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는 경제/경영 블로그답게 관련 서적들을 특집으로 올려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1번 타자로 '디맨드: 세상의 수요를 미리 알아챈 사람들'을 소개한다. 책 앞 뒤표지에는 요란스럽게 '피터 드러커, 잭 웰치와 함께 금세기 가장 위대한 경영 구루'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의 역작'이라고 나와 있는데, 솔직히 이 책 읽기 전까지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고백하겠다(여기가 도대체 경제/경영 블로그 맞아? 응?).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명성이 조금 과장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식 전개 방식을 따른다. 풍부한 자료, 흥미로운 소재,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 다양한 각도에서 사건 조망하기... (갑자기 짐 콜린스가 생각난다. ㅋㅋ) 여튼 손발이 조금 오그라들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취향에 딱 맞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실상 이 책 자체가 독자의 '디멘드'를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해도 그리 틀리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무척 단순하다. 하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이런 단순함을 풀어쓰려다보니 다소 지루하고 늘어지는 느낌을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받았다. 100분이면 충분할 영화를 3시간으로 만들었다고 보면 틀림없겠다(물론 독자에 따라 이런 전개방식은 호불호로 나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서문에도 정리되어 있는 이 책의 핵심을 소개해볼까?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이 따르는 프로세스는 다음의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 매력적인 제품을 만든다(Magnetic).
2. 고객의 '고충지도'를 바로 잡는다(Hassle Map).
3. 완벽한 배경스토리를 창조한다(Backstory).
4. 결정적인 방아쇠를 찾는다(Trigger).
5. 가파른 '궤도'를 구축한다(Trajectory).
6. 평균화하지 않는다(Variation).
축하한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절반 정도 읽은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성공이라는 정상에 도달한 수요 창조자들이 온갖 방해를 극복해 여섯 단계를 어떻게 밟고 올라갔는지를 다루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넷플릭스, 집카, 웨그먼스, 블룸버그, 킨들, 네스프레소, 티치포아메리카, 시애틀 오페라단, 유로스타, 픽사, 클라이너 퍼킨스, 프리우스 등 이름만 들어도 흥미로운 회사와 제품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이나 제품의 성공이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성공한 기업이나 제품마다 성공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며(성공한 기업이 100개라면 성공한 이유도 100가지다. 엉엉)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이 한번 써먹어 대박난 방법이 다음에 또 다시 유효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저자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영리하게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긴 하지만(복권 100장 사놓고 1등을 기대하는 불확실성에 배팅하지 마라는 말을 하는데... 세상에 정말 확실한게 뭐가 있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은총알이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최근 접했던 예를 하나 들어보자. 꿈의 항공기라고 불리는 보잉 787에 이런 저런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바람에 드림라이너라는 명성에 먹칠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베터리 발화 사건만 하더라도 배터리 제조업체 쪽의 문제라고 알려졌다가 세부 조사 끝에 배터리를 제어하는 회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다 아시다시피, 보잉 787은 고객의 디맨드(응?)를 잘 읽어 2012년까지 1000대 넘게 판매가 이뤄진 보잉 777의 후속 작품이다. 777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 여객기 개발과 다른 경로를 걸었다. 처음부터 비행기를 운영할 항공사와 밀접하게 공동 개발을 진행했고, 쌍발 엔진/광섬유등 가벼운 재료 사용으로 연료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정비가 용이하도록 최첨단 기법을 동원했다. 그 결과 장거리 여객기 시장을 효과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멋진 스토리!). 하지만 보잉 777을 벤치마크해 더욱 적극적으로 고객의 디맨드를 수용한 보잉 787은 여러 가지 문제를 노출하면서 인도 시기도 지연되고 인도된 여객기에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급기야는 777부터 공동 개발 파트너로 참여했던 ANA의 787기 17대가 조사를 위해 지상에 묶이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망했다 T_T). 물론 '디맨드'에 나오는 내용처럼 보잉이 성공적으로 난관을 극복해 고객의 디멘드를 충족한 결과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380과 350 시리즈의 개발/판매 과정에서 엄청난 삽질을 해야한다는 중요한 가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세상은 몇 가지 단순한 법칙을 따르는 대신 상호 유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며 복잡하게 돌아간다. 따라서, 성공하는 기업의 비밀은 쉽게 손에 쥐기 어렵다.
결론: 마케팅 담당자들이나 기획자들이 참고삼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조언을 따르더라도 성공할 확률은 제각각이라는 사실은 꼭 기억하자.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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