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비해 요즘은 애들 입장에서 놀거리가 정말 많다. TV를 켜면 24시간 만화부터 스포츠, 각종 다큐먼터리에 이르기까지 입맛대로 골라볼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열면 게임, 퍼즐, 만화 등 컨텐츠 공급이 쏟아져나온다. 점점 축적되고 있는 영화나 음악도 골라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바깥 활동이 점점 줄어들면서 실제 몸으로 뭔가를 해보는 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해서 머리와 몸을 모두 활용해 뭔가 흥미로운 실험을 해보는 재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같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뭔가를 해보려면 너무나도 막막하다. 우리 주변은 교육 과정에 맞춰 어떻게 하면 절대로 뒤쳐지지 않는 '영재'형 인간을 기를지에 대한 담론으로 넘쳐나기에 심지어 과학 실험조차도 교과 과정과 연계되어 독특한 풍미를 모두 빼버린 인스턴스 식품처럼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번 [독서광] Make Vol 5 끝부분에 소개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50가지 위험한 실험이라는 책이 나왔다. '위험'이라는 간이 철렁하는 문구가 적힌 제목과는 달리 이 책에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재미 있는 실험이 '위험하지 않게' 만들도록 여러 가지 조언이 아낌없이 나온다. 심지어 미국 내의 법규나 규칙 뿐만 아니라 한국 내의 법규와 규칙까지도 등장하므로 계획과 안전 대비책을 세우는 과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어른들 관점에서 자동차 운전, 자동차 타이어 갈아 끼우기,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 등과 같은 실험을 시시(응? 정말 시시할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자기 자식들이 이런 실험을 하고 싶다고 조를 경우에는 화들짝 놀랄 것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속으로 낄낄거렸다.
책 구성은 두 페이지가 한 쌍으로 되어 있으며 왼쪽은 실험 목표, 개요, 절차, 주의 사항, 보충 설명이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에는 줄이 그어진 노트가 있어 필기 도구를 사용해 실험 절차나 결과, 떠오르는 아이디어 등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들의 실험이 되어야 하므로 어른들은 아이들 뒤에서 충실한 집사(!)처럼 행동하며 실험 방법을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의 사항만 지키면 자연스럽게 알아서 실험이 진행될 것 같다. :)
이 책의 집필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문장을 서문에서 골라봤다.
주도권과 능력은 무엇일가요? 저는 현실에서 마주치는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로 이를 가늠합니다. 주도권을 가진 사람은 문제의 맥락을 살펴본 후에 필요한 (혹은 사용 가능한) 도구와 재료를 확인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데 온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는 소규모 실험을 통해 해결방안의 핵심 이슈를 테스트해보고, 제대로 작동하는 해결법을 찾아내겠지요. 사소한 문제는 극복하고, 실패는 피드백으로 받아들여서 진행 중인 해결 방안에 반영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도권을 못 잡는 사람은 쉽거나 눈에 보이는 해결책이 없을 때 바로 포기하거나, 자신의 첫 번째 제안이 무너지는 순간 문제 자체를 쉽게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딱 그 상황에 맞는 정확한 크기의 밧줄이나 완벽한 도구가 준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완벽한 해결책이 눈 앞에 있는 경우는 드물어서, 필요한 것 없이도 상황을 해결하거나 확신 없이도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상황을 해쳐나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뭔가를 만들게 되는 동력이자 실체입니다.
결론: 적정한 위험을 감내하며 안전하게 탐험하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은 평생 써먹을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기본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이벤트라고 보면 틀림 없기에 아이들에게 주도권과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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