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월 30, 2011

[일상다반사] 공인인증서 유감

1년마다 세 차례식 난리 법썩을 떨어야 하는 시기가 있다. 1번은 연말정산 기간으로 액티브 엑스 컨트롤에 파묻혀 며칠을 허우적 거려야 한다. 물론 요즘은 국세청 연말 간소화 서비스가 예상 외로 많은 부분을 처리하고 있어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긴 하지만 말이다. 2번은 종합소득 신고기간으로 국세청에서 만든 아주 신비로운 소프트웨어랑 씨름을 벌여야 한다. 물론 작년부터 집에서 가능할 수준까지 퀀텀 점프를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올 5월을 기대하시라). 3번은? 오늘 이야기할 공인인증서 갱신이다.



빌어먹을 공인인증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악의 화신이지만(보안 강화 어쩌구 하는 입에 발린 말은 인터넷에 오가는 바이트가 아까우므로 언급조차 하지 말자. 그렇게 완전무결한 보안 환경을 제공한다면 역전 앞 거지도 아니고 OTP는 왜 도입했는데?) 유효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함으로써 거의 폭탄에 가까운 사용자 경험을 만끽하도록 만들어준다.



자 거래은행이 1개이며 스마트폰 이런거 사용하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이 없다. 그냥 은행의 공인 인증 센터로 들어가서 갱신하면 되니까. 하지만 거래 은행이 4개고 스마트폰 앱을 사용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고난의 행진이 이어진다. 우선 첫 은행으로 들어가서 액티브 액스 크리 맞아가며 인증서를 하나 갱신한 다음에 스마트폰으로 인증서를 내린다. 계속해서 다음 은행으로 들어가서 타행 인증서 등록이라는 요상한 절차를 거치는데 은행에 따라 OTP 일련번호를 요구하는(K모 은행이라는 정도는 이미 눈치 챘을 거다) 경우가 있다. 문제는 호주머니에서 이리저리 OTP가 구불다 보니 닳고 달은 레이블에 일련번호가 보일리 만무하다. T_T 과거에 OTP 신청하며 금이야 옥이야 보관해둔 꼬깃꼬깃해진 문서를 1시간 동안 서랍을 뒤져 찾아내어 등록에 성공한 다음에 다시 스마트폰으로 내리는 쇼를 해야 한다. 은행 4개면 총 8번에 걸쳐 난리법썩을 떨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액티브액스 크리 몇 번 강타 당하고 휴대폰 인증 번호 몇 차례 따고 안 보이는 눈 비벼가며 인증 번호와 주민등록 번호를 여러 차례 넣고 나면 가까스로 한숨을 돌리게 된다. 최소한 1년 동안은 유예 기간이 생기는 셈이니까. 이게 나 혼자만의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공인인증서를 갱신하느라 보내는 시간을 정말정말 좋게 봐줘서 평균적으로 1인당 1시간으로 가정하고(오늘 초 스피드로 처리했는데도 OTP 일련번호 찾고 숨겨진 통장을 뒤지고 난리치느라 거의 2시간 걸렸다) 경제 인구가 2000만명이라면 1년에 2000만 시간이 그냥 공중에 날아가는 거다. 말이 쉬워 연2천만 시간이지 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이렇게 비경제적인 공인인증서를 왜 계속해서 고집하는지 너무너무 신기하고 이해가 안 간다. 누가 제발 논리적으로 설명을 좀 해다오.



인감 제도가 없어지면 그 다음 사라질 차례는 공인인증서가 되리라 확신한다. 최후의 승자는 영원히 살아남을 주민등록번호가 되겠지?



