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속 경제/경영서만 읽다보니 조금 지루해져서, 간만에 심리학 책도 읽어보기로 했다. 마침 온라인 서점에 '블라인드 스팟'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단 책이 나와서 충동적으로 구입했다. '내가 못보는 내 사고의 10가지 맹점'이라는 부제가 의미하듯 '블라인드 스팟'은 인간 심리의 사각지대를 설명하는 심리학 책이다. 제목을 너무나 잘 지어서 엄청난 비밀이 이 책에 숨어있다고 생각하고 구입하면 당신은 낚인 셈이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읽어야 한다.
책에서 다시 읽을만한 부분을 접어 놓았는데, 서평을 쓰기 위해 펼쳐보니 흥미로운 실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실제 이론적이거나 설명하는 부분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재미있는 예제가 많이 나오지만 이론적인 틀은 취약하다는 생각이다. 그 만큼 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가 어렵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겠다.
책 중간 중간에 깨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몇 개를 소개해볼까?
한번은 교사가 사물함을 조사하다가 한 남학생이 다른 학생들의 학용품을 잔뜩 훔쳐다 모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교수는 학생의 부모를 불렀는데 학교에온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한 짓을 보고 기가 막혀 했다.
"우리 애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집에 가면 제가 회사에서 가져 온 종이와 연필, 사무용품이 널려 있는데 말이에요.
영문학 교수인 토리 해링-스미스는 강당에 모인 많은 학생에게 시의 의미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시가 얼마나 재미있으며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열강을 하며 한창 몰입해있었다.
"그런데 앞줄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기에 그냥 무시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치켜든 손을 좀처럼 내리지 않았기에 강의를 잠시 멈추고 그 학생에게 질문을 받았죠. 그랬더니 내가 강단에 선 후 아무도 물어본 적이 없는 질문을 하는 거에요. 그 학생은 '교수님, 만약 교수님이 영문학 교수가 아니었다면 이 시가 재미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라고 물었어요."
도벽이 있는 아들을 둔 도벽이 있는 아버지나, 영문학 교수나 남녀노소 구분없이 블라인드 스팟에 걸려든 사실을 보면 우리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한다는 사실이 크게 놀랍지도 않다. 뭐 어쩌겠어? 그게 삶인데...
번역 상태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해야겠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이 책을 구입하신 분들은 60페이지 펼쳐서 hoax 바이러스를 설명한 부분을 읽어보시라.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는가? 역자도 블라인드 스팟에 빠져서 번역하는 도중에 위기에 빠졌는데, 주변 컴퓨터 전문가에게 손을 내밀 생각을 못한게 아닐까? 하긴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니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테다. 이래서 '블라인드 스팟'을 피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EOB
옛날 유닉스 fortune 메시지 하나:
답글삭제"I don't like spinach, and I'm glad I don't, because if I liked it I'd
eat it, and I just hate it."
-- Clarence D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