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마다 세 차례식 난리 법썩을 떨어야 하는 시기가 있다. 1번은 연말정산 기간으로 액티브 엑스 컨트롤에 파묻혀 며칠을 허우적 거려야 한다. 물론 요즘은 국세청 연말 간소화 서비스가 예상 외로 많은 부분을 처리하고 있어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긴 하지만 말이다. 2번은 종합소득 신고기간으로 국세청에서 만든 아주 신비로운 소프트웨어랑 씨름을 벌여야 한다. 물론 작년부터 집에서 가능할 수준까지 퀀텀 점프를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올 5월을 기대하시라). 3번은? 오늘 이야기할 공인인증서 갱신이다.
빌어먹을 공인인증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악의 화신이지만(보안 강화 어쩌구 하는 입에 발린 말은 인터넷에 오가는 바이트가 아까우므로 언급조차 하지 말자. 그렇게 완전무결한 보안 환경을 제공한다면 역전 앞 거지도 아니고 OTP는 왜 도입했는데?) 유효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함으로써 거의 폭탄에 가까운 사용자 경험을 만끽하도록 만들어준다.
자 거래은행이 1개이며 스마트폰 이런거 사용하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이 없다. 그냥 은행의 공인 인증 센터로 들어가서 갱신하면 되니까. 하지만 거래 은행이 4개고 스마트폰 앱을 사용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고난의 행진이 이어진다. 우선 첫 은행으로 들어가서 액티브 액스 크리 맞아가며 인증서를 하나 갱신한 다음에 스마트폰으로 인증서를 내린다. 계속해서 다음 은행으로 들어가서 타행 인증서 등록이라는 요상한 절차를 거치는데 은행에 따라 OTP 일련번호를 요구하는(K모 은행이라는 정도는 이미 눈치 챘을 거다) 경우가 있다. 문제는 호주머니에서 이리저리 OTP가 구불다 보니 닳고 달은 레이블에 일련번호가 보일리 만무하다. T_T 과거에 OTP 신청하며 금이야 옥이야 보관해둔 꼬깃꼬깃해진 문서를 1시간 동안 서랍을 뒤져 찾아내어 등록에 성공한 다음에 다시 스마트폰으로 내리는 쇼를 해야 한다. 은행 4개면 총 8번에 걸쳐 난리법썩을 떨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액티브액스 크리 몇 번 강타 당하고 휴대폰 인증 번호 몇 차례 따고 안 보이는 눈 비벼가며 인증 번호와 주민등록 번호를 여러 차례 넣고 나면 가까스로 한숨을 돌리게 된다. 최소한 1년 동안은 유예 기간이 생기는 셈이니까. 이게 나 혼자만의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공인인증서를 갱신하느라 보내는 시간을 정말정말 좋게 봐줘서 평균적으로 1인당 1시간으로 가정하고(오늘 초 스피드로 처리했는데도 OTP 일련번호 찾고 숨겨진 통장을 뒤지고 난리치느라 거의 2시간 걸렸다) 경제 인구가 2000만명이라면 1년에 2000만 시간이 그냥 공중에 날아가는 거다. 말이 쉬워 연2천만 시간이지 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이렇게 비경제적인 공인인증서를 왜 계속해서 고집하는지 너무너무 신기하고 이해가 안 간다. 누가 제발 논리적으로 설명을 좀 해다오.
인감 제도가 없어지면 그 다음 사라질 차례는 공인인증서가 되리라 확신한다. 최후의 승자는 영원히 살아남을 주민등록번호가 되겠지?
뱀다리: 각 금융 기관을 모두 방문해야 하는 치명적인 크리를 동반하는 OTP 갱신이 5년에 한 번이라는 사실은 엄청난 위안이다. 여권 신규 발급과 더불어 슬슬 그 날도 함께 손잡고 다가오고 있네? T_T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