뱀다리: 각 금융 기관을 모두 방문해야 하는 치명적인 크리를 동반하는 OTP 갱신이 5년에 한 번이라는 사실은 엄청난 위안이다. 여권 신규 발급과 더불어 슬슬 그 날도 함께 손잡고 다가오고 있네? T_T



EOB

토요일, 1월 29, 2011

[독서광] 시지프스를 다시 생각한다



며칠 전 신승환 님께서 책을 한 권 보내주셨기에 번개처럼 다 읽고 독후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물론 부제인 "어느 개발자의 직장 생활에 대한 보고서"가 힌트를 주긴 하지만 "시지프스를 다시 생각한다"의 책 제목만 보고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추론하기란 쉽지 않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간략하게 요약 정리해보자면, IT 개발자(주의: 광의의 개발자다)로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일화와 생각을 수필식으로 작성한 책이라고 보면 틀림없다(명쾌하지? ㅋㅋ).



소프트웨어 개발을 잘하는 방법이나, IT 업계의 비리를 까발기거나, 외국계 회사로 이직을 잘하는 방법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냥 일반적인 IT 관련 회사에서 안 튀고 고만고만(?)하게 월급장이로 살아온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동감을 많이 느끼리라는 생각이다. 목차 등을 보다 보면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라고 생각이 들 가능성도 있지만 구체적인 실천 강령(참고: 대다수 자기 계발서는 어떻게 살아갈지를 주변 맥락에 무관하게 딱 몇 가지로 정리해서 알려주는 친철함을 발휘하지만 열이면 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이 없기 때문에 자기 계발서로 분류하기는 곤란하고 차라리 개발자들의 애환을 다루는 성장 소설(?)로 생각하는 편이 좀더 정확하겠다.



아주 복잡하거나 머리를 쥐어짜는 내용도 아니며 책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종종 일상에서 벗어나 머리 식힐 필요가 있는 중급 개발자들이 설 연휴 때 짬 내어 읽어보면 잠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정리할 단초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는 도중에 B급 관리자도 옛날 생각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는데 역시 어딜가나 개발자들의 삶에는 뭔가 기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로웠다.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과거에 밟아온 발자취와 한번 비교해보시길...



EOB

일요일, 1월 23, 2011

[독서광] 장인: 아름다운 외길



이 책은 태우님이 선물로 주셨는데,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에 다 읽고 나서 이제야 서평을 올려본다(아직도 서평 못 쓴 책도 잔뜩, 읽은 책은 더욱 많아 산더미...).



요즘처럼 기술이 1년을 못버티고 휙휙 바뀌는 핫(!)하고 쿨(!)한 시대에 한 가지만 고집하며 자신의 역량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장인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옛 것을 고집하고 외길만 걷는 '장인'의 가치와 미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체가 사치라고도 보이겠지만... 그래도 한번 뿐인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가르침을 (비록 간접적이지만) 받는다는 데서 이 책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물론 꼰대(?) 이야기라면 질겁을 하고 내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 몸 바쳐 평생을 한 가지 일에만 전력을 다한 선배들의 말은 이모저모로 배울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이 책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일본의 장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책은 크게 장인들의 말, 장인들과 나눈 대화, 장인 대학에서 연설한 내용로 나눠지며, 장인들과 나는 대화와 장인 대학에서 연설한 내용은 일본 전통 문화를 다루므로 일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장인들의 말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몇 개 뽑아서 정리해보겠다.



나는 솜씨 없는 놈은 가르치지 않아. 그런 놈 가르치면 내 솜씨까지 무뎌져버려.


요즘 젊은 치들이란 또박또박 설명을 해주면 제법 일을 잘 처리합니다. 야, 제법이로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좋을 대로 해봐"하고 말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게 희한합니다.


도제제도의 세계에서는 물건도 만들어왔지만, 사람도 만들어왔지.


수련시절엔 인간 취급 못 받고, 간심히 한 몫 하는 사람이 되지요. 그러던 차에 자신이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을 땜 묘하게도 친절히 대해주게 돼버려요. 결국 제자를 위해서는 몹쓸 짓입니다. 어중간한 장인을 만들어버리는 거지요. 연민 때문에...


인간이란 '출세했나 안 했나'가 아니다. '천박한가 천박하지 않은가' 둘 중 하나다.


