해야했으니 더욱 힘들었을법한) 이정재가 선방하고 주연 같은 조연으로 나오는 박성웅이 세 사람의 남은 빈틈까지 꽉꽉 채움으로써 풍성하면서도 입체적인 인물들의 향연이 펼쳐졌다고 보면 되겠다.

극 중에서 정청 역을 맡은 황정민은 웃긴 소리 해가면서도 행동으로 돌입할 때는 전혀 빈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음 장면을 가슴 졸이면서 기다려야 하는 적당한 스트레스(응?)를 관객에게 끊임없이 퍼부으며 2시간 넘게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특히 다른 계파 조직원들과 한 판 뜨는 엘리베이터 씬은 두고 두고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강과장 역을 맡은 최민식은 (뒤에 가서는 조금 누그러들긴 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인정도 보이지 않는 악랄한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며 사실상 전체 프로젝트(!)의 설계자 노릇을 충실히 해냈다. 마지막으로 이자성 역을 맡은 이정재는 선과 악이 맞부딪히는 갈등의 중심에서 이 영화가 무너지지 않도록 중심을 아주 잘 잡아내었다. 이정재의 주도하에 빠르게 전개되는 후반부는 대부 2편에서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의 속시원한 마무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할 말은 많은데, 스포일러의 우려 때문에 이쯤 해두자. 그나저나 이 영화의 프리퀄이 나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다. 정청-강과장-이자성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는 대부 2편에 나오는 '콜레오네' 가의 크로니클 만큼이나 흥미로울 테니까.

결론: (특히 '선과 악'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의리'에 목마른 남자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한다. 숨막히는 갈등 상황을 확실하게 느끼려면 좁은 PC 화면 대신 넓은 영화관 화면을 택하기 바란다.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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