사진을 박아 내거나 좋아라하고 매스컴과 인터뷰를 하는 장인은 장인이 아닙니다. 장인은 자기 자신의 일 이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술가가라는 게 모두 피곤해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건 말이지 예술가인척 하니까 피곤한 거예요.


비평가들은 대단한 것인 양 좋다 나쁘다 얘기합니다만, 그건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몇 해 전에 (야외에서 전어구이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줄타기 공연을 관람하면서 줄 위에서 뛰고 앉고 눕고(!) 하는 놀라운 모습 이외에도 줄타기 달인이 줄타기에 앞서 자신이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산신령(?)과 스승에 대해 한참 동안 예를 표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곱씹어 보게 되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컴퓨터 분야에서는 왜 이리 장인(?)을 만들어내기 어려운지 정리해볼 계획이다.



EOB

일요일, 1월 16, 2011

[독서광] 사회적 원자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라는 부제에 낚여(!) 구입한 이 책은 인간과 사회를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주장의 타당성을 확보하고 강화하기 위해 기존 경제학에 대해 집중 공격을 퍼붓지만 차별성이 떨어지므로 자기 얼굴에 금칠한 꼴이다. 주장하는 이론 자체가 아주 독창적이면서 이론적으로 탄탄하다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뭐 책을 읽다보면 기존에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바람에 자꾸 본전 생각이 나게 만들었다. 잠깐 본문 내용을 볼까?



극적이고 예기치 않게 꼬이고 실생활의 흥분과 긴장을 잘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또는 인간 세계에 대한 과학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요렇게 썼지만 자신도 여기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니 이게 문제다. 원자와 분자라는 물리학적인 기본 구성 요소를 사회 과학에 접합해 뭔가 엄청난 비밀을 캐낼 듯이 몰아붙이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주장을 하나 살펴볼까?



과학자들이 인간 세계의 법칙을 발견해서 완벽한 세계를 만들려고 해도 사람들은 거기에 반항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차려진 밥상도 심통 맞게 걷어차 버리는 '종잡을 수 없는 두발 동물'이다. 그저 자기가 반항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생각하며 책을 서술했으니 본문에서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는 안 봐도 블루레이다. 물론 인간의 예측 불허를 강조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썼다고 이해가 가지만 아무리 그래도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지 계속해서 나오면 질린다(책 1/2 지점까지 테이프를 반복해서 틀고 있다). T_T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왜 많은 회사들이 피고용자들에게, 다른 회사와 비교할 때 꼭 줘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급여를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크 뷰캐넌이 경제학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위의 인용문으로 요약 정리할 수 있다. 다음 서평에 소개하겠지만 '머니 랩'과 같은 책에서는 1장(chapter)를 투입해 상호 호혜주의라는 주제로 급여와 관련한 멋진 실험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미 많은 경제/경영/심리학자들이 마크 뷰캐넌에 앞서 뭔가를 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마크 뷰캐넌은 그걸 몰랐거나 아니면 모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튼 이 책은 "개인은 예측 불허하고 변덕스러우며 멍청하지만, 집단은 예측 가능하며 질서 있고 똑똑하다"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한 줄 결론: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하다는 생각.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다른 좋은 책도 많으므로 이 책은 독자 여러분께 추천하지 않음.



EOB

토요일, 1월 15, 2011

[독서광]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간만에 경제/경영책 잠시 접어두고 정치(?) 관련 주제를 읽으려고 책을 한 권 집어들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마구 자극하는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원서 제목은 "The Rhetoric of Reaction"으로 반동(!)의 수사학 정도로 번역이 가능한데, '보수'와 '지배'를 엮여 2011년 현재 한국 실정에 너무나도 잘 맞는 제목을 뽑았기에 출판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하지만 반동 아니 보수 세력들이 주로 사용하는 세 가지 수사 기법을 역사적/정치적/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으므로 얇고 주장하는 내용이 단순하다고 해서 읽기가 쉽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정치적인 가십거리를 기대했다면 난감한 상황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영국 정치, 프랑스 혁명, 마르크스, 하이에크, 케인즈 등의 이야기가 나오므로 정치, 역사, 경제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만 이 책을 권한다.



책에서 주장하는 보수의 3대 수사 기법은 다음과 같다.




  •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역효과 명제
  • 그래 봐야 기존의 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용 명제
  •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위험 명제


보자마자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요즘 복지와 무상급식을 놓고 일부 정치가들이 말한 내용을 한번 보자.



민주당의 소위 보편적 복지정책은 참으로 무책임한 것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을 괴롭히고 큰 부담을 안겨주는 정책이다.
(이회창, 역효과 명제 적용)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에 대해 "극도의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며 "좌파적 사회주의적 정책 방향이 민주당의 차기 대권전략이라면 민주당은 사회주의 정권 수립을 옹호하고 있는 것"
(역시 이회창, 위험 명제 적용)

무상의료가 될 경우 의료의 질이 저하돼 서민건강 수준은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
(한나라당, 역효과 명제 적용)

복지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저소득층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중산층 이상에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들을 펴고 있거든요?
(오세훈, 무용론 명제 적용)

보수 진영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사 기법 그대로를 라떼르도 안 떼고 차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혀를 끌끌차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에게 이런 논리가 먹혀들어가니 그게 더욱 황당하다. 역시 대한민국에서 논리나 철학 교육을 안 시키는 이유는 다 여기 있었어. T_T



정치 이야기가 많이 나와 조금 읽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커맨딩 하이츠에 나오는 케인즈와 하이에크 사이의 치열한 이념 전쟁에서 사용한 논리 체계가 무엇인지를 부수적으로 획득하는 성과도 있었다. 케인즈는 역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개입주의적인 거시 경제 정책을 주장했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복지국가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그 당시로서는 미덥지 못한 위험론을 제시함으로써 나중에 케인즈 사상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일약 스타가 되어버린 경우다. 밀턴 프리드먼도 반복지국가적 주장을 펼치면서 통화/재정 정책이 불경기를 심화시키거나 실업을 증가시킨다는 무용론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역시 인기(?)를 끌게 된다. 커멘딩 하이츠를 놓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물고 뜯고 어떻게 논쟁이 벌어졌는지 안 봐도  블루레이 되겠다.



역효과 명제와 무용 명제는 반동(?) 분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지만 양쪽의 근본은 완전히 다르다. 역효과 명제 지지자들은 매우 변덕스런 인간 세계의 특성 때문에 변화 하나하나가 곧바로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가지 반작용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반면, 무용 명제 지지자들은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고 내재하는 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세계의 특성 때문에 인간의 행위는 세상을 바꾸기에 너무나도 무력하다고 본다. 역효과론은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하는 정치/경제/사회 관련 정책을 심각하게 여기는 반면, 무용 명제는 이 모든 정책을 어리석거나 나쁘다고 비웃는다. 물론 둘 다 변화/진보를 하지 못하도록 초를 친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한 목적이 있다. 본문에 나오는 문구를 한번 볼까?



무용론은 종종 사회 시스템의 기본적인 '구조'를 무시하고, 먼저 그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은 채 이런저런 '부분적' 개선(더 민주적인 통치나 의무 초등교육, 특정 사회복지 프로그램 등)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키우고 퍼뜨린다해서 진보주의자들이나 개혁가들을 꾸짖는다.


(역효과 명제를 주장하는) 반동파는 목적이 진심이건 진심이 아니건 겉으로는 찬성하면서, 그 목적을 위해 제안되거나 취해진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하려고 한다. 실제로 반동파는 그런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여러 결과를 낳기 때문에 결국 처음 주창되고 추진됐던 목적과 정확히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흔히 주장한다.


자 그렇다면 이런 논리에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까? 저자인 앨버트 허시먼에 따르면 역효과, 위혐, 무용론은 신화부터 시작해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고 적용해왔기에 세 가지 방법 자체는 아주 확실(!)하게 사람들 뇌리에 박혀 있어 효과(?)를 발휘하지만 실제 세 가지 틀 속에 숨은 논리 자체는 말이 안 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앨버트 허시먼은 누군가(주로 반동세력) 반복적인 주장을 기계적으로 남용할 경우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고 보고 대칭되는 극단적인 예를 들어 숨은 의도를 분쇄하면 된다고 쐐기를 박는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보수/반동세력이 사용하는 수사 기법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므로 앞으로도 씨가 먹힐테고 언론에도 많이 오르내리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오늘의 교훈: 이런 교묘한 속임수에 당하지 않으려면 못 먹어도 배워야 한다!



EOB

일요일, 1월 09, 2011

[독서광] 페이스북 시대



요 몇 주 동안 정신 없이 지내느라 블로그도 뜸했는데, 2011년에도 독자 여러분들께 알찬 서평과 각종 뽐뿌질을 계속해드리기로 약속드리며 올해 첫 서평을 시작해보겠다. 요즘 한창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 열풍이 불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비즈니스와 마케팅 서적인 "페이스북 시대"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이 워낙 많이 나와있으므로 여기서 일반적인 서평을 써봐야 건초더미에 바늘을 하나 더 추가한 꼴이 되므로 조금 다른 각도로 한번 검토를 해보자.



우선 이 책은 텍스트 압박이 상당하고 페이지 분량도 445페이지에 달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다 읽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비슷한 내용이 본문에 중복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빠른 전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테다. 본문 중 전문가 기고가 중간 중간에 나오는데 이 부분은 짧지만 핵심을 찌르므로 만족스럽다. 비즈니스와 마케팅 관점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업(!)을 벌이는 방법을 다루고 있으므로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전반적인 개괄이나 구체적인 개발 방법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포인트가 안 맞고 실제 온/오프라인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쇼셜 네트워크를 사용해 광고나 마케팅을 대신해주는 분야에 있는 분들에게 적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제목은 '페이스북 시대'지만 단순히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링크드인, 트위터도 다룬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이 책은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드인의 특성을 고려해(각 서비스마다 특성이 많이 다르다) 어떻게 티 안내고 비즈니스를 벌이는지에 설명하고 있으므로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유일하게 개발자 스스로를 제대로 마케팅(?)할 수 있는 서비스인) 링크드인에 대해 다시 한번 관심이 생겼기에 거의 버려두었던 프로파일의 내용을 조금씩 개선하고 있다.



본문 중 흥미로운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뿌리고, 기도하는" 식의 무차별적인 구매 권유와 마케팅 메시지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오늘날 많은 잠재고객들은 원하지 않는 전화나 이메일은 물론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춤화된 고객지향적 권유도 거절한다.


누군가를 고용하거나, 고용되거나, 계약을 할 때,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들보다는 지인이나 친구의 친구 또는 만난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약한 유대는 많은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데, 이 때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에게 정보 상의 이점도 제공한다.


B2B 영업은 보통 협상을 포함하는데, 이는 높은 가격 인상과 제공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에 대한 불분명한 정보 때문이다.


사고는 글로벌을 대상으로 크고 원대하게 하되, 실행은 현지 실정에 맞게 행동하자


궁극적으로 디자인은 하나의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창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한 창조성은 특정 사람들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독특한 특성이다.


반복이 완벽을 능가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완벽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마라. 협업과 혁신은 본질적으로 반복적이며, 다소 혼란스러운 교환(give and take) 관계임을 깨달아야 한다.


직원들과 직원 친구들은 비슷한 면이 있다.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러니까, 그런 친구들은 벌써 우리의 1차 채용기준을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이 어떻게든 진행되게 만들고 싶기 때문에 통제권을 갖기를 원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지도자가 윗선에 있으면서도 '통제권'을 어떻게 포기하는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도 페이스북 사용자가 200만을 넘겼고, 트위터가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신형 미디어를 이용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을지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페이스북 이펙트와 더불어 한번 쯤 읽어보면 좋겠다.



E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